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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희,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의 주희의 "學"과 사대부 사회의 형성 (07.9.29)
 

2008-10-14 
2007년 9월 29일(토) 전파모임

오후 1시 경기도 수지
참석: 하영선, 최정운, 전재성, 김상배, 구대열, 양승태, 김봉진, 손열, 마상윤, 이상하(조선대), 최진덕, 민병희, 홍지연
발표: 민병희, The Republic of the Mind: Zhu Xi's "Learning (Xue)" as a Sociopolitical Agenda and the Construction of Literati society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의 朱熹 (1130-1200) 의 "學"과 士大夫 사회의 형성)

I. 민병희 박사 발표

주희의 사회정치적 어젠다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을 요약해서 발표함.
송대사와 사상사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연구함.
송대 사대부들의 사회정치적 배경에 대한 관심과 사상,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을 연결시키는데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기 시작.

주자학의 사회정치사상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 논문의 중요한 부분.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의 기반인 “성리학적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음.
연구자들이 각자 규정한 성리학적 세계관을 기초로 연구하므로, 이들 간의 기준과 공통점을 밝힐 필요가 있음. 또한 이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음.

주희 사상의 내용을 우선적으로 밝힐 필요. 남송대의 주희 자신이 만들어낸 주자학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논문의 목표.
심에 대한 고도의 형이상학적 연구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주류. 따라서 주희의 정치사상에 대한 내용은 단발적, 고립적으로만 존재. 따라서 내향적, 개인적 차원에서의 도덕문제로 사회사상을 환원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게 됨.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전혀 옳지 않음. 주희 자신이 사회적 차원을 배제한, 개인도덕환원주의를 공허하다고 비판하고 있음. 자신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 주희의 접근법에 기초한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봄.
원대 1313년 사서집주가 편찬되는 시점에 주자학이 국가 교학화되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 시발점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지만, 옳지 않음. 지방에서 통용되고 있던 주자학은 사실상 국가 차원의 내용과 상충됨. 국가와 거리를 둔 지방차원의 내용과, 국가의 개입이 오히려 주자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상황이 전개되었음.
형이상학 부분의 개념 계보 중시경향, 경학 부분의 중시 경향 등이 고립적으로 연구되어 상호간에 연결되지 못함. 사학, 사회학에서는 사회제도부분에 집중하여, 오히려 다른 부분과 연결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함. 그러나 상호분리된다고 볼 수 없음. 따라서 사회사 제도 연구와 형이상학 연구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음.
주자학이 형성된 시기를 맥락에 맞추어 파악해야 함. 이기론, 심학 등의 추상적 수준에서 접근해서는 안됨. 따라서 주자학 형성 시기의 담론 형성 배경을 알아야 주자학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음. 이러한 점은 조선의 주자학 수용과정과도 밀접한 연결을 가지게 됨. 형이상학담론과 사회적 배경 간의 유기적 연관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조선과 송, 모두에 공통된 문제. 따라서 남송기 주자 사상과 사회정치적 배경을 연결하여 파악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봄.

왕안석의 국가 주도적, 제도적 개혁이 좌절된 배경이 가장 중요. 구법당 vs. 신법당의 대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송변혁기의 사회재구성 문제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함. 왕안석의 극단적 대안이 실패하면서, 새롭게 대안을 모색하면서, 주희의 관점이 등장하게 된 것으로 파악해야 함. 결국 주희가 다루는 것은 정치권력의 소재, 국가-사회관계, 중앙집권적 체제의 문제점, 중국이라는 큰 국가에서의 정치 효율성 문제, 무질서를 극복하고 질서를 찾아야 하는 문제의식 등이 주희 사상의 골간이라고 보아야 함.
송대 엘리트 계층의 증가, 정치적 에너지의 축적, 국가기구 팽창의 한계점 등의 문제가 부각됨. 과거를 통과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문제점.
당송변혁기 엘리트의 삶의 방식과 전략이 이전과는 달리 변화된다는 점. 지역에 매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게 됨.

주희의 총체적 사회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학”에 있다는 점을 발견. 배움, 교화, 교육, 학문이 아닌 사회적 메카니즘에 대한 생각이 부각되어야 함. 이를 규명하는 방식으로 논문을 구성. “학”을 통하여 사대부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정치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한 것이 주제.

