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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과학개념형성사 2> 출판기념 세미나(12.10.06)
 

2012-10-18 
<근대사회과학개념형성사 2>(2012) 출판기념 세미나

일시: 2012년 10월 6일(토) 오후 4시- 6시
장소: 삼성경제연구소
참석자: 하영선, 민병희, 김현철, 윤비, 마상윤, 김범수, 김성배, 이승주, 손열, 전재성, 배영자, 조현석, 김상배, 김준석, 김치욱, 신범식, 조동준, 도종윤, 이헌미, 송태은, 권민주, 송지예, 최인호, 용채영, 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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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발제: 손열(연세대)
토론: 윤비(성균관대), 민병희(전남대), 이헌미(서울대) 외 참석자 전원


민병희: 열 개의 논문이 논문의 문제의식이나 방법, 개념의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전체적, 총괄적으로는 평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념사는 사회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념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것이 될 텐데, 개념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보는 방식도 논문마다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방법과 개념에 있어서는 관행으로 생각했던 것 보다는 통일성을 잡지는 못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과학개념 형성사라고 해서 사회과학자들이 실제 부딪치는 문제보다 절실한 면을 지적해 주는 문제들이 역사학자들이 사료중심으로 보는 부분보다는 절실했다고 본다.

근대이행기를 하신 분들 중에서는 사학자보다 나아간 공헌도 있는 부분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2차 자료에 근거에 할 수 밖에 없어서 역사학자와 해석을 함께 해가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대규모로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모여 작업하는 것도 어렵다. 역사학자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교차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양쪽에서 어느 정도 기본 작업이 있어서 상호가 서로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 수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 이 책이 다음의 큰 작업을 위한 기반이 되는 작업으로서 의의가 있다. 5~10년 뒤를 봐도 사회과학자들이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과 다룰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정확한 목적과 의의를 가진다면 역사학자들과 일을 할 때도 정확한 목적에 따라 작업을 제안, 공조를 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러한 지점이 어디인가 생각해 봄

작업 자체의 목적과 의의를 설명한다면? 형성사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의 고뇌, ‘형성’이라는 단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단순한 사회과학 수용사, 변용사가 아니라 ‘형성’의 쪽으로 갔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방향성. 어떤 사회과학의 개념이 들어와 전근대의 것이 수용, 변형, 전파의 과정을 넘어 현재적으로도 형성되는 상황, 그리고 거기에 기여를 하겠다는 측면.

사실상 하영선 선생님의 글이 보론적이라고 본다면 큰 의미에서 그 작업이 어떤 역사적인 측면도 있지만, 더 이상 서구 중심의 역사적 틀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개념, 확장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전체 사회과학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근대적 틀이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다른 쪽에서 resource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서구적인 방식이 아니라, 서구의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닌 개념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것 인가. 한국, 동아시아 보다 더 강한. 보편적인 것을 다시 해석, 이해해보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근대이행기에서 특히 개념 수용이 복잡했다는 생각. 전근대와 근대에 대한 시대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근대의 구분도 점차 회의를 느낀다. 최근에는 전근대를 엄청나게 단절된 시기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 제기되고 있음. 현재가 근대의 확실성에서 설명할 수 없고, 현대에서 가장 근대적이고 최첨단적인 것과 옛날의 후진적, 전근대적, 낙후된 것으로 보았던 애매한 현상. 예전에 중국이나 동아시아 현상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기반 등을 볼 때 근대를 넘어서 현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대단히 특이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근대에서 흔한 현상이었다.

