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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미,"일진회연구", 김봉진,"조선근대 공개념변화"
 

2004-08-03 
2004년 4월 10일 전파모임

* 참석: 하영선, 최정운, 구대열, 김봉진, 손열, 신욱희, 전재성, 김상배, 문유미
* 발표: 문유미, "Reformers and Subordinates: Ilchinhoe and the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1896-1910" , 김봉진, "조선 근대에서의 '공(公)'개념의 변화-김윤식과 유길준을 중심으로" ,

* 문유미 발표

2장. 일진회가 가지는 갑오개혁으로부터의 Genealogy
3장. 문화낙후지역 -> 선진지역 으로 가는 평양. 보수적 유교주의와 거리가 멀었음. 중국과의 갈등이 심했음. 반미, 반영 폭동 by 광부. 국가행정체제가 견고히 있었음. 국가권력에 대한 양면적, 적극적 태도. 일종의 백그라운드
4장. 일진회 등장과 러일전쟁과의 연결. 러일전쟁 중 의주 등지에서 동학의 대중집회가 열림. 의주군수의 보고서에서 볼 수 있음. 단발식을 하게 됨. (도시 중심의 대중집회) 대규모 전쟁물자 조달문제
5장. 조세저항문제. 포퓰리스트 개혁주의로서의 일진회 활동. 인민의 권리와 이해 실현의 추구. 그러면서 정치적 기반 확립. 반국가적, 비민족적인 모토. 낙관적이고 공세적인 태도. 잡세혁파. 준 공적 조직으로 확립. 갑오개혁과의 연속성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을 살펴볼 수 있음.
8장. 중앙정치와 지방을 연결. 이토 히로부미 중심. 안정성을 어떻게 추구해 나갔는가.

두스의 테제와 달리, 개혁주의의 시대였고 그것이 근대국가 형성이 아닌 중앙권력에 대한 견제로의 방향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좌절되었다. 식민성과 근대성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국내 개혁주의 세력의 좌절로서 근대성이라는 것이 기술적인 diffusion, 문화적 센세이셔널한 흡수, 정치적인 혁신이 결여된 형태가 유지되는 식민지적인 특징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식민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주장이 조금 더 필요하다.

구대열 : 상당히 controversial한 문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문제임
정책결정과정에서 일본이 합방을 얘기할 때, 개혁주의와 통치정책간의 연결문제를 제시.

전체적인 맥락에서 국내적인 요인,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판단이 전체 합방 문제에서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두스의 문제의식을 압도할 정도로 힘을 가지는 것인가? 지적하는 측면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는 하지만 과연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것인가?
이 페이퍼의 position문제.

문유미 : 일진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합방을 약간 부차시한 면이 있음. 결과적으로 친일적 개혁주의가 좌절이 되면서 고종폐위 이후 de facto 합방 (Duus)의 논의가 엄밀하지 못하다. 과대해석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친일적 개혁정부의 좌절의 원인은 반드시 개혁주의가 약해서가 아니라 국내개혁주의의 초점과 일 식민주의자들의 간극이 있었다. 일진회의 경우 민 중심의 해결, 일본은 국가주의적인 해결을 원했음.

구대열 : 일본 내에서는 이러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

최정운 :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 개화역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하는 문제에까지 연결됨. 인물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써야함. 서재필식의 개혁론의 얘기가 국가개혁론에서 국가견제론으로 와서 국가파괴로 나아가게 되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는 이야기.

하영선 : Duss와 논쟁을 해 본 적이 있나?

문유미 : 실제로는 없고 일본 세미나에서 일본 교수들하고 세미나 발표를 했었음. Duus에 대한 비판은 맞는데 어떻게 이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 제기됨.

구대열 :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전면에 나섰다고 한다면 말이 될 수 있는 이야기.

최정운 : 일진회는 미온 세력이다.

하영선 : Duus 입장에서 발표를 들으면, 미시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의문이 가는 것이 있다.
       
갑오개혁때, 군국기무처를 보면, 17인 위원회가 열리게 되는데 6인 소위에서 미리 짠다. 긍정적 연계라는 표현이 여기에 있는데, 김가진이 하는 발언과 유길준이 하는 발언이 어느정도가 긍정적이고 어느정도가 활용적인 연계인가? 기왕의 엘리트쪽, 일본와의 연계를 유미 경우에 새롭게 해석, 약간의 과장을 가진 positive한 해석.
       
