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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아시아 신질서 위한 새로운 외교 절실
 

중앙SUNDAY 

2015-01-04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보는 한반도와 동북아

 

하영선(68·서울대 명예교수·사진)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연말을 중국 베이징에서 보냈다. 지난 6개월간 하 이사장이 이끄는 청년 공부모임 ‘사랑방’에 참여했던 대학·대학원생 7명과 중국 현지답사에 나선 것이다. 중국에서 바라본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어느 때보다 긴박했다. 하 이사장은 “2015년은 동아시아 신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넘어 각 나라가 바둑을 실제로 두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한국도 개별 외교 사안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국가전략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2020년 상반기쯤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넘어설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과 달리 충격받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GDP가 높아진다고 21세기 세계질서 건축의 중심 설계자가 중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 중국도 그렇게 예측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중국의 세기가 도래했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전통적인 세력균형적인 시각과 함께 네트워크 사고가 병행돼야 한다.”

 

-네트워크 사고는 어떤 것을 말하나.

 

“새로운 세력균형 속에서 한국이 동아시아 신질서의 설계자로서 미국과 중국을 엮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70년 가까이 한·미·일이라는 힘의 연결관계를 유지해 왔다면 그 네트워크는 심화해 나가면서 한·중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어떻게 접목시키느냐가 과제다. 예를 들어 대북 관계에서 시작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대(對)중국용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이 설명하도록 만들어야지 한국에 질문 또는 선택이 주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도 한국의 참여 여부가 논란이 될 일이 아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또 하나의 개발은행이 필요할 정도로 정말 인프라 투자 수요가 있는지가 관건이 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질문은 냉전적 사고로 볼 수밖에 없다. ‘either or’에서 ‘both and’로 가는 길은 없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흔히 영향력이라고 하면 압도적인 영향력을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념 자체가 자주·주체, 이런 것인데 중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려운 구조다. 중국은 그런 측면에서 한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핵 능력만 놓고 보면 북한은 이미 4차 핵실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유보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의 경고가 일정한 영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북·중 관계만으로는 부족하고 주변국을 모두 포함한 거대한 작업(orchestration)이 필요하다.”

 

-5·24 조치 해제, DMZ 평화공원 등 대북 유화책은 어떻게 보나.

 

“우리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핵심은 결국 북한이 그걸 받아들이는 게 플러스가 된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할 것인가 여부다. 남북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 일정하게 마련된 상황에서 양쪽이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의 경우는 공원의 물리적인 디자인, 위치, 지뢰 제거 등도 선결돼야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진전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북한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마식령 스키장 같은 것과 연계해 개발할 방법은 없는지, 겨울올림픽과 연결할 수는 없는지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도 자기 논리를 부정하면서까지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남북이 공동으로 하겠다고 하기만 하면 국제적으로 지원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남북과 국제기구가 DMZ 평화공원 건설에 함께 참여한다든지 하는, 그런 지적 상상력이 집중돼야 하는 것 아닌가.”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가 얼어붙어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북한이나 일본이나 그들의 신념, 속마음 자체를 도려낼 순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싫어하지만 아베 정권은 국민적 호응을 얻어 압도적인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평화적인 동아시아 신질서를 위해서라도 속마음은 바꿀 수 없지만 서로 행동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외교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는 타협이 가능한 그런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본이 사과·책임을 다시 한번 표명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아주 좁은 공간을 찾아야 한다. 또 양국 모두 국내정치 수단으로 악용하면 안 되고 그 한계 내에서 협력을 강화하자는 세 가지 원칙이 확립돼야 한다.”

 

- 2015년 한국 외교는 어떤 점에 신경 써야 하나.

 

“큰 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가 훨씬 보강돼야 한다. 남북 관계건, 미·중 관계건 일시적인 군사·정치 공세나 교류협력 강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2020년, 2030년을 내다보는 주도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청와대 컨트롤타워가 외교·통일·국방부에다 통일준비위원회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총체적인 액션 플랜의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안목으로 21세기 100년의 동아시아 신질서를 건축하려는 신외교가 절실하다. 외교·안보·통일 그리고 국내정치가 흩어져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국제·남북·국내역량을 삼위일체로 엮어낼 수 있는 마에스트로 지휘자가 필요하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6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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