이 책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과학자들이 전근대를 단순화, 구분 명확히 하는 것을 고수하면서 개념의 변화를 사적 변화로 찾으려고 한다면 결국은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만들지 않을까? 오히려 사회과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공동으로 할 때 자신의 관심사나 방법론에 따라서 쓰는 것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와 같은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서구적 근대적 관점이 비서구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서구적 근대 관념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을 다른 곳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를 첨예화 한 다음에 서구 관념이 포괄하지 못하였는데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부분, 교집합과 여집합이 나타나는 부분에서 외연의 확대가 일어나는 부분에 중점을 둔다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전근대 개념에 대해서도 주로 2차 자료를 활용. 그러나 개념의 실질적 응용, 나타난 논쟁, 그것을 가지고 한 실험 등이 있었고 전근대도 통일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데. 현대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몇 천년에 걸쳐 온갖 논쟁과 실험과 자성과 반박이 있었던 그 자체를 개념사에서 활용을 할 수 있다면 대안적 개념을 도출할 때는 그만한 자료가 없다. 역사학자들은 어떤 지점에서 현상을 볼 때의 한계점, 개념화하는 데의 거부감, 취약점이 있지만 사회과학자들과 상호교류를 할 수 있다. 확대된 대안 개념 형성을 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형성되고 있는 개념으로서의 개념형성사의 측면에서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윤비: 개념사가 왜 문제가 되었고, 어떻게 논의가 되었고 뭐가 문제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개념사가 왜 필요하게 되었나? 헤겔이 제시한 이념의 발전사로서의 역사, 독일 사학의 반세기는 헤겔의 방법론을 깨는 데서 비롯했다. 세계의 핵심 개념이 만들어지고 발전되는지 독일사가들은 이를 깨는데 한 세기를 씀. 하나는 역사주의의 공격. 이념이 자기분화, 자기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적인 것에서 생산되는 것,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념의 절대적 성격 약화. 두 번째 공격은 맑시즘. 이념이 현실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다. 헤겔은 역사를 반대로 보았고, 나는 다시 돌렷다. 경제사를 봐야지 이념사는 역사 거꾸로 보는 것이다. 경제적 vantage point. 세 번째 공격은 프로이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잘 평가되지 않는데, 역사학자들의 충격. 우리 스스로 뭘 생각하는지 알고 행동 지배한다고 생각했는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 뒤에는 비합리적,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 어떤 프로세스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공격 받음.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것이 이념사. 공격을 나름 흡수한 상황에서 헤겔적 역사 사고 남음. 마이네케의 국가이성. 중요 개념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역사서술 하면서 주변을 배치, 아이디어 개발 한 사람들을 주로 배치하는 것

이념사적 길을 건 많은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독일이 2차대전으로 무너진 뒤에는 대안적 역사서술 필요 했음. 사회사 등. 역사가 분해되는 한 편, 그 다음의 해결책으로 찾은 쪽이 개념사임. 개념사를 갖고 들어왔을 때, 개념사가 더 이상 역사를 움직이는, 그것이 역사를 장악하는 핵심적 통로라고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는 개념을 통해서 역사의 프로세스가 들어난다. 지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노드들이고 핵심 노드를 중심으로 해위자들 간의 투쟁이 존재하고, 개념을 들어 내면 역사문화적 투쟁 과정이 들어난다. 개념은 역사를 보는 vantage point이다. 우리가 역사서술에서 개념을 linear하게 보는 데, 전후 독일에서의 개념사는 discontinuity 강조. 말을 둘러싼 투쟁사로 발전해 옴. 루만, 하버마스 등이 주도. 루만의 주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내가 알고 있는 개념이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내가 한 행동의 결과로서 이루어진 현실이고, 거기에 가지는 개념이 나를 다시 규정한다. 역사학과 사회학의 첫 분석 지점은 너는 누구냐임. 코젤렉 역사학은 삶의 어머니, 선생이다. 루만의 영향. 개념사를 살피는 것은 개념을 아는 것에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의 개념사 연구. 테마, 개념이라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vantage point가 아니라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으로서 개념은 잘 포착된 것 같다. 하영선 선생님의 서문, 손열 선생님의 서문을 비교할 때 잘 제시되어 있다. 처음부터 전파사 연구의 목적 자체가 어떻게, 단순히 서양처럼 부드럽게 흘러왔는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파괴, 투쟁, 바꾸어왔나를 보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또한 개념사가 가지는 self reference의 측면이 있다. 개념사 연구로부터 배웠다기보다는 우리의 문제의식 자체가 개념사로 갈 수 밖에 없었고, 우리가 개념사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국가정치적 편향을 얼마나 극복했는가. 개념사, 서양에서의 주요 비판의 핵심은 여전히 나치적 개념사와 유사하다. 너무나 국가사, 정치사 중심이고 뚫고 내려가면 사상사에서 독일 민족주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상배 교수의 기술사 고무적이다. 이런 테마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이었나,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가.