Duus 눈에는 일정한 정도 속마음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을 끼고 갈 수 밖에 없고 한계를 가지면 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3국간섭이 되고 1904~6년쯤 되면 일본의 힘이 다시 커지는 상황이었음. 따라서 일진회의 선택의 폭이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대로 놔두면 활용적 연계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일본이 과감히 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일진회 입장에서 활용적 연계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 당시 상층부의 분위기는 일본의 눈치를 보는 면이 없지는 않는가?

문유미 : 김가진 류의 엘리트 세력은 국가주의적인 엘리트주의 세력, 국가 주권에 대한 의식을 하고 있음. 일진회와 같은 방식은 아닌 것 같음. 일진회는 이러한 의식이 없거나 상당히 약한 것 같음. 반국가적 자신 집단, 대중의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보고 있음. 민족주의 전단계 의식이다.

하영선 : 헤게모니 장악에 대한 것은?

문유미 : 이데올로기적 맹점 부분인데, 아시아 연대론을 믿었던 것 같음.

구대열 : 사회주의와 연결되지 않는가?

문유미 : 연결될 가능성도 있음

구대열 : 대동단 규약을 보면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 있음 , 대동단의 대부분이 일진회 출신임.

문유미 : 연계는 가능하다고 봄. 1920년대 국제주의적 흐름을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또 어떻게 사적 소작쟁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공부가 필요.

최정운 : 포퓰리스트 얘기를 했는데, 해방시점에 보면 우파

하영선 : 일진회 이름의 유래는 ?

문유미 : 유신회에서 일진회로 바뀜, 일진이라는 것이 러일전 시에 일본적인 영향력이 강한 면이 있기는 있음.

최정운 : 글 남긴 것이 많이 있나? 선언문, 격문 등

문유미 : 자체적으로는 일진회 역사, 다이어리, 선언문도 많이 있고, 주로 본 자료는 지방관들이 기록한 자료임. 일진회가 컸기 때문에 대부분임. 사실적이어서 정보가 상당히 많음. 특히 황해도 일진회의 경우 재미 있음. 지방관리가 권한을 주게 되고 일본은 개입해서 압력 행사.

하영선 : 일진회 조직이 어떻게 운영?

문유미 : 지부가 있음. 지부 내에 섹션이 있고 동원력이 상당히 많음.

하영선 : 운영비는 어디서 조달?

문유미 : 초기에는 걷은 것 같음. 1906년 손병희가 빠져나오면서 많이 줄고, 재정적 위기상태에 빠지면서 원산지역에서 자체 사업. 일본, 일본군으로부터도 돈을 받음.

하영선 : 큰 조직이라면 러일전쟁이 승세로 가는 경우에 일본의 입장에서 공작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민중적 개혁주의자들의 헤게모니를 증명하는 딜레마가 최대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임. (일본과 충돌할 때에, 활용? 이를 진짜로 고민을 했는가?)

최정운 : 전민족주의에 대한 것은 문제가 있음. 서재필이 미국에서 올 때, 민족주의를 하나다라는 것으로 전제하고 들어가고 있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 혈의누를 보면, 우리민족도 일본과 만주하고 합해서 세계로 진출해야 함을 얘기. 얘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마찌니적인 민족주의를 살펴볼 수 있음.

문유미 : 전민족주의에 대한 말은 비민족주의적으로 바꿔야 할 듯

구대열 : 사회적 스펙트럼에서 살펴보아야 함. 일진회 내에서도 충분히 가능

최정운 : 백성이 잘사는 것이 핵심, 독립협회와 연속성이 보이는 것임.

문유미 : 민족이라는 공동인식?

최정운 : 얘기할 필요성이 전제되어 있음

문유미 : 배타적인 주권에 대한 주권이론으로 귀결시키면, 윤치호, 애국계몽운동의 부류는 주권의 자율성에 대한 의식이 살아있음. 일진회는 배타적인 의식은 상당히 약함. 인권적인 담론이 더 많이 나옴. 그래서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임.

최정운 : 그래서 쁘띠 부르주아적인 것이 아닌가.

문유미 : 머슴들도 포괄함.

구대열 : 외교문서에 보게 되면 기독교, 선교사가 나오게 되는데, 반일진회적인 입장이 없는가? 그리고 이슈의 독창성이 상당히 복고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나?(근대적인 것과 관계 없는)

최정운 : state buliding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임.