1. “학” “성리학”은 인간본성에 바탕한 도덕적 자율성, 사회의 자기조직, 자기조절을 만드는 총체적 과정이 학. 하나의 통합적 과정으로 개인의 심의 수양과정, 사회정치적 과정을 동일하게 진행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탐구. 인간의 본성, 우주만물의 리를 공유하고, 하나의 리를 통해 개인, 사회 양방에 동일한 패턴을 구현하는 것을 중시.

2. 성리학과 같은 심에 대한 고도의 형이상학적 이념체계가 사회정치적 구상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었는가? 성리학에서는 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 리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의 핵심은 심. 모든 것은 심의 문제. 모든 성리학의 문제는 심학의 문제. 따라서 심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음.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실체로서의 심을 주희가 중시함. 심의 문제가 권력, 정치참여의 범위, 방법, 사회조직 등에 관한 논의가 심에서 비롯됨. 육상산, 선불교와의 차별화 과정에서 주희의 논의가 복잡해지는데, 핵심은 심에 관한 주희의 생각임.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이 완벽하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사회체계가 어떻게 주관적, 자의적인 심의 작용에 의해 사회질서가 약화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가 주희의 주요 질문임. 이 문제에 대한 답이 “학” 임. 형이상학이 어떻게 사회정치적 구상으로 연결되는가에 관해, 리가 규범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뭄. 사람은 어떠한 학을 필요로 하는가가 형이상학적 주제. 이를 통해 인간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주희의 견해. 따라서 형이상학은 전체적으로 사회론과 연결되는 것이지, 각론적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님. 리는 주희에 있어서, “리는 하나다”의 정의. 리는 규범이 아니고, 사회질서가 형성되는 방식과 질서에 관한 이미지와 메타포로 보아야 함. 리가 직접적으로 사회질서 구성과 연결되는 것은 아님. 리는 대체적으로 메타지식적 성격이 강함. 학에 대한 학으로 보아야.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님. 제도, 자연과학적 지식을 추구할 때 학의 과정을 통해 사대부가 정치적 소재를 찾게 됨.

소식 등과 같이 사대부 학에 대한 문화적 접근에 대해서도 주희는 반대. 주희는 지식이 cultural capital이 아니라고 강조. 이에 대한 계속적 반론을 제공하는 체계로 보아야 함. 지식은 체계적이고 문화와 같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 모든 권력기반은 메타지식적 기반을 포기하면 끝나기 때문에, 주자학의 최상위의 형이상학이 중요한 것.

형이상학의 내용 분석보다는, 왜 형이상학을 통해 정치질서를 논했는가가 더욱 핵심적인 문제임. meta-metaphysic의 관점. 형이상학을 유지할 때 어떠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밝혀야 함. 리, 기의 내용 자체를 밝히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

3. 경전의 문제. 유가에서 새로운 경전체계가 나오는 것은 획기적인 일. 북송, 당 중기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체계적인 골격을 가지게 된 것은 주희에 이르러 가능하게 된 것. 왜 주희때에 와서 5경에서 4서로 오게 되는가? 의외로 별 분석이 없음. 사회운동으로 왜 주자학이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할 필요.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에서 경전의 역할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 경전이라는 것은 베버, 헤겔 등의 분석처럼, 반복적 암기, 전제적 성격, 창의성 부족 등의 소산이 아님. 경전 중심의 담론 전개는 주석학임. 다양한 형태의 주석이 존재하는데, 주자집주와 같은 방식은 예외적인 방식임. 4서가 나오는 배경은 문화적 매개가 있어서는 안됨. 심이 자율성을 가지면서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주희의 독서, 격물치지, 특히 격물이 중요한 기반이 됨. 문제는 격물에 대한 정치한 이론이 없음. 다만 실천방식을 제시하는 것으로 설명함. 경전, 4서 5경에 대한 공부방식으로 심의 자의성을 억제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함. 텍스트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process로 전환함. 외부적인 것에 권위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연결됨. “차례대로 읽어라”를 주희가 강조. “쉬운것부터 읽어라”와는 다른 의미. process로서 텍스트를 읽는 방식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함. 5경은 process로 전환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므로, 이를 주희가 선별한 것이 4서라고 보아야 함. 사대부의 정체성과 네트워크와 관련하여 주자학의 자료자체의 특성이 중요. 주자학의 자료는 특이한 자료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 어록과 서간이 많음. 선어록의 영향을 받음. 네트워크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기록했다는 점이 중요. 경전학습을 통해 어떻게 사대부네트워크가 형성되는가가 중요한 문제. 도학연구집단은 밑으로부터의 네트워크, 경전을 통한 체계성을 갖추는 것이 특성. 이를 통해 공공성을 유지하는 학습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지게 됨. 공론의 소재지, 형성방식으로서의 “학”의 과정이 제시가 된다고 보아야 함. 학에 개입하는 주체가 공론의 주체가 되는 것. 사대부 연합체와 같은 성격이 등장하게 되는 것임. 주희가 제시한 사회프로그램들이 있음. 여기서 제도와 심의 갈등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함.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원, 사창 등 제도적 개혁의 핵심이 강조됨. 주희도 도덕적 이상주의에 치중한 것이 아니고, 제도에 대한 강조도 함. 그러나 심, 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학을 통해 양자를 조절하려고 함. 주희의 저작에서 학문과 공리지학, 공허지학의 대조가 강조되는데, 이를 통해 주희의 생각을 알 수 있음. 공리지학을 도덕적 명분주의로 보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른 전제에 입각해 수립된, 다른 방식의 사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함. 주희는 유용성을 강조하는데, 도덕적 명분과의 타협을 시도함.

