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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일기>7권
 

2003-01-22 

2000년 6월 세미나 기록

 

일시 : 2000년 6월 10일(土) 오후 3시-8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활관 3층 2회의실
참석 : 하영선, 박지향, 손열, 장인성, 신욱희, 김용직, 김영호 
독회내용 : 윤치호일기 7권

 


 

주요토론내용

 

공지사항

히라노 선생 팀의 방한은 빠르면 연말 또는 겨울방학 중이 될 것임. 지난번에 발표를 안 하신 분은 필수적으로 하고, 하신 분 중에서도 자원자가 있어야 할 것임. 일본측에서는 준비를 해오면 상당히 꼼꼼히 할 것으로 판단됨.

 

김영호 교수 발제: 요약문 참조.

 

하영선 교수

친일의 구조를 다층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음. 개인사적으로 친일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지만, 조선의 국내역량의 부실, 한일간의 동학, 국제수준 등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리해야 함.

 

신욱희 교수

YMCA에서 무슨 활동을 했나?

 

김영호 교수

교육관련 일을 했음. 자금 조성 등의 역할. 국내에서 생활하려면 총무자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음. 윤은 3·1운동에 YMCA가 관여하지 못하게 막았음.

 

김용직 교수 발제

윤치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일기를 읽을 때는 좀더 신중해야 할 듯함. 윤치호는 명백히 3·1운동을 잘못보고 있다고 생각함. 일기의 사료적 가치는 상당히 있는 것 같음. 많은 것 함축되어 있음. 3·1운동에 관한 윤치호의 관은 명확하게 나타나 있음. (p.261, 265) 실력론, 전쟁론, 외교론 등 큰 3부류에 3·1운동은 포함되지 않음. 최남선이 사전 접촉을 했음. 협조요청을 윤은 거부함. 윤이 자문을 구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일본인임. 또한 YMCA 총무자리는 워낙 공개되어 있는 상황이라 행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판단됨. 기독교와 천도교가 손을 잡고 운동을 주도했음. YMCA 청년들은 거의 3·1운동에 간여했지만, 윤치호가 워낙 반대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준비가 다 끝난 후에야 얘기해주는 정도였음. 일본에서는 그 냄새를 맡고 자꾸 수색을 거듭함. 자신은 반일이나 친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함. 따라서 친일 대 반일의 유형 구도는 극복되어야 할 듯함. 반일친한, 친일친한, 친일반한 등으로 나눠보면 윤치호는 조선의 독립이 요원한 것으로 보면서 친일친한의 입장을 취하는 것 같음. 윤치호는 정치가로서의 identification이 없는 듯함. 그는 목사나 장로 등 종교적 색채가 짙은 듯함. 그런 성향을 이해는 하면서 글을 읽어야 할 것임. p.300에서 자신은 명예나 관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언함. 그는 일기에서 자기변호를 완벽하게 하고 있음. 일본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일본이 처음부터 total plan을 가지고 조선을 지배하려 하지도 않았고, 3·1운동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놀라고 구체적 대응방법을 잘 찾지 못했음. 이에 대해 윤치호는 서명으로 불만사항을 접수받을 것을 총독부에 제시함. 윤은 일본의 통치를 독일식 군국주의적 통치라고 비판함. 그러면서 자치운동 얘기가 나옴(p. 271-2). 윤도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제의 통치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됨. 일본은 선교사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가지고 있음. 또한 선교사가 3·1운동의 실상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림. 사전에 얼마나 관련이 되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감을 잡고 있었을 것 같음.

장인성 교수: 윤이 nationalism 또는 민족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송병준의 자치청원안은 합방청원 당시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즉 합방청원도 일본식의 통치가 아니라 19년의 자치안과 비슷한 종류였는데, 결과적으로 이용만 당한 측면도 있을 가능성이 있음.

 

김용직 교수

자치론도 세부적으록 구분해서 봐야할 필요가 있음. 즉 동화주의 자치론과 구분되어야 할 성질이 존재하기는 함. 일본 내에서 20년대에 야당이 조선의 자치론을 주장함. 집권세력은 자치를 전혀 고려한 적이 없을 것임.

 

박지향 교수

official하게 식민지 총독에게 체계적으로 지침을 전달하는 체계나 문서는 없었음.

 

하영선 교수

당시의 보이지 않는 networking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야 grand picture가 없었다는 일본 측의 다수 주장을 불식시킬 수 있음.

 

장인성 교수

내각과 총독 간에 갈등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었음. 기본적 인식은 공유하였더라도.

 

하영선 교수

전체적으로 틀이 짜여진 내에서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라고 보아야 할 것임.

 

김용직 교수

functional level에서의 데이터와 문서는 거의 있지만, high politics에 가면 근거를 밝히기 힘든 상황임.

 

하영선 교수

오늘의 핵심은 윤치호의 친일논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것임. 왜 윤은 자신을 친일이라고 선언했나? 개인 차원의 영리를 위해서? 윤의 친일명분화의 근거는 1. 국제역량의 활용가능성 없음. 2. 독립을 줘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 없음. 3. 일본 역량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지금 붙어도 일본에게 깨진다는 두려움. 따라서 장차는 모르지만 현재로서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정치논리로서의 친일이라면 평가가 다소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임.

 

김용직 교수

일본이 동양에서 가장 문명화되었다고 평가함. 그 수준으로 보면 일본에 호감이 가고 있음.

 

김영호 교수

p.349 국제정치의 본질에 대해 잘 평가하고 있음.

 

김용직 교수

윤은 정치에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음. 따라서 전략적 사고와 목표가 부재함. 이승만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집중적으로 파고 설득 논리를 만들고 있음.

 

장인성 교수

윤치호의 친일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고 생각됨. 문명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 그리고 일본의 조선 통치가 영국의 인도지배처럼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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