둘 째로 연구방법으로서의 개념사. 개념사는 사상사의 일부라는 것. 김용구 선생님은 개념이라는 것으로 한 문화, 한 사회를 얼마나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라고 질문. 개념은 아주 일부분이고 개념만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작음. 어떤 사람들은 개념형성 이전의 이미지, 메타포에 주목. 함께 들여다봐야 전체 그림이 보인다. 루만은 일정적 비판적 스탠스, 개념사 연구자들은 clear한 개념사의 causality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causality가 확실한가? 인용할 때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내가 그런 적절한 인용을 찾은 것인지. 개념사 연구가 아니라 사상사연구라면 사실 2차 문헌 연구로는 안됨. 1차 문헌 연구에 깊이 천착해야한다.

셋 째, 이전에 사상사를 monologue라고 봤음. 중요한 사람들의 개념. 오늘날 사상사연구는 다르게 바뀜. 사상사는 dialogue다. 어떤 질문, 어떤 사람들, 상대와의 대화관계에서 개념 사용. 구체적인 콘텍스트가 사상의 발전을 결정한다. 개념의 의미나 작동을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섬세한 역사작용을 필요로 함. 개념사가 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 개념사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실제로 독일의 역사학자들이 코젤렉이나 베르노를 인용하지 않음. 너무 그 내용이 general함. 아주 섬세한 연구를 원전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연구에서 만든 클리쉐가 계속 반복된다. 요새 독일에서 개념사가 실제 쓰이는 영역이 작다 것

이런 점에서 근대한국의 사회과학형성사의 책이나 한국에서의 개념사연구사들은 이런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극복하고자 하고 있는가? 이 연구로 한술 만에 배부를 수 없고, 사상사 연구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주춧돌을 계속 놓는 작업 필요하면서 큰 의의가 있다. 현재까지의 지배적인 연구를 버리고 2차 연구, 1차 연구에서 더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았는가? 말 자체를 취합, 요약한다고 해서 개념의 변화가 나올 것인가? 쉽게 되지 않음.. 이 어려운 작업을 던지고, 징검다리를 놓은 것 자체가 큰 의의를 갖는다. 텍스트 안의 개념들을 추출해서 뭐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념사가 아니고 그것은 사전작업임. 개념사가 어려운데 개념사 하는 사람들의 트레이닝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헌미: 개념 형성사 2권, 2009년의 1권도 마찬가지로 공동연구작업으로서 한 사람이 긴 시간의 개념사가 어렵고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개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공동 연구 작업할 때의 의문과 비판의 지점은 분석단위에 대한 개념의 조작적 정의, 분석론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는데 실제 작업을 해보면 그것이 가능한지, 정말 필요한가 의문이 든다.

개념에 대한 개념이 전혀 확립되어있지 않은 연구작업의 차이는 필자의 글쓰기 스타일과도 관련.
문제는 던져졌지만, 작업에는 반영되지 않는 질문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지적 협업. 여전히 흥행을 위해선 스타일은 중요하다. 개념사를 썼을 때 누구를 target audience로 쓰는가? 나아가 스타일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에.