4. 선불교, 도교에 대한 비판. 선불교에 대한 위협감을 주희가 가지고 있음. 불교의 사회조직적 부분이 주희의 지향점과 가장 유사점이 큼. 주희는 종교적 조직력을 결여. 불교는 교파 분리적. 송대 민중불교 등에 대한 주희의 비판적 관점이 중요함. 송대에는 불교가 상당히 융성한 시대로서, 주희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함.

5. 송대 사대부에게 주희가 왜 받아들여졌는가? 부국강병이라는 말을 왕안석 스스로가 쓴 적은 없음. 주희가 부국강병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 전통적으로 주희가 더 많이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함. 주희의 방식은 관직을 갖지 않는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지방적으로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제시. 천하지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음. 왕안석의 실패사례는 현실적 사회정치적 제약과 연결됨. 주희는 지역의 자율적 조직을 강조함. 이를 제국적 질서 속에서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가 주희의 문제제기이며, 주희가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함. 부국강병은 대외적 이상주의, 명분이 아니고, 책임을 지고 사회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노력과 연결하여 보아야 함. 자기조절적 공동체로서 사대부 공동체를 상정한 것임. 인간의 본성을 자기조직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 흥미로움. 사대부 전국조직망이 하나의 모델. 조선도 이를 받아들인 것. 조선말까지 사대부 연합체가 유지되는 특성이 있음. 군주, 사대부, 민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주희는 제왕학적 접근을 반대함. 학자의 개인적 내면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군주의 특이성보다 사대부들 중 하나로서 규정함. 따라서 주희의 학은 전제군주권과 친화력이 없다고 보아야 함. 민이라는 것은 “학”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계층을 일컬음. 소이연을 아는 대학을 가진 층이 엘리트과 나머지는 민으로서 정치참여의 권리가 없다고 주희는 간주. 학자, 학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층들만이 정치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일정정도의 사회정치적 제한이 있지만, 미리 상정한 계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님. 세습적 지위도 전제한 것은 아님. 돈오적 점수적 성격에서 돈오적 성격을 거부함. 왕양명과의 차이는, 주희의 경우, 성인이 될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 성인이 되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주희의 성격. 성인은 황제가 되어야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음.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황제 역시 성인이 되는 과정. 왕양명의 경우, 스스로 성인이 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럴 경우 사회체계가 anarchy로 변화되는 역설이 있음. 주희의 경우, 정부의 역할은 기술적 지원을 하는 정도로 규정하고, 직접 개입은 경계함. 국가가 governance에 가깝다는 주희의 견해를 강조함.
심과 만물의 합일의 경지가 리를 실현한 경지.

주희가 제안한 unity의 성격을 동아시아의 통합성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때, 주자학이 일관된 체계를 제안한 것은 아님. 일종의 toolbox를 제공. 논의의 틀을 제공한 것이지,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제시한 것은 약하다고 보아야 함.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는 틀을 제공한 것에 불과. 유교가 제시하는 통합성을 좀더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함.

유교라는 용어자체가 모호. 개념적 유용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동중서와 주희를 묶는 것이 유용한가? 오히려 모호성을 증가시키는 것.

