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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다른 화법 경제건설 언급은 변화의 시작”
 

주간조선 

2013-04-29 

방미 박 대통령 향한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의 조언

 

 

▲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북한이 핵과 경제건설을 함께 추구하는 현재의 ‘병진론(竝進論)’이 아니라 핵을 뺀 비핵안보와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병진론 2’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국제적 공진(共進·coevolution)이 있어야 하며 우리가 그 중심이 돼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 때 자신이 내건 신뢰 프로세스에 어떤 기본원칙을 담을지를 명확하게 해 우리의 구상을 갖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끌어가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동아시아에 대한 ‘꿈(dream)’을 최근 부쩍 이야기하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건축주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신질서를 짜나갈 때 대한민국이라는 ‘주니어 디자이너’와 함께 신질서를 짜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인식시켜야 합니다.”

지난 4월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삼풍빌딩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원(EAI) 회의실에서 만난 하영선(66)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박근혜 대통령이 첫 정상외교 무대에 나서는 이번 방미(5월 5~10일)를 활용해 미국과 중국의 ‘꿈’을 능가하는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통찰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한반도 원칙에 맞서는 우리의 원칙을 갖고 미국·중국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하 이사장은 작년부터 국내의 대표적 ‘독립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을 이끌어오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담론을 펼쳐왔다. 하 이사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를 ‘복합 변환의 세기’로 규정하며 복합 그물망(네트워크) 정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대화’로 선회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성급한 판단을 배제하고 상황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언론은 ‘동아시아 MD(미사일 방어 체제)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케리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4월 13일)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6자회담 수석 대표의 3년 만의 미국 방문(4월 22일)을 계기로 미국의 입장 변화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케리 국무장관이 왔다 가면서 뭔가 변화가 있지 않느냐는 혼선이 일었는데 제가 보기에 미국의 원칙은 변화가 없습니다. 미국의 포지션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게 지난 3월 11일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밝힌 대북 4원칙입니다. 당시 도닐런은 △한국·일본 등 동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비롯해 중국과 협력한다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으며,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거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나 핵무기를 다른 나라로 옮겨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면 대응에 나선다 △북한이 더 나은 길을 선택하면, 미국은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북한 경제 개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등 대북 4원칙을 밝혔습니다.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으며,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 2에서 보듯 미국은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가 몇 차례 뺨을 맞은 것에 대해 굉장히 힘들어하고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지난해 1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해 양곤대학에서 한 연설입니다. 당시 오바마는 ‘우리는 과거의 감옥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 지도부를 향해 ‘핵무기를 버리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택하라. 그러면 미국이 내미는 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1기 행정부 때 베이징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가 뺨을 맞은 후 공화당 포지션을 지난 4년간 유지하던 오바마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에 첫 번째 신호를 보낸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신호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사일로 답을 했습니다. 북한이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깨는 과정이 여러 번 진행되었기 때문에 말을 두 번 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입니다. 북한이 단순한 의미의 레토릭을 구사해서는 실질적 협상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하 이사장은 “케리의 ‘MD 철수’ 발언도 중국과 얘기가 잘 풀려가는 과정에서 ‘북이 핵과 미사일을 폐기하면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로 MD를 뺄 수 있지 않느냐’는 정도로 얘기한 것을 미국이 전체 MD 시프트(shift)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확대 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 이사장은 중국 역시 대한반도 원칙은 변한 게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발표된 공식 성명입니다. 당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3원칙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3원칙은 지난 3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도,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 4월 13일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도 견지됐습니다. 우다웨이가 워싱턴에 갔지만 이 3원칙하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 이사장은 “우리가 정확히 짚어야 할 것은 미국과 중국과 북한의 기본원칙이 뭐냐, 기본원칙은 어느 지점부터 양보될 수 있는 것인가 등을 따져 그 위에서 한국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정리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미국의 4원칙과 중국의 3원칙, 그리고 핵무장을 하고 경제발전도 한다는 북한의 2원칙 사이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사실 답이 없는 3차 방정식을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 이사장은 “중국은 3원칙 중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동북아 평화 안정을 앞에 놓기 때문에 아마 미국을 만났을 때 북한을 적극적으로 테이블에 앉히는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은 할 것이고, 북한도 핵과 경제 병진론의 기본원칙을 유지하면서 테이블까지는 나올 수 있다”며 “하지만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고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 2와 ‘더 나은 길(better path)’을 주문하는 원칙 4가 핵 보유를 앞세우는 북한의 원칙 1과 충돌하면 어떤 형식으로 회의가 성사되더라도 실질적이고 내용 있는 결실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지극히 어렵지만 하 이사장이 오히려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다. 