문유미 : 기독교 부분은 러일정쟁 이후 급속하게 반일화, 평양지역에서도 나타남. 실제 의병운동이 1906년 정도에서는 급속해짐. 찬송가 가사를 외우면 살리고 못외우면 죽이고  의도적으로 개입시키지는 않았음.
       
이슈의 독창성에 대해서, 독창성이라기보다는, 중요시하는 요소가 일본 국가중심적인 초점과는 상이성을 보인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을 듯.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등장, 이데올로기의 소비가 보임, 일진회는 복고적인 것에서 전향한다고 봄. 도시적인 대중집회문화의 원형이 나타남. 근대화 이행과정인지 우리의 특수한 것인지는 확인을 해봐야 함.
       
농민봉기에서 참여자로서 민을 두지는 않았음. 이 단계에서는 참여자로서 들어가는 것이 좀 다른 것이 아닌가.

최정운 : 일본의 공작부분은 상당히 고수의 공작으로 보임. 태극권 방어의 원리와 비슷.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는 것. 개혁하겠다는 힘을 이용해서 친일로 만드는 얘기.


* 김봉진 발표 (발표문 참조)

최정운 : 공(公)개념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김봉진 : 유교적 공개념이라는 것이 공공성, 공공이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생각해야 함. 서양의 public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님. 공이라는 단어 뿐 아니라 개념의 내포/외연하고 있는 용어들이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가를 보려고 하는 것임. 논문에서 공 개념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음. 공이 포괄하고 있는 요소들이 용어가 달라지더라도 들어가 있음. 전통적 공개념에 해당되는 개념들이 원서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임.

대동이념과 기독교 부분에 공이 사라진 것처럼 보임. 공은 평분(平分)이다 라는 것이 가장 잘 표출되는 것이 대동임. 대동을 주장하는 것은 각각의 사를 보장하는 것의 총합으로 기반하고 있음. 반드시 현실도피하자는 것이 아님. 공이 동서양을 뛰어넘는 것임. 공이라는 것이 다른 개념과 결합되어서 쓰이게 됨. 서양의 도와 동양의 도를 총합하는 것으로서의 공도를 생각하게 됨.

최정운 : 공 개념은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가?

김봉진 : 다르다고 본다.

최정운 : 공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면 서양 공 개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면 다름의 핵심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김봉진 : 유교적인 공 개념, 서양의 공 개념을 비교한 논문은 없음. 서양의 공 개념은 public이 쓰인 것이 로마시대 공화정, 정치형태로서의 용례, 윤리적인 도덕적인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음.

최정운 : 근대 서양의 공개념으로 한정해서 얘기하면?

김봉진 : 윤리적인 개념 결여, 근대로 넘어오면서 시민사회로 넘어오는 공공성의 공 개념, 때로는 국가적 공이라는 극단으로 나뉘게 됨. 동양의 경우 두 가지를 포괄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국가를 넘어서는 공 개념이 있음. (천으로부터 인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같이 움직이고 있음)

최정운 : 천자의 공은 사를 합친 것이다. 라는 말은 서양하고 굉장히 다른 말임. 루소가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을 합친 것이 전체의 욕망은 아닌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어떤 식으로 교차될는지.

구대열 : 일면 이해가 되면서 일면 헷갈림. 대동 -great harmony -각자가 각자의 일을 하면 대동적인 사회가 된다. 라는 의미? 공자와 예수의 논의, 이것이 바로 좁은 의미에서의 하모니인가?

김봉진 : 그렇다.

구대열 : 권리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김봉진 : 개념은 찾을 수 있다.

구대열 : 관계에서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러면서 권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유교에서 권리를 논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봉진 : 서양에서 시민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억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권리가 그만큼 억압되고 차별 소외된 계층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분기점을 서양세계에서는 근대에 경험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동양에서는 권리라는 것이 인민 혁명으로 가지 않을 사회제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시스템이 권리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스템이었는가? 라는 문제가 제시될 수는 있음.

구대열 : 김윤식이 이런 글을 35살에 쓰게 되는 배경이 어떻게 되는가?

김봉진 : 김윤식이 선생님을 여러 번 바꿔가면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 시기는 박규수 문하로 들어가서 만 10년이 되는 해임.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봉건론이라는 것이 딱 그때에 나왔는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10년 정도 되니 알만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구대열 : 신미양요 같은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인가?

김봉진 : 개혁적이자 복고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측면이 있음, 그러나 근대지향적이지는 않다.