정치적 문제와 형이상학적 문제를 연결하는 사례로 왕안석 인용문. 주희의 경우, 도는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심에서 비롯되는 것. 여기서 정치권력의 소재에 대한 논쟁이 출발. 정치참여권리를 가진 계층에 대한 직접적 규정이 주희에게서 나타남.

abstract

동아시아 사회에서 朱熹의 사회정치적 구상의 영향력은 심대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정확히 朱子의 사회정치적 구상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의 사회정치적 구상이 그토록 宋代 士大夫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동아시아사회에서 영향력이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매우 빈약하다.
    본 논문은 위의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논문은 주자의 사회정치적 구상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서, 기존의 주자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학설과 의견들을 재검토함은 물론, 儒敎와 중국사회의 통합성의 관계에 대하여 기존과는 매우 다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주희가 구축하려한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분석함으로서, 모호하게 이야기 되어오던 朱子學的 世界觀이라던가 朱子學의 영향이라는 것을 각기 다른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려 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그 자체에 통합성에 대한 수사적 연속성을 가정한 "유교"라는 카테고리를 중심에 놓고 논의를 진행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유교"라는 카테고리로 자신을 정의하는 다양한 사상과 시스템들이 동아시아의 사회에 제공하였던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다.  
    논문 전체를 통하여, 본인은 주자가 궁극적으로 창조하려고 하였던 것은, 인간의 本性에 바탕한 도덕적 자율성에 기초하여 사회가 자기조직화 할 수 있고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주자는 자신의 "學"을, 단 하나의 통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개인의 心의 수양과정과 사회적, 정치적 과정을 동일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學"을 통하여 인간사회는 개인의 心의 도덕적 수양과 사회정치적 질서의 구현을 동일한 과정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자는 인간의 본성과 우주 만물은 동일한 理를 공유하며, 결국 理는 하나이기에 學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올바른 패턴이 개인과 사회 양방에 모두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公을 지향한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에 기반하여 외부에서의 강제와 개입 없이 자기조직화될 때, 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것이 유일하게 옳은 사회질서라고 한 주자의 주장은 현실세계와 크게 배치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논문의 초점은 주자가 어떻게 이러한 현실과 자신의 주장과의 괴리를 극복하여, 자신의 사회정치적 구상에 기초한 질서를 南宋사회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구체적 어젠더로 제시하려 노력하였는가에 두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희생시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心의 작용에 의해 인간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도 방관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주자는 끝임 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해답을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논문은 크게 각각 3장으로 구성된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주희의 정치사회적 구상으로서의 學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과 시각, 그리고 그 이론적 근거를 다루고 있으며, 2부에서는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고안한 기제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질서를 구상하고 있었나를 설명하고자 했다.  
    王安石의 개혁 이후, 북방을 잃고 강남으로 수도를 옮긴 후의 남송 사대부사회라는 역사적 배경이 어떻게 주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이 될 것인가와 주희의 사상에 대한 기존의 시각과 이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이론적인 문제들을 설명하고 난 후 (제 1장), 그가 이러한 상황에서 제시한 해답으로서의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의 學의 이론적 배경을 살폈다. 본 논문은 주자의 형이상학적 개념과 담론을 왜 인간에게 學이 필요하고 가능한가, 어떠한 學이 올바른 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할 때, 가장 총체적이고 일관된 논리로 이해를 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주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른 가정에 기초한 사회정치적 질서나, 인간의 心의 주관성과 자의성을 극복하는 방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심의 자율성에 의거한 學과 자신의 學을 뚜렷이 구분하고, 자신의 學을 단지 개인적 수양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어젠더로 제시하였음을 보여주었다(제 2장) 주자는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비슷한 관심을 표명하던 북송대의 도덕 사상가들과 구별된다.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이론적 고리를 제공하는 格物의 이론적 근거를 살펴보고, 이에 바탕을 둔 公을 실현할 學의 구체적 방식으로서 讀書공부가 왜 필요하게 되며, 이것이 어떠한 이론적인 모순을 불러 일으켰는가를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어떻게 격물이나 독서, 경전의 문제가 단순히 학술이나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회정치적 문제와 연결되는지 그 논리를 살펴보았다(제 3장)  
