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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예, 심재훈 외 저, <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 민족사와 고대 중국 연구 자료 성찰>
 

2013-05-25 

2013년 5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3년 5월 25일(토)

장소: 삼성경제연구소 회의실

참석하영선전재성김상배손열윤비이헌미송지예권민주용채영

발표송지예심재훈 외 저『화이부동의 동아시아학민족사와 고대 중국 연구 자료 성찰』푸른역사, 2012

 



주요토론내용


토론

 

이헌미: 최근 한외사 연구회에서 李峰(Li Feng)책을 읽었고, 최근 조선정사를 읽으면서 중국 고대사로부터 한국의 고대사 혹은 한국의 고중세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고민 중. 중국의 문헌학 말고 다른 사료들을 발굴하려는 노력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음. 발제자의 지적처럼 두에라의 글도 기존의 논의들을 정리한 측면이 큼. 민족주의 사학 대 탈민족주의 혹은 성찰주의 민족주의 사학이라는 것도 이미 낡았다는 느낌. 최근 동북아 공정 이후의 느낌은 해석의 정치학을 남겨둔 채로 새로운 해석의 발굴, 고고학적인 출토작업으로 넘어가고 있음. 하영선 선생님은 새롭게 출토되는 다양한 자료들, 금석학, 청동기 금문을 한국학자들이 도외시하고 무시한다고 염려를 표시하는데 정치학을 하는 입장에서는 쇼네시와 같이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금문의 글자해석에 뛰어들어서 다투기는 어려울 것 같음. 재미있었던 것은 이성시의 글과 리펑의 글. 문자해독에 관한 리펑의 글. 기존에 제기중심으로, 종교적 기능만 했던 청동기의 기능이 소수의 국가행정에 관련된 관료들만이 문자, 청동기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서주 국가가 초기적 형태의 귀족들과 연계되어서 상당히 일상에 영향을 끼칠만큼 고대국가가 발전했고, 그만큼 고대문자가 발달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자기 연구자들도 도자기에 새겨진 글씨들로 연대추정을 하는데, 우리도 고대동아시아 국제관계를 하려면 역사학자, 예술사학자에게 배우고 그에 기반하여 국가-사회관계, 국가의 형태를 추정하는 작업을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

 

이성시의 광개토대왕비 해석의 경우 삼국시대관련 중국정사 조선전을 읽고 있음, 고구려, 왜, 신라가 낯설지 않음. 고대사의 정치체를 오늘날의 근대 nation-state와 연속성상으로 생각해서 점유하려는 것이 학문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가? 검증될 수 없다는 답. 하지만 역사는 낯선 대상이고 점유해야 할 대상이지. 이성시 선생이 지적하는 제국주의 시기가 전통의 발명의 시기이고, 근대 국민국가 사에서는. 고대 고구려 사 등이 신채호 등에 의해 부각된 것은 사실인데, 이성시 선생도 동아시아, 광개토비의 해석이 일본발이라고 검증하고 있음. 이 부분을 딱히 논박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일본발이라는 것도 일본 연구자라서 부각된 것이 아닌가. 심재훈 선생처럼 민족주의 서술이 인류보편적 가치로 되는 역사서술은 어렵지 않은가?

 

윤비: 사상이나 모든 주의들은 그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계보 위에 구축됨. 그렇게 구축한 과거사가 내가 보려는 것, 알려는 것과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물어보는 작업은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로서 시도를 해보지만 값지면서도 오래고 힘든 작업임. 전반적으로 동아시아학은 인문학처럼 자신들이 쓰는 패러다임에 대해서 naive하다는 느낌이다. 중화제국처럼 과거 고대 제국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음. 제국이 같은 것인가? Empire가 동일한 실체들인가? 근대 존재한 일본 제국이 과거의 고대 제국과 같은가? 왜 현대의 제국주의의 반대 쌍이 민족주의인데 고대에서는 왜 민족주의가 안나왔는가? 고대 제국의 반대쌍은 민족주의가 아니었음. Homogeneous한 제국이 아니라 상이한 제국들이 있었음. 둘째, 보편인류적인 역사구성이 뭘까? 16세기 에라스무스의 질문은 교회사와 로마사 이후에 민족사라는 것이 무엇인가였음. 에라스무스는 민족이 규범적 집단으로서 독자적 역사를 쓴다는 것이 16세기의 머리에 없었음. 민족이 튼튼한 정치적 실체로 보여지기 시작하면서 민족사를 쓰기 시작한 것. 민족과 구별되는 다른 실체에 대한 관념이 생각되는 것. 우리가 인류보편사를 쓰는 것이 애매한 것은 그것이 명확한 실체로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임. 2차 대전 이후엔 민족사를 넘어서기 위해 유럽인들은 유럽사를 씀. 과연 세계체제가 존재하는가, 존재하면 인류 공동사도 쓰여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헌미: 선진시대의 문헌학을 통해 고대사 재구성의 문제는 고대 통일시대의 정사들이 일정한 편견을 갖고 편찬된 것임을 증명. 후대 편찬, 위조된 문헌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보여줄 비문헌적인 사료들의 발굴에 많은 관심이 있는데, 지난 사행의 국제정치. 왜 그 사람들은 고증학에 꽂혔을까? 일종의 방법론, 금문, 방법론의 변화에 대한 그 이전의 역사적인 방법론 사를 다뤄본 적이 있는지 궁금함.