하 이사장은 “내가 보기에 미국이 바뀔 가능성은 없고 북한이 핵을 유지하는 한 미국이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도 명확하다”며 “결국 미국의 4원칙과 중국의 3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북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지점에서 하 이사장은 북한이 최근 ‘핵·경제 병진론’을 꺼내든 배경과 함의를 주도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작년 12월 12일부터 3차 핵실험을 한 2월 12일까지 내놓은 공식적 성명이나 발표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이를 보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선군(先軍) 언어가 등장합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소위 자주권의 일환으로 그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선군정치를 내세운 아버지 세대 때의 설명 방식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언어가 등장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해 이제 자주생존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경제건설이나 인민의 생활진작에 나서려 했는데, (미국이) 제재에 나서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말은 북한도 이제 투 트랙(two track)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복합론’이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농담 삼아 ‘북한표 복합론’이 등장했다고 얘기하는데, 자주생존권을 위해 핵을 앞세우는 것과 함께 경제건설이라는 두 번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선’이라는 것은 아무 데나 쓰는 게 아닙니다. 정책 결정의 최고위층에서 나온 것이고 이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이 등장하고부터 노선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핵을 앞세운 비대칭적 차원에서나마 병진론이 노선으로 결정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병진론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병진노선’을 계속 강조해 오고 있다. 핵·경제 병진론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 3월 3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 3월 전원회의로, 여기서는 ‘전원회의는 조성된 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적 요구에 맞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하였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제시하시고 철저히 구현하여 오신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의 심화발전이다’ 등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 1월 26일 ‘국가안전 및 대외일군협의회 지도’ 자리에서도 “자위적 전쟁억제력에 토대하여 이제는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경제건설에 집중하려던 우리의 노력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었다”고 말했고,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2월 12일 담화를 통해 “자위적인 핵억제력에 의거하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하려던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하 이사장은 병진론을 꺼내든 이상 북한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핵을 앞세운 이른바 병진론 1로는 북한의 딜레마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4원칙과 중국의 3원칙에는 다 비핵화가 들어있기 때문에 병진론에 핵이 들어가 있는 한 경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북한이 식물국가가 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지금의 미얀마가 하듯, 과거의 중국과 베트남이 했듯이 한 번의 개혁개방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핵을 뺀 병진론 2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핵을 뺀 비핵안보와 경제건설을 동등하게 내세우는 균형 있는 병진론 2로 가면 국제적으로 설득할 찬스가 생기고 그 설득 과정에서 한국에도 주요한 역할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하 이사장은 “북한이 병진론 2로 나가는 것은 굉장한 변화와 결단이기 때문에 전망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첫 번째 매듭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병진론을 들고나오기까지 내부적인 심야 전략회의 같은 게 있었을 텐데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진론 1로도 딜레마가 풀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룹이 있었을 테지만 그걸 말하는 순간 자신들이 설 땅이 없어질 테고, 병진론까지 양보한 강경 그룹 역시 자신들이 최대한 양보를 한 것이기 때문에 병진론 1로 문제가 풀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부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단 병진론 1까지 가보자는 합의가 이뤄졌을 겁니다. 하지만 딜레마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결국 북한은 내부적으로 병진론 1을 붙들고 식물국가로 남는 퇴보를 할 것인지, 아니면 병진론 2로 진화의 길을 걸을 것인지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 이사장은 현재 김정은 체제가 처한 딜레마가 조선 말 고종의 딜레마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1863년 12세의 나이로 등극한 고종이 10년간의 아버지 섭정을 끝내고 친정체제에 들어간 것이 1873년입니다. 아버지가 물러났지만 체제의 운명이 걸린 개화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의 선군정치 분위기처럼 대원군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팎을 설득해 나간 게 박규수입니다. 안으로 고종의 귀를 붙들고 있는 그가 매일 대원군을 찾아가 일본과의 수교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 대원군에게는 ‘일본과는 구교(舊交)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과의 근대 조약과 달리 구교를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설득했고, 고종에게는 ‘수교하지 않으면 일본이 결국 군사력으로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조약을 맺어 우리도 빨리 부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설득했습니다. 일종의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이고, 안팎으로 두 개의 싸움을 한 셈입니다. 그때 개화하는 것이나 지금 북한이 문을 여는 것이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병진론 2로 나가기 위해서는 북의 바깥이 얼마나 우호적이냐, 특히 핵심 파트너인 중국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고 내부적으로 병진론 2 세력이 얼마나 장악 가능한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바깥이 어떻게 최대한의 지원을 하느냐는 문제도 있지만 결국 안의 몫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성택이 됐든 누가 됐든 병진론 2 세력의 자생적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총체적 상황 인식 속에서 북한의 병진론 2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하 이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섣부르게 체제 붕괴론을 언급하면 북한이 단기적으로 더 반발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주장하는 핵무장론과 전술핵 도입 등의 주장도 혼란만 부추기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에 맞서겠다고 우리가 핵 개발을 시작하면 핵 비확산 체제에서 벗어난 국가로 분류돼 남북 대결이 아니라 굉장히 힘든 글로벌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그걸 담당할 역량이 없고 엄청난 비용도 지불해야 합니다. 전술핵의 경우도 작년 12월 19일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지상 전술핵무기를 이미 대부분 폐기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전술핵무기 운용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전술핵을 들여온다는 논의 자체가 공허하고 비현실적입니다.”