     구체적인 學의 프로그램의 제시는 주자의 이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 주희는 새로운 經典的 권위인 四書章句集注를 만들어 냄으로서, 독서공부를 통한 格物을 통하여서만 公을 지향할 수 있다는데서 오는 자신의 이론 상의 모순을 해결하며, 실질적으로 사대부사회가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상호간 소통하며 공적영역을 만들어나가는 기제를 제공하고 있다(제 4장) 그리고 주희가 제시한 독서법과 커리큘럼을 통한 學은 사대부 사회의 정체성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이를 통해 사대부사회를 學의 과정을 통해 國是를 결정하는 公論을 창출해내는 정당성과 실질적인 권력을 창출하는 주체로 설정하였음을설명하였다(제 5장) 또한 帝王學으로서의 주자의 學을 다시 살펴봄으로서 주자가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君主를 어떻게 상정했는가를 살펴보고, 또한 被治者인 民을 어떻게 규정했는가를 살핌으로서, 君主, 士大夫, 民이 주자의 사회정치 질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규정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學의 과정과 결합할 書院, 社倉, 鄕約의 제도적  틀을 제시함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사대부들의 자발적인 리더십에 기초한 사회정치질서가 어떻게 구현되도록 구상했으며, 이를 지역을 넘어 전국적이고도 보편적인 질서를 지향하도록 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이로서, 學이라는 단일한 과정을 통해서 관직을 갖지 않고도 사대부가 사회와 정치에 황제와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정당성과 실질적 방안을 성공적으로 제시하였음을 설명하였다(제 6장)
     본 논문은 주자의 형이상학적 체계, 經學을 비롯한 學의 프로그램과 제도적 장치 등을 모두 그의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의 學을 구상하는 요소로 파악하고, 그가 이를 통해 어떠한 새로운 질서를 남송대의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추구했는가를 중심으로 볼 때, 가장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형이상학과 經學, 정치사회적 사상과 구상이라는 것을 개별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상호 연관성 하에서 일관되게 파악하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자의 사상과 행위를 일관된 논리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설명은 다음과 같은 주자의 학과 중국사상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질문들에 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왜 송대 사대부들은  형이상학에 그렇게 경도되었는가?" "왜 五經이라는 기존의 경전이 있었음에도 새로운 四書를 필요로 했으며, 왜 그것이 주자의 學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는가?" "주자는 제도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心에만 의존한다고 하며 불교와 같은 學도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자의 체계에서 제도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결론에서는 주희가 제시한 사회정치적 어젠더가 단순한 도덕적 이상주의였다는 기존의 이해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주희는 분명히 "富國强兵"을 추구하는 사회정치적 질서에 반대를 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모든 사회정치적 문제를 개인의 수양과 도덕으로 환원한 것이었을까? 본고는 주자의 사회적 대안이 이후의 부국강병을 이끄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도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정치적 질서를 파악하려던 근대적 시각에 의해 정확히 파악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주자가 제시한 자기조직적인 사회정치적 메커니즘으로서의 學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구성되는 사대부사회를 이해한다면, 송대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지방 엘리트들의 자기 조직적인 다양한 활동에서 나타나는 분산적인 힘과 그러한 가운데서도 일정한 통합적인 패턴을 보이는 중국 사회의 통합성의 성격에서 보이는 二重性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보며, 주자의 學이 동아시아 사회에 제공한 통합성의 성격에 대하여 논함으로서 본고를 마무리하였다. 주자의 대안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제도와 같은 구조와 인간의 개인적 도덕적 결단, 국가와 사회 등을 양분법적 시각으로 파악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넘어서 사회정치적 질서를 이해하여야 하는 현상들이 많이 목도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회정치적 질서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믿는다.  