 

하영선: 조선에서 상대적으로 고증학적 전통이 약한 이유는 청대의 고증학이 주자학을 상대화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에 비해서 주자학적 전통을 강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고증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이면 주자의 나라로서 주자학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음. 예외적으로 다산은 주자주에 만족하지 않고 고주들까지 동원하여 다산주들을 붙임. 그렇게 되면 사서오경의 텍스트가 금문이냐 고문이냐 위서냐를 다 따지게 되면 선진시대의 많은 저술이 그 시대의 현재적 시각(presentism)에 의해서 재구성 된 것인데 그것을 경으로 삼는 것이 무리일 수 있음. 우리 전통을 더 공부해볼 필요 있음. 다산은 더 추상적으로 갔고, 북학파는 당시 고증학을 수용하고 왜 나머지 대부분의 조선지식인들은 수용하지 않았나? 왜 성균관이 안 했는지? 동양의 전통에서 고증학의 실질적 성과는 분서갱유 이후 텍스트가 없어졌으므로. 암기한 것으로 다시 복원했으나 한계가 있었음. 실제 은나라의 갑골문은 당시의 문자였고, 금석문은 서주의 문자였고, 전국시대에 죽간들이 쏟아졌음. 시대변화에 따라 다른 텍스트들이 등장하는 문제를 꼼꼼히 연구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금석학에 무식했던 것이 아니고, 금석학 방법론을 채택하는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했을 것임.

 

김상배: 동아시아역사관점에서 이렇게 할 수 있지만 한국역사에서 쓰여진 것이 없어서 아니었나? 상해갔을 때, 서주시대의 글들이 전시되어 있음. 그 지역의 봉건영주, 군주들이 임명장을 준 것을 다 글씨를 써둠. 그런 자료들이 있다면 연구했을 것

 

하영선: 동아시아는 고대로 갈수록 문화격차가 컸다. 은나라의 갑골문은 상당한 수준의 추상화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주변의 이적국가들의 글자는 없었음. 이러한 문화적 격차는 전파와 변용을 겪으면서 줄어 들었음.

 

김성배: 미디어의 공간전파가 쉽지 않았다. 청동기는 하드웨어이기 때문에 죽간, 종이 같은 것이 아니므로 정보의 distribution이 쉽지 않음.

 

하영선: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째는 시각의 문제이고 둘 째는 자료의 문제다. 이 책의 편자도.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동양 고대사 박사 연구 훈련을 받은 사람이므로 결국 이헌미 박사의 이야기대로 우리는 왜 동아시아연구를 해야 하며, 어떤 주제를 어떤 시각과 방법으로 다룰 것인가를 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 이러한 미래지향의 시점에서 중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걸림. 처음 생각은 화이로 설정을 함. 화가 곧 중앙이고, 화와 이의 관계를 적대로 놓는가 협력으로 놓는가, 아니면 화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으로 두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단순히 고대사의 논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미래사의 논쟁이므로 중국의 고대사프로젝트나 일본의 동아시아세계사 논쟁은 대단히 중요함. 중국은 사학계의 논의를 공정화해서 하은주단대공정이나 중국문명탐원공정과 같은 대규모을 진행했고 신청사연구가 마무리 단계임. 중국 25사의 정리도 통일다민족국가의 시각에서 함. 신선생은 다민족 복합체라 쓰고 있으나. 그것보다는 통일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임. 통일다민족국가의 시각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조명하면서 대국과 주변 의소국 관계를 중화와 화이의 시각에서. 주변도 중화의 일부라고 설정하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임. 두 번째는 일본 고대사 논쟁인데, 일본의 중국역사연구는 20세기초 이래 도쿄대와 과 교토대의 양대 흐름이 지적 전통을 이어 왔는데 도쿄대의 경우 시라토리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호리까지 3대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 세계사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정리함. 동아시아 세계 속의 일본을 봄으로써 일본이 또 다시 역사적 어리석음를 범하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 동아시아 세계사 논쟁에서 호리는 원래 니시지마가 동아시아 세계의 표현을 쓸 때주로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을 포함 했던 것에서 동서남북을 모두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뭘 하는가? 중국의 다민족 복합국가에서 동아시아사, 일본은 동아시아 세계사를 다룬다면 한국은 한국형 동아시아사를 초보적 모양새로 다루려는 시도가 있음. 그것을 그냥 놔두면 되는가? 아니면 전파나 한외사 연구 포럼에서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본격적 참여를 해야 할 때 생각함..