개념사 자체가 아주 크게 보면 한국적 국제정치학, 한국에서 국제정치학을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을 할 때 실존을 반영하는 스타일로서 미학적 스타일은 중요하다. 개념사가 이를 얼마나 충족시켜주는 접근법인가 생각하게 됨. 오늘 복합세계정치론과 개념사 2권에서 중요한 점은 논문의 형식으로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글과 대담. 어떤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개념사와의 조우, 의미있는 궤적. 손열 선생님의 개인사, 감동도 있고, 반박할 여지도 없고. 지적 묘기를 부려 전망할 필요도 있는데. 이런 작업으로 개념사의 전망을 보면 각 필자에 따라 선택한 개념이 다르고, 각자의 연구설계의 방법 차이도 나옴. 일관된 철학적, 분석적 차이를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차이를 한 권의 연구서로 보기 때문에 개념의 한계와 의의가 부각되는 현상이 나오기 때문에 여전히 개념사를 하는데 분석수준과 연구초점이 중구난방. 분석수준이 한 연구에서도 통일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낮은 실증적 수준에서는 개념의 용례들을 쭉 살피는 필요한 작업. 상위의 정치적 용례들을 볼 때 미시정치에서 국내정치까지 포괄하면서 자료가 비균질적. 심성사적 자료, 신문자료, 관찬자료, 정책독트린 등. 이를 관찰해서 어떻게 하나? 가능한가? 공동작업에서 분석수준이 상이한 것 잘 알 수 있음

앞의 작업은 굉장히 큼. 주로 1차 자료를 중심 역사 작업. 개념의 주변, 형성, 도입 단계별로. 정책독트린, 지역적, 정책 실현인지 정책 독트린인지. 제도화의 정도를 측정하기 어려운 문제 발생하면서 읽기도 난잡.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는 작업이다. 하나의 명확한, 뻔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실제 해보면 사료를 직접 다루면서 역사적 개념의 용례를 장기간으로 쓰다 보면 연구 개념의 시계열적 진화, 개념의 진화를 잘 다루기 어렵다. 예를 들어 김현철, 문일영 작업. 더 역사학적으로는 정치(精緻)한 작업들. 분석기간이 길수록 개념이 추상화 됨. 개념의 단일성에 기반한 시계열적 내러티브는 작업 하기 좋은데, 근거가 무엇인지는 대답하기 어려워짐.

연구자들의 관심사, 국제정치학적 개념. 기존의 사상사적 방법으로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복합 등이 approach지 이론이 아니다. 경험과학과의 차이가 있을 때, 국제정치학 개념사 서술의 특성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구분은 개념과 사상의 관계. 개념과 관념의 관계, 개념과 이념, 개념과 담론의 관계. 존재론적, 인식론적으로 철학적으로 각 논문 앞에 서술을 해줘야 소설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이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는 것이 현명한지는 잘 모르겠음. 공동연구의 대립적인 연구, 극명하게 보이는 작업. 예로서 강동국 선생님의 ‘자유’ 작업. 이는 담론분석이지 개념사적인 서술은 아니라는 생각함. 강동국 선생님의 글은 국내정치, 국제정치 영역의 자유 다루면서 시계열보다는 단절적인 부분 강조하는데 푸코적인 냄새가 난다. 주체나 발언자가 나오기 없음. 기호, 가장 명증하게 느껴지고 유려한데, 주체를 상정하지 않고 이미 발화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서술하는 탈근대적 스타일.

하영선 선생님의 개념사 작업도 우리의 개념사 작업과도 다르며 헤겔적 작업 같다. 굉장히 문제의식 자체가 민족적 과제를 이미 상정하고 계시고, 그것의 대응하는 일환으로 개념사를 두고 있음. 이런 문제의식의 틀 안에서 개념사를 바라보고 있음. 개념사의 주체들의 정치적인 아이덴티티가 민족국가로 소급. 개념사라는 지붕 아래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어 혼란스럽고 개념사가 다루는 개념의 정치성이나 개념화하는 정치화보다 개념사 서술의 정치성을 생각해봐야. 개념사 전파의 target audience 누구인가? 국내, 국제?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개념 자체가 정치화. 또 고정되지 않고 돌출 될 때, 개념화의 작업이 정치화 중일 때 필자의 정치적 편향성 어떻게 처리하는가? 지적협업 스타일의 복합성에 대해서 이렇게 퉁 치고 넘어가기에는 우리끼리라도 이야기해봐야 한다. 근대이행기의 개념 다룬 경우, 국가, 민권 등.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제주의도 정치적 아이덴티티와의 외연과 밀접하게 연동되는데 이를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문유미 선생님의 지적은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와의 대담으로 정리했는데, 꼭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와의 대답임.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글쓰기 방식의 복합으로 이야기해야. 비서구 정치언어 한국형 개념사의 모델 개발, 이론화 작업 이야기 할 때이다. 선험적으로는 하영선 선생님이 이 일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한 것이 전략적으로도 효과적, 존재론적으로도 정당하지 코젤렉 호명하는 것이 맞지 않다. 루먼이든, 스키너든 누구든 그 사람들의 개념사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문제의식에 따라서 사례연구 찾고, 한국적 개념사의 이론화가 모색이 되는 것이 맞다.