최정운 : 공법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만국공법인가? 어떻게 보면 서양의 공개념의 특이성은 공간의 analogy아닌가. 희랍에서부터 근대에까지 공간의 의미.
공법이 publicity의 예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데에서는?

김봉진 : common, public의 개념을 보면 공간의 측면이 있음. 이러한 공 개념은 유교에는 없음. <시경>의 용례로서 군주나 官府의 지배기구라는 뜻으로 '공'이 쓰이는데, 이 때에는 국가의 공, 통치체로서의 공 개념이며, 공간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러나 주로 논의가 되는 것은 '사(私)'의 대립개념으로 '평분(平分)'의 뜻을 가진 공. 이것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임. 일본의 경우, 공간의 개념이 강함. 전통적으로 근대와 접합되는 부분이 많음. 피라미드형의 공간 개념.

최정운 : 서양의 종사제도로 가면 공간의 개념은 없음. 일본의 경우 그것을 공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봉진 : 후쿠자와가 한 얘기임. 서양의 공법관계를 설명하면서 이야기 한 것임.

구대열 : 서양의 조약문들 서문에 보면 Christian world라는 말이 꼭 나온다. 이것은 제한된 공간이다. 한정된 것임. 국제법을 설명하는 데에 엄밀함은?

김봉진 : 유길준이 공법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짐. 공법의 비판을 할 때에 그런 말을 하게 됨.

최정운 : 만국공법이라는 번역은 누가 한 것인가?

김봉진 : 1864년 마틴이 만국율례라는 것으로 제출하는데 청나라 번역을 붙여서 만국공법이라고 나옴.

최정운 : 만국공법의 공이 열린 공간의 공이 아니라 국가 권력으로서의 공이 아닌가?

하영선 : 국제관계인데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전쟁과 법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 않나?

서양의 '공'개념과 동양의 '공' 개념을 비교하는 연구가 많아지고 있는데, 왠지 방어적인 연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듬. 열등감의 발현이 아닌가. 우리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동양에서도 있었다라고 서양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움직임 아닌가. 다음, 글이 재미있어지려면, 19세기 조선의 안과 밖의 공을 다루기 위해 김윤식과 유길준의 글을  비교한 다음에, 그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더해주어야 함.

김윤식은 예와 공의 사이에 있고 유길준은 예에서 공으로 간 경우에 국제관계의 싸움 속에서 법이 있다고 한다면 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김윤식이 바라보는 만국공법과 유길준이 바라보는 만국공법에는 부명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시대의 사고 정형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김윤식은 전통의 기초위에서 제한적으로 근대 문명으로 가자는 것이고, 유길준은 서양 문명을 기초로 받아들이되, 우리 것을 품는 뱡향으로 가자는 것 아닌가. 만국의 공법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유길준과 김윤식의 인식의 기초가 명백히 다른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듦. 예를 들어, 양득론과 양절론, 왜 서로 다른 얘기를 하게 되는가? 유길준과 김윤식의 만국공법에 대한 시각차의 사상사적 평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봉진 : 결론 부분이 없는 것을 보완해야 할 것 같음.

하영선 : 제대로 공이 되지 않아서 망했다. 다만 없던 것은 아니다. 라는 뜻 아닌가?

최정운 : 서양의 근대 공 개념은 개개인이 모여서 public이 된다는 것.

하영선 : 동양에 개개인이 있는 것인가?

최정운 : 없다. 유길준 통의의 개념을 자유의 한계로서 말하고 있는데, 후쿠자와한테 들었던 것이지만 로크적인 통할 수 있는 의지로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로크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임. 이를 어떻게 표현할것인가의 고민에서 통의가 나온 것임. 19세기 말까지 제대로 된 공을 쓰지 못하고 있음. 알고 있어도 쓰지 못했던 것 아닌가?

김봉진 : 공공이라는 말은 주자에서 나옴. 천지인의 공공이라는 말이 나옴. 리를 설명하기 위함. 조선에서는 나오지 않음. 일본에서는 나오고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로 보고 있음.

최정운 : 의회라는 것은 독립신문에서부터 나오는데, 유길준은 말을 하는가?

김봉진 : 군민공치에서 의회 및 보통선거에 대한 얘기까지 나옴.

최정운 : 의회얘기를 했다고 한다면 서양의 공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음.

김봉진 : 공이라는 단어는 많이 등장하지는 않음

구대열 : 공에 practical한 의미는 없는가? 적용하는 의미는 어떠한가?

김봉진 : 한비자에서 말하는 공은 쥐고 있는 것을 연다라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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