창비 중심의 동아시아사는 1980년대의 시각에서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에서 벗어나려는 느낌이 깔려 있다. 그러나 기존의 냉전과 탈냉전의 소박한 이분법적 시각과 언어를 하루 빨리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한국외교사 공부모임에서 중국25사 조선전을 읽는 것도 복합사적 시가에서 새롭게 읽으려는 시도다. 여태껏 단순하게 동아시아사를 읽었던 것에 반해서 중국이라는 제국의 성격 문제를 복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안에서 주변국가들과 얽힌 모습이 북방, 서방, 남방, 그리고 동방에서 어떻게 다르게 형성되었는가를 복합사적 시각에서 정리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중국이 200년의 미래를 내다보고 다민족통일국가, 다민족 복합국가로 가는 것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중국의 화와 이로 나누는 관계설정에 대해서 한국은 단순한 방어적 민족주의와 보편세계사를 넘어 선 복합동아시아사를 새롭게 써야 한다. 일본 정계는 동대학파의 동아시아세계의 시각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다. 동아시아 사학계의 논쟁을 보면 중국사나 한국사학계가 일본이나 중국을 주도할만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의 정치학계, 국제정치학계가 많은 노력을 투입할 필요있음. 동아시아 사학 연구에서는 고고학, 문자학등을 통해 계속 새로운 자료가 공급되고 있음. 이 책도 1부는 추상적이나 새로운 자료를 다루는 2부가 훨씬 재미있음. 더 이상 25사나 13경만으로 동아시아 세계사를 재구성하는데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대부분 한나라 시대의 금문으로 쓰여진 사서나 경전으로 선진시대를 재구성한다면 현재적 시각(Presentism)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경우에는 천하질서의 재구성을 무슨 텍스트를 가지고 해야하는가? 현대 중국적인 시각인 다민족 국가통일론, 현대 일본의 동아시아 세계론이 아니라 더 복합적 시각에서 봐야 함. 李 峰은 이러한 한계를 금석문의 도움으로 극복해 보려는 노력을 함. 박사학위 논문인 에서 서주질서를. L지리적 싸움에서 국내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지를 그 동안의 역사서와 경전을 보완해서 금석문의 도움으로 안과 밖에서 권력이 결합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사를 시각적 비판만으로는 안되고 자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사학계의 발굴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고 새로운 사료들을, 재해석하는 국제정치적 문제가 선진시대에 어떻게 재구성되었는가의 우리 나름의 시각에서의 정리가 필요하다. 고대사연구는 결국은 미래사연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대단히 어렵다. 우리에게는 중화와 화이의 역사적 그리고 미래적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김상배: 그 관계의 제3의 것이 있다면, 복합정체성이 얼마나 형성되었는지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하영선: 주나라 천자가 천명을 받아 제후들에게 봉토건국하는데 당시까지는 이(夷)와의 갈등은 제한적임. 서주가 약해지고 주변 이적국가가 강해지자 중화와 화이사상을 틀로 이적국가를 문화적으로 폄하하게 됨. 주나라가 약화돼고 세력균형이 작동하게 되니까 춘추 5패가 등장하고 전국시대 7웅이 난무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적대보다는 누구나 패권국이 될 수 있는 것 같은 체계가 발생한다. 스스로가 이였던 청대에는.이는 영원히 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가 문화적으로 화로 바뀌면 중화가 될 수 있다고 함. 조선의 소중화시기에 북학파들은 청을 무시하지 말라고 한 것인데, 21세기적으로 보면 대단히 미묘함. 만약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의 북학파는 한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

 

김상배: 중화의 시각이 아니라 동의의 시각에서 볼 때의 복원해내는 것이 중요할 것. 현대적 관심에서 시작하는데 구닥다리가 된 것 같은 세계화시대에 왜 민족주의에 우리는 엮여있는지. 거기에 정보화와 사이버스페이스가 만들어지는데 민족주의가 심화. 왜 그러한가? 융합, 정보화가 만드는 세계화가 있지만 한중일의 역사사회학적인 것에서 설명이 되어야 함. 일제시대 일본이 쓴 역사적 행위에 대한 저항이 이야기되어야, 근대 서구 민족주의, 제국주의의 유입에 따른 것도 있지만 첫 장에서 이야기한 것은 근대 서구의 들어오기 이전의 민족에서도 이야기

 

하영선: 원민족 이야기임. 동아시아에서는 근대서구질서의 동원체제로 작동한 민족주의는 없었다. ‘민족주의’는 없었지만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얼마나 형성되어 있었는가를 따져 볼 필요있다.