존재론, 목적론, 실천론이 다 뒤섞임. 학생들에게 분석방법으로 교육하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필자들이 조금씩 밝히는 목적론이 있음. 전재성, ‘사대질서가 미래질서의 대안적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언급. 손열, ‘동북아시아 지역담론 개념을 다루는 소프트파워 경쟁 측면이 있다.’ 개념사를 쓴 것 자체도 그 논쟁에 참여하는 실천적 측면이 있다.

개념사 현장에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가? 한외사를 영어로 가르치게 된 독특한 맥락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국제정치학적으로 선별적 구성 필요, 구성을 꾈 프레임 필요했는데 개념사 유용한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용했다.

마상윤: 김현설, 강동국, 문유미 챕터 왜 나눠졌을까? 강동국 챕터의 국제정치에서의 ‘자유’는 일반적 생각한 자유와는 다른 것 같은데 왜 다뤘는지 궁금하다. 문유미 챕터와도 같은 것 같으면서 다른 듯. 기존의 하던 것 포장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coherent하게 시작된 것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짐.

강동국 챕터에서는 이를 자유라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개념이 단절된 것을 보여주는데 급하게 읽어서 혼동스러움. 박정희가 생각한 자유는 국가의 자유, 자주. 예전에는 자유가 자주의 의미로 쓰였던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자유라고 읽어줘야 하는가? 김현철과도 연결되는데 왜 6장, 7장은 90도로 나뉘었을까

김현철: 원래 강동국 부분과 중복한 부분이 있었음. 1권에서 안 나온 주제를 나눠 쓸 때 국제정치의 자유의 개념을 쓰려고 하니까 민권 부분 개념은 역사적 사료에서 잘 안 나온 부분, 명확하지 않은 부분임. 근대 한국 시기에서 개념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고 중첩이 됨. 자주독립, 주권 등. 시사하는 바가 중첩되는데 이를 나누다 보니까 챕터가 나누어짐. 인용하는 사람도 중첩되고, 애로사항이 있지 않았는가.

개념사 시작의 의도가 책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의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개화파 논의한 것처럼. 19세기 구한말에서 서구 근대정치제도, 얼마만큼 받아서 근대, 자주독립을 추구했는지, 한국적 국제정치 찾아보기 위해서 시작. 개념사 하면서 처음 부국강병 관심이 생겼는데 부국강병은 영어로 개념화를 어떻게 하는가 궁금. 19세기 알기 어려우며 모노그래프를 만드는 데서 끝. 결국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서구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글 쓴 것과, 역사 공부해서 근대, 19세기를 해서 20-30년 개념사를 쓰라고 하면 못 쓸 듯. 반강제적으로 지도 받으며 썼기 때문에 무식하게나마 용감하게 끼워 맞힌 시도였음.

작업을 하면서 여러 자료집을 만들면서 서양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한국 역사학자들도 관심 갖게 되고, 서양정치사 하는 쪽도 관심 갖게 될 때가 있을 것. 계속 무식한 사람들이 이런 작업을 한, 두 세대 거치면 서구, 일본에 있어서의 개념사정도의 연구성과 나오지 않을까.

