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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9월 정례모임
 

2016-09-24 


한국외교사연구회 2016 9월 정례모임

 

일시: 2016.09.24.() 1:30~3:00pm

장소: 한국고등교육재단 지하 세미나실

 

1. 자료

- 주 텍스트:

노중국, «백제의 대외교섭과 교류» (2012)

- 보조 텍스트:

김기섭, <2014년도 마한·백제사 연구 동향과 성과>

문동석, <최근 백제사 연구 성과와 동향 – 2013년 연구 성과를 대상으로>

박윤선, <백제 국제관계사 연구동향과 시기구분 시론>

여호규, <총론: 6~8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연구의 진전을 기대하며>

유원재, <백제의 대외관계>

 

2. 발제 및 독회

*발제문은 개별 첨부파일 참조

- 노중국, <백제의 대외교섭과 교류> (지식산업사, 2012)

2: 이헌미

3: 전재성

4: 김성배

5: 김수암

- 공동연구 발제: 백제의 대외관계, 김수암

 

3. 토론 내용 정리

 

l  백제 시대 국제관계사 최근 연구동향 파악에 박윤선 박사 논문이 도움이 됨. 수나라(중국) 중심의 백제 해석을 비판. 백제의 양절외교정책에 대한 내용은, 19세기말 유길준의 양절체제론이 상당히 유구한 전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줌

 

l  수·당 통일제국의 등장 이전 중국이 분열되어 있어서 직접적으로 정치.군사적 원조를 해줄 능력이 없던 시기에, 삼국이 516국·남북조 등 중국 왕조들에게 책봉을 받은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l  신라의 경우, 북조와의 교류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외교적 목적 때문이었다고 추정됨. 그러나 남조에도 사신을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정치적 위상 강화 목적이 일정하게 작용했을까

 

l  노중국 선생 책 1편에 보면, 삼국시대 한중간 조공책봉은 의례적 상하관계였음을 지적. 중국이 내부 직제를 자기 주변국에도 투여하여 대외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발전. 군사적 힘의 우열을 넘어서서, 주변국의 조공을 받음으로써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다는 측면 존재

 

l  삼국시대 중국과 주변국들 간 대외관계 질서·규율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군사적/세력균형적? 규범적/제도적? 이 시기 동아시아지역질서 내지 한중관계를 설명할 통합적 분석틀 필요. 조선시대와 같은 유교적 중화관념은 강하지 않았을지라도, 문물·문화도 군사력과 더불어 조공책봉의 중요한 이유로 추정됨.

 

l  고구려 같은 군사강국이 왜 중국 왕조의 책봉을 필요로 했는가? 고구려는 북위에 대해서는 공세와 조공을 전환하는 정책을 사용하였음. 조공책봉은 군사적 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때의 선택지라고 볼 수도 있음. 혹은, 책봉은 기초적인 외교관계의 수립이라고 볼 수도 있음.

 

l  중국의 번국이라는 표현에 대해 삼국은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주변국이 중국과 맺은 외교관계를 으로 표현, 쌍방의 기록을 대조해 보면 은 외교적 관계이지 내정까지 간섭하지 않음.(의례적 상하관계) 내정까지 관여하는 관계는 신속’, ‘내속’. 결국 삼국시대 한중관계는 BOP에 기반한 가변적 외교 관계였다고 할 수 있음. 그런 면에서 힘의 우열과, 어떤 나라와 접경하고 있는가의 문제인 지정학이 한중관계를 결정하는 핵심변수였던 것으로 보임. 이렇게 보면, 사학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낙랑군의 위치가 중요해짐.

 

l  국내 사학·IR학계와 차별화해서 우리 연구회가 기여하기 위해서는, 명분 vs. 힘 내지 ‘Fairbank vs Rossabi’ 이분법을 극복할 complex한 해석틀이 필요함. 전 시기를 포괄할 하나의 작업가설로 정벌/기미/회유/예치의 4유형을 일단 설정. 전체 시기를 선진-진한수당-송원-명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진 시기에 조공책봉(=예치) 관계의 prototype이 나타나고 진한수당 시기에 본격적 형성이 이루어짐. 선진시대에 자라난 초보적예치요소가 확장되고, 516국 시대에는 현실에서 예치가 무너졌음에도, 관념과 의례 차원에서는 계속되었던 것. 일본 학계는 이 시기 출현한 예치의 prototype에서 기미에 주목. 예치+BOP, 명분+세력균형이 동시에 작동 중. 이것을 어떤 evidence로 보여줄 것인지가 관건임

 

l   4-6세기 동아시아 세력판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고구려-백제-신라-왜 간에 형세의 차이, 명분의 우열은 어떠했는가? 힘의 판도와 명분의 판도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함. 남조는 북위보다 권력의 정통성이나 문화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생각. 고려 시대 송은 요금보다 힘이 약함에도 명분상 우월.

 

l  그렇게 보면, 유교의 확산과 국가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봄. 유교적 정치이념·율령·논리의 수입.


l  이 시기 분석 모델이 복합적 변수를 고려해야 함은 동의함. 그러나 예치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이 국가·사회의 지배이념으로 확립된 다음에야 사용될 수 있는 단어이므로 조선시대 이전에 소급적용하기 어렵다고 봄. 명확한 용어 사용이 필요. ‘명분또한 이익+정체성이 섞여있음.

 

l  여호규 논문을 보면 중국의통일된 다민족 국가론은 몰역사적으로 정치화된 주장이고, 한국의조공관계론’, ‘역학관계론은 너무 이분법적이라고 비판. 일본학계의책봉체제론또한 중국 중심이라는 한계를 가지기는 하지만, 조공제도의 역사적 변화를 천착했다는 점에서 다시 읽어볼 필요 있음. 조공관계론(전해종)과 역학관계론(노태돈,노중국)의 복합 분석틀이 필요함.

 

l  적어도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대외정책 결정요인이 비교적 명확해지지만, 삼국시대는 율령국가 자체와 그러한 국가들간 관계가 여전히 형성되어가던 단계라서, 제한적 사료에 복합 분석틀을 명확히 적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음. 명분도도 클리어하지 않지만 형세도도 클리어하지 않음. 일단, 당시의 군사력 차이, 힘의 분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함

 

l  백제는 4세기 중반 전성기였다가 5세기에 절멸. ‘백제는 왜 망했나?’라는 절실한 질문.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국가형성 자체에 외재성·외부요소(전쟁이든, 조공책봉과 같은 외교든, 유교 확산 같은 문화든) 많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고대국가의 역사사회학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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