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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 <서유견문> 중 15편부터 20편까지
 

2003-01-21 

96년 7월 세미나 기록


일시 :1996년 7월 19일 (금) 오후 4시-7시
장소 : 서울대 사회대 국제문제연구소내 세미나실
참석 : 하영선, 최정운, 신욱희, 김봉진, 이성형, 손열
독회내용 : 유길준의 『西遊見聞』중 15편부터 20편까지

 


 

주요토론내용
 

『西遊見聞』 이후의 텍스트는 박영효의 『建白書』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文明論之槪略』으로 잠정 결정함.

 

14편이 실질적으로『西遊見聞』의 서론이자 결론부분으로서, 유길준 자신의 목소리가 드러나나, 이후 15편-20편의 내용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님.
-동양적인 전통과는 판이한 서양의 생활사, 생로병사, 관혼상제와 관련된 충격적인 모습을 이런 정도로 담담하게 서술할 수 있었던 이유를 파악해야 함. 장례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적 관념에 비추어 볼 때 그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농후함.
-사실상 거기서 드러나는 개인간의 예의범절이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역할을 하게 됨.
-Elias의 Civilizing Process에도 예의범절에 대한 내용이 뒷부분에 언급됨.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서양사회의 civility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려는 유길준의 의도는 무엇인가?
-유길준은 우리의 행실 패턴이 나름대로 개화된 것이어서 오륜의 도를 지켜도 된다고 얘기했음. 이것은 유길준의 상대주의적 사고를 보여줌.
-서양에도 개화된 행실이 있지만, 그것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는 의도에서 소개한 것은 아닐 것임. 관심이 있으면 보고, 부족한 점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의미 정도일 것임. 특히 여성 부분을 강조한 이유는 우리나라에 그 부분에 대한 고려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조선 초에 등장한 삼강오륜으로 정형화시켜 유교를 고루하고 고정 불변한 것으로 보는 태도는 문제가 있음.
-남존여비의 내용은 유교경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
-삼강오륜에서의 '朋友'는 서양의 평등관계와 대등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고, 박영효가 『建白書』에서 '信'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관념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음.
-'夫婦有別'에서의 '別'도 차별이 아니고, '구분'의 의미로 파악해야 함. 조선 중기까지는 재산을 균분 상속했음. 분배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장자상속이 등장했고, 중기 이후에 이와 관련된 ritual논쟁은 흐지부지됨. 그렇다면 중기의 양란이 조선사회의 z ms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 근대로의 유연한 발전에 장애를 안겨준 시발점이 아닌가?
-후쿠자와는 초기에 자연법사상과 만국공법을 빌어 국가 간 관계를 설명하였으나, 후기에는 '만국공법'이 1문의 대포보다 못하다'는 비유를 들어 부국강병을 역설함. 유길준은 논리 내재적으로 그렇게 쓸 수 없었는데, 그것이 조선과 일본의 차이. 즉 후쿠자와는 유교적 베이스가 약했음을 알 수 있음.
-유길준에서 보이는 평등관념은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근대'개념은 우리가 서양과의 접점에서 졌기 때문에 들어오게 된 것임. 따라서 서양의 시각으로 우리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기나 개념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임. 그렇다면 '전통 지식인으로서의 유길준'의 모습, '개화지식인으로서 radical한 유길준'의 모습 외에 제3의 모습을 모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앞 부분의 개화의 등급편제와 뒤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등 정리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서유견문'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개화라는 주제로 책을 편제할 수 는 없었을 것임.
-계몽사상가로서 백과전서식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한 것임. 유길준의 당시 일정상 15편,16편,19편,20편이 실제로 서유견문한 내용이고, 17편,18편은 후쿠자와의 책을 따르면서 부분적으로 그가 본 내용을 삽입한 것으로 파악됨.

 

'조공관계의 천하질서+만국공법'의 접합이 평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의 문제
-당시에 내치외교는 자주였음. 임오군란이후 청이 내치를 간섭하자 '방국의 권리'부분을 통해 '만국공법'개념을 도입하여 평등성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함. 즉 변형된 조공제도를 비판하고자 함.
-당시의 상황적 context속에서 주적 개념은 청(1882년 임오군란이 turning point). 청의 도발적 개입을 만국공법을 통해 치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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