하 이사장은 미국·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의 병진론 2를 이끌어내기 위한 국제적 공진을 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신뢰 프로세스에 조금 더 총체적인 그림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대북 억지력 속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한다고 선언했지만 대북 억지와 신뢰 프로세스가 어떻게 연계돼 진행되어야 하는지 약간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명확하게 모양새를 갖춰야 합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한국의 포지션이 선명하게 결정되어지고 어떻게 미국과 중국에 협력을 요청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이 서야 합니다. 미국의 4원칙, 중국의 3원칙, 북한의 2원칙에 대한 우리의 기본원칙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 프로세스를 따로 떼어 얘기할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그림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관련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언 형태로 다음과 같은 우리의 기본원칙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북한이 핵을 가져도 소용없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북한의 무력에 맞서는 1차적 억지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최근 국방부에서 얘기가 나오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형 MD를 구축해야 하고, 재래식 무기 체계에 의한 억지력 확보에도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전술 전략 핵 억지력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미국이 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도록 치밀한 공조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북을 병진론 2로 이끈다는 것이 확실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북핵을 막아야 한다’는 막연한 목표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에 대한 경제적 대응도 필요합니다. 북은 수령경제, 군사경제, 인민경제로 나눠져 있는데, 인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도적 지원은 유지하되 수령경제를 목표로 하는 금융제재와 핵 미사일 관련 물자의 컨트롤 등은 우리도 확실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병진론 1을 들고나온 북의 정치권력이 굉장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북이 결국 병진론 2로 가야만 북 스스로와 한국과 동아시아가 산다는 차원에서 병진론 2와 국제 공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그런 공식에 맞는 우리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병진론 2와 전 세계적인 코에볼루션(co-evolution·공진)이 같이 가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같은 3원칙을 갖고 미국의 4원칙, 중국의 3원칙과 같이 짜여지는 334 전략으로 북을 병진론 2로 이끌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오바마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 이사장은 “이미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우리의 역할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분명히 그 역할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의 한반도팀 관계자들의 말을 들으면 자기들이 아는 건 북한의 레토릭과 나쁜 행동(bad behavior)밖에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전자 정보, 문자 정보는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퍼포먼스와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은 우리보다 뒤집니다. 예컨대 병진론에 이르는 심야 전략회의 같은 시나리오의 함의에 대한 겁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북한의 레토릭과 행동만을 바라보지 말고 미·중이 읽지 못하는 뒤에 숨은 실제 시나리오를 간파해 미·중을 끌고 북을 도와주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병진론 2가 해답인데 그리로 가기 위한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 구상을 갖고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얘기를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 이사장은 현재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한·미·중 전략대화에 대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모든 논의의 초점이 병진론 2로 가는 길이라면 그것을 위해 다양한 형식의 네트워크 회의가 필요하다”면서도 “단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떤 내용을 갖고 한국이 미·중을 집합시키는지 경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형식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모임을 엮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 이사장은 “동아시아는 미국의 케리 장관이 얘기한 ‘퍼시픽 드림(Pacific Dream)’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들고나온 ‘중국몽(中國夢)’이 충돌하는 곳으로 미국이 사용하는 말인 아키텍처, 즉 신질서의 건축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관계는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로드맵이 짜여 있습니다. 싸울 것은 싸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구체적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군사적으로 미·중은 2049년까지는 충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경제는 싫어도 협력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같은 부분에서는 상당한 경쟁적 요소가 등장한다는 데 대해 의견이 모아진 상태입니다. 이런 미·중 관계 속에서 우리는 G2의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을 꿔야 합니다. 이제 세계는 강대국이 질서를 단독 디자인하는 시대는 지났고 주니어 디자이너와 공동 파트너십이 있어야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신질서는 미·중을 넘어서서 복합 네트워크로 짜야 합니다.”

하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첫 무대가 되어야 한다”며 “거대한 꿈을 꾸는 G2의 틈바구니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떨어지는 우리로서는 더욱 더 충실히 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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