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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 인터뷰
 

 

2005-09-02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을 하영선(서울대 외교학) 교수가 2일 만났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초청으로 경기도가 주최한 '2005년 세계 평화축전' 행사의 하나인 '도라산 강연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 도라산 강연회에선 지난달 28일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1일 구스마오 대통령에 이어 17일 테드 터너 CNN 창립자가 연단에 선다.

 

▶하영선=지금 동티모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진실'과 '화해'에 대해 먼저 얘기하자. 이 주제는 한국에서도 주요한 정치적 어젠다다. 대통령께서 담대하게 추진 중인 '진실과 우정 위원회(CTF)'는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노력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외의 여러 상반된 시각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구스마오=완전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래다. 우리는 고통받았고, 그리고 투쟁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정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어떤 정의를 우리가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동티모르를 짓눌렀을 때 국제사회는 그를 지원했다. 당시는 그것이 정의였다. 24년간 인도네시아군은 우리를 학살했다. 그렇다고 우리도 이제 그들을 학살해야 하는가. 물론 잘못은 징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군대도, 무기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징계는 증오를 낳고, 이는 다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평화로운 삶이다. 행복한 생활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우정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인도네시아는 분명 우리의 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과거의 일이다.

 
▶하=진실을 밝히기 위해 CTF의 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핵심 문제다. 한국에서도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적 군사정권기에 대한 진실 규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논의자 간에 의견이 갈려 진실찾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CTF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가 5 대 5의 비율로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적절한 위원을 위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구스마오=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염두에 둘 것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CTF는 우리가 제안했고, 출범시킨 기구다. 우리는 우리 미래의 모습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건 동티모르 국민 모두가 동의한 일이다. 인도네시아와 우정을 맺고 동티모르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지난한 과업을 우리가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우리도 일본과 진실.화해 문제를 안고 있다. 화해에 앞서 진실을 찾는 일 자체가 그리 간단치 않다. 반세기가 지나도 한.일 간에 무엇이 진실인지가 아직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과연 CTF가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가.

 

▶구스마오=우리는 오랜 배신의 세월을 지나왔다. 그러나 만일 인도네시아가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인정할 건 솔직하게 인정해야 제대로 된 미래를 함께 가꿔나갈 수 있다.

 

▶하=일본에 당신 같은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구스마오=미래를 위해 함께 일하려면 진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선 용서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무서운 징벌을 준비한 채 잘못을 고백하라고 다그친다면 진실을 들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리의 작업은 분명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해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와 손잡고 진실을 '재건설'하는 일에 힘쓸 것이다.

 

▶하=진짜 어려운 문제는 진실과 화해, 그리고 정치의 3각 관계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끌어나가느냐에 있다고 본다. 폭력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정치적인 현실주의와 평화주의, 그리고 전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늘 갈등을 빚어왔다. CTF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인도네시아와 우정을 맺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999년 대학살의 희생자들이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정의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구스마오=인도네시아와 화해하기 위해선 우리끼리의 화해가 우선돼야 한다. 우리도 우리끼리 서로 죽였다. 우리가 서로에게 한 행위를 공개하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서로를 안아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엇갈릴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단죄할 것인지를 제대로 가리기는 쉽지 않다.

 

▶하=동티모르의 미래에 대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구스마오=모두가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에게 '먼저 변화하라'고 촉구할 생각이다. 국가 체제는 10년 내에 완비될 것이다. 구체적인 비전은 나라의 모습이 제대로 갖춰진 뒤 다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한국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구스마오=갈등과 충돌은 실질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섣부른 중재자가 되려하지 말고 사람들이 토론하도록 내버려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앞서나가서는 곤란하다. 상처는 한번에 치료되지 않는다. 그러나 치료와 악화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치료된다. 눈과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하기를 권한다.

 

*** 하영선 교수는

 

서울대 학사, 석사 과정을 거쳐 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 교수의 주요 관심 분야는 한국의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다. 주로 핵무기 확산, 세계 질서와 한국,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 한국의 핵무기와 세계 질서, 한반도의 군비 확장에 관해 글을 써왔다. 현재 하 교수는 외교안보 전문가 86명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연구원(EAI) 지구넷 21'의 회장을 맡고 있다.

 

*** 구스마오 대통령은

 

1948년 동티모르 태생으로 75년 인도네시아 군대가 동티모르를 강제 합병하자 곧바로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을 조직해 무장 독립투쟁을 이끌었다. 81년 동티모르 민족해방군 총사령관으로 선출됐다. 92년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 체포돼 연금 생활을 하기도 했다.

99년 8월 유엔 감시하에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된 뒤 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 동티모르민족저항평의회(CNRT) 의장을 맡아 국가 건설을 준비했다. 2002년 4월 치러진 동티모르의 첫 대통령 선거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예수회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라틴어를 포함, 5개 국어를 구사한다. 동티모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공로 등으로 99년 사하로프 인권상, 2000년 제1회 광주인권상을 수상했다. 구스마오 대통령은 올 초부터 인도네시아와 공동으로 '진실과 우정위원회(CTF)'를 구성해 양국의 화해와 공동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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