손열: 3권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며 편집과정에서는 시간에 쫓겨 일 하다 보니 새로운 리서치보다는 기존에 가졌던 것을 가져와서 모으는 성격이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 책의 인트로가 없는데 개념사 1권의 서문과 같이 문제의식은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굳이 안 씀.
내용상 오버랩된 파트도 있었는데, 그런 문제보다는 권 1보다 권 2가 나아진 것이 무엇인지, 많이 나아진 것인가? 챕터 간의 불균형은 상당히 있는 것 같고 그래서 3권이 필요하다는 생각. 만약에 한다면 개념사와 동시에 전파사. 전파는 일반적 국제정치학에서 더 나아간 것이 무엇인가. 상당한 elaboration도 필요하고, 여러 작업이 필요한데 리딩들이 잘 연결이 되어 앞에 이론적 파트를 잘 구성 못한 것이 책의 구성이나 책의 수준의 규모를 정리되지 못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다음으로는 복합세계로의 고민을 받아 서문 쓰면서 전체 책이 살아날 것 같다는 생각.

꼭 개념전파사가 19세기 transformation을 다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변환의 세계정치도 또 한 차례의 변환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개념의 전파사에서도 또 쓸 수가 있고 장벽이 크지 않는 개념사, 전파사 할 수 있는 서문과 책이 필요.

김범수: 개념사와 사상사, etymology라는 언어학적인 것은 비슷하게 제도사인 듯. 제도사와의 차별성을 가지면서도 연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음. 여기서 한 작업이 얼마만큼 차별성, 연계성이 있는지 앞으로의 작업에서 고민 필요. 확실히 개념사 속에서 정치관계 변화, 정신사의 변화, 사상사의 변화, 등을 같이 담아내야 하는데 쉽지 많은 않은 작업인 듯. 3권에서 이를 어떻게 복합적으로 할 수 있을지.

윤비: 3권을 쓴다고 할 때 반면교사로 보면 서양의 논쟁이 아직까지 중요. 여전히 한가지 문제의식에는 동의하고 있다는 것인데 적어도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열리는 시기에 서양문화 전면에 걸쳐 개념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떤 점에서 한 편으로는 민병희 선생님의 지적 타당. 그 전의 것을 모르는데 그 다음 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나? 스스로 전근대에 가지는 naivety에 대한 변명은 ‘전환시기’라는 것. 서유럽의 전환을 쭉 훑겠다는 문제의식과 비슷.

1, 2권에서 중요한 개념사에서 그림을 그려봤다면 그 다음 나아갈 점은 한국의 개념사 전파의 애매한 시기 일제시기가 아닌가. delineate했더니 어느 시기에 집중적으로, 개념변화가 일어났다. 그 시기에 집중해서 그 내용에서 깊이 안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개념들, 한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 변화를 chopping할 수 있다면 중요한 작업. 과거로부터 개념을 쭉 linear하게 훑는다 아니고 어느 중요한 지점을 찾아냄. 개념의 변화 혁명적일 수 있고 그 이전의 문화적 변화가 한 사건, 계기로 확 꺾이기 시작하고 Leading concept이 생김. 이 또한 하나의 strategy로 할 수 있지 않나. 서양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우리처럼 어떤 특정 시기, 압축적으로 일어난 급속한 시기가 있었으므로 찾기가 더 쉽지 않는가.

조동준: 1권과 2권의 전파연구를 보면서 일종의 압도를 당했다. 개별 연구자들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각 개별연구자가 압권을 했으나 개념사 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

김상배: 과거 역사로서의 개념사가 아니라 미래 개념사는? 100년 전의 연구모임이 있다면 100년 후의 연구모임에서는 정세연처럼 개념 연구할 수 있지 않나. 전파, 복합 같이 가야하며 복합 안에 들어있음. 서양의 개념을 transfer받은 것도 아니고 diffusion에 압도한 것도 아니고 형성과 translation이 작업이 있음. 우리가 소개한 개념을 사후에 어떻게 읽는가? 복합, 복잡이 어떻게 다른가? 유럽, 미국의 complexity와도 다르고 단순하지 않고 translation된 요소가 많음. 매력도 소프트파워에 직역이 안됨.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다르기 때문에. 네트워크, 지식질서도. 그런 면에서 어떤 점에도 정세연에서도 개념사 3권, 미래의 개념사를 짚어보는, 우리 스스로 역사를 먼저 써보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나.