 

윤비: 유럽도 그러함. 흔히 베네딕트 앤더슨으로 부터 부분적으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음. 선민의식, 우리민족이 하나의 공동체였다는 생각 다 있음. 이 민족공동체가 주권적 정치단위로 존재했었다라는 것만 없음. 베버적인 시각은 15세기 민족주의 특징은 근대이전에도 다 있다. 8세기, 10세기에도 다 있음... 현대 제국주의 모습으로 과거 중화질서를 보고 있음. 우리가 사료들을 읽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다양한 정치체제들을 설명할 수 있는 섬세한 개념체계들을 갖고 있는가? 하나는 hierarchy, 수평적 society. 월츠가 이야기한 두 가지. 두 가지만 갖고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vector값과 같은 것을 인식하기 못함. Quato-sociey. Quato는 그 자체로 수직모델인데 수평인 사회와 연결. 다양한 조직적인 것들이 있었고, 우리는 이를 복원시킬 개념적 도구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사료를 보지만 일정한 틀을 갖고 보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같이 봐야. 제국, 서양의 사회학자들. 전근대에 위계-사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해라

 

하영선: 설명 어려움. 중국의 역사서에서는 우리를 속국지에 포함시키고 있음. 속국의 현대적 개념은 식민지이나. 당시의 속국 개념은 그냥 속한다는 의미임. 발표 직전에 있는 신청사의 구분법도 조선을 속국에 포함시키고 있음. 당시의 속국이 현대적 의미의 속국이 아니므로 속국을 다르게 번역하자는 주장 있음. 리펑은 중국의 고대국가를 어떻게 개념 설정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일본, 중국, 미국학계가 서주시절, 고대 중국국가를 도시국가, 영토국가, 봉건 국가, 분절국가(segmentary state)라는 틀로서 논쟁하고 있는 속에. 리펑은 权力代理的亲族邑制国家(delegatoty kin-ordered settlement state)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어 놓고, 밖과 안의 권력 변화가 겹쳐서 국가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고대국가건설 논쟁을 보다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윤비: 독립적으로 자치적으로 움직이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한편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바치는 문서들의 내용을 읽으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독일, 현대학자들도 그 관계를 못 옮김. 그 관계는 굉장히 ‘복잡한’ 관계다. 하나가 주권국가로 커지면 중심이 되고 다른 1중심, 2중심이 생기는 것이 아님. 그 관계를 설명하려 로마법을 연구한 학자들이 10년씩 주석서를 씀. 읽고 있는데, 읽다 보면 그 생각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질서관이 있는 것임. 이태리와 같은 경우엔 황제, 도시국가의 권위싸움이 있으면 돈을 주고 법학자를 사옴. 법학자를 데리고 와서 로마법을 만들라고 함. 황제는 다시 사서 내 논리로 쓰라고 함.

 

 

김상배: 방금 말씀 사인 것은 국가 간의 복합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대중 민족주의는 민제간의 민족주의 임. 최근의 지구화, 정보화시대엔 그것이 발견되는 것이 보임. 민족의식, 나와 남의 구별의식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면 동원되어서 발화되지 않았던 매커니즘이 중요했었을 듯. 동이의 시점에서 민족을 어떻게 보는 것, ~주의를 붙이지 않으면 뭐가 힌트가 될지. 최근의 사이버-민족주의는 사이버민족주의의 공간적 특징으로 더 격화되는 것이 있음. 조선은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하면 사이버공간에서는 더 심화. 그런 논의들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논리체계가 대중들에게 없으므로 더 사이버 war. 우리민족주의자들의 입장은 오히려 우리가 제국이었다. 우리는 한번도 주권을 침탈당한 적이 없다. 민족논쟁은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개념은 서양인들이 만든 200년만 쓴 용어 가지고 하는 싸움이다.

 

하영선: 지구화와 더불어 국제와 함께 민제의 부딪침이 더하다면, 만약 200년전으로 돌아가서 천하질서를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문화적으로 더 계몽된 것도 있음. 현대보다 더 복합적인 질서를 만날 수도 있음. 천하질서의 복합정체성. 사대자소의 예치질서. 사례 등은 대단히 중요함. .

 

윤비: 전근대와 비교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음. 동양과는 비교 못하고 서양인들도 요새 우리가 봉건이라고 제대로 이해했던 것인지, 다시 돌아가보자고 함. 그들은 오히려 동양에 존재했던 것은 무엇인가? 동양은 뭘 알고 싶어했는지 생각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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