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21세기 한반도 통일은 21세기형 천하 그물망 짜기와 함께 共進해야”
 

교수신문 

2014-11-10 
문화의 안과 밖 40회차 강연_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 ‘평화와 전쟁: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지난 1일(토) 열린 ‘문화의 안과 밖’ 40회차 강연은 긴장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전망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강연자로 나선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외교학)는 학계 안팎에서 외교 전문가로 손꼽히는 학자다. 1980년부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했지만, 그의 경력은 다채롭기만 하다.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데서 알 수 있다.

 

현재 그는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며,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한국외교사 연구모임, 전파 연구모임, 정보세계정치 연구회, 동아시아 연구원 모임 등을 이끌며 한국 국제정치학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 저서 및 편저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2.0』(공저·2014), 『2020 한국외교 10대과제』(2013), 『복합세계정치론』(공저·2012), 『21세기 한국외교 대전략』(2006) 등이 있다.

 

“21세기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잠재적 위험성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문을 연 그는, “21세기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美·中 중심의 동아시아 복합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남고 통일을 이루느냐는 것”이 오늘 우리의 숙제라고 지적하면서 “21세기 한반도 그물망 통일은 21세기형 천하 그물망 짜기와 함께 공진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하 교수가 말하는 ‘21세기형 한국의 천하 복합 그물망 짜기’는 분명 낯선 모습이지만, 거기에 담긴 사유의 中核은 근대의 숙제인 남북통일을 넘어 동아시아와 지구의 공진에 기여할 수 있는 단초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흥미로운 부분은, 하 교수가 ‘21세기 연암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8세기 후반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갈파했던 대청 네트워크 외교론을 되돌아봤다는 데 있다. 미중 중심의 동아시아 복합질서 속에서 중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우리만의 ‘그물’을 짜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하 교수의 강연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 자료·사진 제공= 네이버문화재단

 

21세기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의 잠재적 위험성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평화의 역사는 전통 천하질서, 근대 국제질서, 현대 냉전질서, 미래 복합질서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진행돼 왔다. 19세기 중반 서양 근대 국제질서와의 만남과 함께 한국은 전통적 천하질서를 따르는 위정척사론, 해안에서 방어적으로 서양세력을 막아 보려는 해방론, 서양 질서의 작동원리를 빌려보려는 원용론, 천하질서와 국제질서를 함께 품어 보려는 양절론, 서양 국제질서의 새로운 문명표준을 따르는 자강균세론, 그리고 국권회복론을 차례로 추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국권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질서의 형성 과정 속에서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세계적 규모의 한국전쟁 비극을 맞이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 냉전질서가 지구적 차원에서 건축되면서 한반도라는 삶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피면서 김일성과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결정했고 남쪽에서는 이승만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조명해서 한반도에서 벌어진 세계적 규모의 한국전쟁을 재구성해 보겠다. 한국전쟁의 발발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1949년 3월, 1950년 4월의 김일성과 스탈린의 만남, 그리고 그해 5월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만남이다. 스탈린, 마오쩌둥의 국가적 이해관계를 등에 업고 북한은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을 시작했고 지구 차원의 냉전구도가 한반도에서 펼쳐진 것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세계적인 변화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서서히 긴장완화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미중 大데탕트가 시작되는 속에서 남북한의 小데탕트는 1972년 자주, 평화, 민주대단결의 ‘통일3대원칙’에 기반을 둔 ‘7·4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으나 상호 이견을 확인하고 사실상 폐기를 선언하게 된다. 7·4 남북공동성명이 1년 만에 폐기되고 남북한이 더욱 첨예한 대결로 치닫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마련된 데탕트의 침대 속에서 남북한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남북한 관계개선을 포함한 3중 생존전략을 추진했다면 김일성은 3대혁명역량 강화의 시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라는 국제 역량 강화와 남반부 혁명역량 강화를 통한 통일을 시도했다. 따라서 이런 시야 속에서 이뤄진 남북한의 악수는 미중과 달리 훨씬 더 첨예한 적대관계를 그대로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포옹을 불러 오지 못하고 대결 구도로 되돌아갔다.

 

21세기 초 미중 양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모색하는 새로운 흐름 속에서 ‘복합의 세기’라는 새로운 문명의 표준이 등장했다. 냉전이 해체되면 탈냉전의 시대가 찾아 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남북한도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만나야 한다. 복합 그물망의 통일 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지구촌, 그리고 사이버 공간의 질서와 새롭게 만나야 하고 동시에 국내 그물망 질서를 갖춰야 한다. 따라서 21세기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북핵 문제와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이 문제들을 21세기의 복합적 시각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21세기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푸는 핵심 고리는 북한의 경제건설·비핵안보 병진노선 2.0을 위한 공동 진화(coevolution)다.

 

첫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억제체제의 구축이다.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최근 나토군의 억지방어태세재검토(DDPR)처럼 한국형 억지방어태세재검토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 억제체제의 구축에 맞춰 남북한 관계개선을 모색해 북한이 경제건설 비핵안보 병진론 2.0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북한으로 하여금 병진노선 2.0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하려면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복합적으로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한 국제 공진화가 필요하다.

 

북한의 선진화와 함께 남북은 근대적 만남을 넘어서서 복합의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야 한다. 한반도는 21세기 통일 과정에서 동아시아와도 새롭게 연결돼야 하고 동아시아 질서도 공동 진화해야 한다. 우선 풀어야 할 숙제는 21세기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미중 중심의 동아시아 복합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남고 통일을 이루느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일본 같은 기존 우방과 중국과 같은 새로운 우방과 ‘복합그물망치기의 국제정치’이다. 한반도의 복합그물망 통일을 위해서는 21세기 천하통일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고의 핵심에는 전통적 자원력을 넘어서는 네트워크력이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한반도 그물망 통일은 21세기형 천하 그물망 짜기와 함께 공진해야 한다. 21세기 한국이 근대의 숙제인 남북통일을 21세기적 복합그물망 통일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와 지구, 더 나아가 사이버 공간과 복합적으로 그물망을 짜고 동시에 국내 그물망 짜기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9912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