하영선: 복합이나 마찬가지로 개념사 공부의 시작은 단순했던 것을 이해해주길 바람. 편집본의 글들이 지나치게 다양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공동 테마가 있었음. 공부의 처음 출발은 개념사를 하려는 의도적 생각은 없었고 대단히 소박했다. 동주 국제정치학의 출발은 질문 부터가 미국 국제정치학과는 달랐으ㅁ. 미국 국제정치학의 출발은 한국구제정치학처럼은 못 먹고 못사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 따라서 미국 일반 국제정치학이 일반 국제정치학은 아니지만 일반국제정치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주의 눈으로 보면 비교정치학은 대부분 그럴듯한 사기이고 현실의 90%는 전파정치학이다. 을인 한국이 갑인 서양의 제도, 개념, 행동원칙등을 전면적으로 19세기 중반이래 받아들였는데 을을 갑과 독립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갑에 놀아나는 것이다. 미국에 가서 비교정치학의 세뇌를 받고, 비교할게 아닌데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파된 것을 독립된 갑과 을로 비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쓰는 정치학과 국제정치학의 기본 개념들이 언제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으며 또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가를 따져 보려니까  자연스럽게 19세기 서양개념의 전파변용사를 따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는 현실을 표현하는 국제정치 언어의 내 내포, 외연이 한번도 정리한 적이 없었음. 서양적인 것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전통적인 것들과 어떻게 복합화되었는가를 제대로 정리해야 함. 근대에 비해 전통 연구가 취약하다는 지적은 타당하며 앞으로 공부가 더 진척되어야 함.

권력, 국가, 기술 등 새로운 갸념들을 다루면서 사학자들에 비해 1차 자료를 제한되게 다뤘지만 이박사 지적처럼 주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분명 괄호 안의 주어는 아시아인이거나 한국인이다. 한국의 개념사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게에 있어서 개념전파의 경로를 밝히고 있으나 이 ,문명,국제,국내의 3중 담론전쟁 분석단계로 가야 함. 개념형성사  1권, 2권이 엉성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본 사뢰과학 개념들을 다루려 헸으므로 일정 정도 문제의식의 동질성은 있었다고 생각함. 괄호 속의 내가 처음 개념을 쓰면서 겪은 삼중의 고통은 독일, 핀란드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음. 1권의 중심 문제의식인 “I”가 빠지면 연구는 세련되더라도 커다란 문제를 유발할 것이므로 갑과 을의 두 개가 복합 되어서 3권이 나온다면 훨씬 의미 있을 것

내가 2권에 서론 대신 일종의 도론(導論)을 쓴 이유는  기존의 동양 개념사 연구가 서양 개념의 동아시아 전파 변용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21세기 한국 개념사 연구는 동아시아의 재부상과 함께 점차적으로 대안개념의 모색을 염두에 두고 전이(transfer)에서 역전이(retransfer) 까지를 고려해야 한다면 형성사적인 시각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임.. 1권이 19세기에 집중되어 있던 것에서 2권의 도론은 21세기 한국 개념사공부의 방향을 제해 보려는 의도였음. 윤교수의 지적이 정확함. 중국 연구자들이 21세기 global governance 논의가 21세기 문제의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천하(天下)개념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천하에도 문제가 있다. 중국이 좁은 의미의 nationalist “I” 의 시각에서 제기하는 천하나, 서양의 글로벌 거버넌스나 모두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을 퍼 담기 어렵다.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사회과학적 분석력을 키워서 양 쪽의 한계를 넘어서야 함. 우리는 갑을 따라가는 을이 아니라 이제는 공부를 병의 입장에서 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을의 공부를 반복할 것인가? 개념사 3,4 권이 다음세대에서 나온다면 병의 개념사가 나와야 한다. 원래 소박한 의미의 1기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1,2권이 오늘 나온 좀 더 세련된 커멘트들을 받아들여서 3, 4권을 준비한다면  갑, 을을 넘어서는 병의 연구가 이루어져서 서양이나 동앙을 넘어 선  새로운 일반 연구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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