II. 토론

이상하: 주자가 리의 절대성을 중시하면서도 기의 역할을 실제로는 매우 중시. 주자가 사람 비판할 때도 그대로 적용. 예를 들어, 소동파에 대한 주자의 강한 비판. 주자어류 보면 소동파 글을 읽으라고 함. 시경의 첫 구절을 보면, 시는 자연스럽게 성정에서 우러나와 써야 한다고 함. 다른 곳에서는 옛글을 많이 읽어 형식을 다 익혀야 시가 된다고 함. 이처럼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리 이상으로 기를 중시하기 때문. 정치에 있어서도 원리가 실제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함.

민병희: 주자에게 있어 리의 규범성은 약하다고 생각. 구조적 통합성은 있다고 봄.

이상하: 주자의 생각 자체에 원리를 논할 때/현실 논할 때 차이가 존재.

민병희: 괴리를 설정하고 극복하는 방식을 말하는 데, 완성/성인은 없음. 형이상학적인 것과 삼대의 역사를 끼워맞추며 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모순. 모순이 있을수밖에 없음. 그러나 이 모순이 오히려 완성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면서 주자학을 장기지속하게 만듦.

이상하: 조광조는 위에서부터 개혁하려 했음. 퇴계는 이를 미숙하다고 지적.

민병희: 학, 이라는 것 자체가 위에서부터의 개혁이라는 제도적 접근에 반대하는 메커니즘. 학, 이라는 것이 교육/교화보다 훨씬 넓은 범위

이상하: 실제로는 주리 속에 들어가서 주기/주리로 나뉨. 한국 주자학은 실제로는 모두 주리 속에서 논의 진행됨. 주자가 왕양명이나 선학을 심학이라고 보는 이유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 주자학에서는 성인은 될 수 없음. 끊임없는 과정일 뿐. 격물치지는 불교의 내관에 대한 대응.  

민병희: 심학/리학 차이는 분명 있으나, 제가 성리학을 심학이라고 한것은,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썼고, 주자학에서 ‘심’이 중요했다는 것.

이상하: 마지막 번역문에서 정희가 탑륜을 운운하는 것은 왕안석이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 주자도 이를 비판하였다고 이해.

민병희: 불학을 비판할 때도,그것이 선학이라서 문제가 있다기보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조직/정치적 의미를 논함. 주희는 관,에서 관할하지 말고 사대부 네트워크를 통하라고 이야기함. 그런데 불교는 사회조직적으로 무책임.

왕안석 비판에 있어서는 불교적인 부분 뿐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부분도 강함.

최진덕: 주자 텍스트를 읽어보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 학계가 잘못된 논의하고 있는 부분 많음. 잘 지적해 주셨음.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를 알기 어려움.
조선성리학자들이 중국사상사를 이해하는 방식. 공자를 알려면 주자를 알아야 하고, 주자를 알려면 송시열을 알아야 한다는 식.
주자 디스코스의 기본적 형식이, 두 개의 대립되는 것을 놓고, 그것을 다시 합하는 구조.
파편적이고 모순되어 보이는데, 다르게 보면 또 정합적. 주자학 전체가 이질적인 것들을 섞어놓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는 것은 불가능.

민병희: 제 논문의 요지는 주자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개념들을 왜 섞었는가? 이고, 대답은 주자의 목적이 ‘경세’였다는 것. 주자의 질문이 무엇이었는가? 라는 점.

최진덕: 발표 중 주자학적 세계관, 을 논할 수 없다는 것, 성리학이 심학이라는 지적 모두 매우 정확하고 중요. 2페이지 “주희의 형이상학이 기존의 경전에 나오는 덕목에 형이상학적 기반을 제공하려던 것 아니라”라는 지적 또한. 형이상학적 이기론이 등장함으로써 오히려 유교적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많음.
  
청대에 가면 이기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성리학이 심학, 선학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실제로 나옴.

제도와 마음의 갈등. 주자학자들의 정치사상 이해하는 데 핵심.

주자가 부국강병 논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 많음. 왕안석 매우 칭찬.
향약, 서원 모두 지방 차원의 조직.

민병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

최진덕: 4페이지 주자학은 제왕학이 아니라는 지적도, 조선시대 국왕의 지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 저 개인적으로는 조선시대국왕이 거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봄.

민병희: 정조가 대학, 을 주석 통해서 완전히 바꾸어서 이해한 것도 그 때문.

최진덕: 정조대를 보면, 경연에서 왕이 신하를 가르침. 그 이외의 시대에는 거의 반대의 모습. 신권이 군권보다 우위. 주자를 추상적 관념론자로 보는 것은 매우 오해.

김봉진: 2페이지 지적에 대해 저는 이렇게 이해. 인의예지를 포함, 일상인륜지도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 왕안석 인용문 아래에서 여섯줄 보면, “도는 매일매일 행해야 하는....”

민병희: 그것은 정희의 이야기. 참고로. 또 그렇다고 해서 인륜의 도=도그마가 아니라고 함.

김봉진: 이토 진사이가 맹자를 바탕으로 주자의 ‘리’를 비판. ‘리’=불교의 용어라고 비판.

민병희: 청대에 공자, 맹자의 원시유교로 돌아가자는 운동 일어나면서 주자학을 송학이라고 부름. 이들은 공양학자로서 송학에 대한 일정한 입장이 있으며 가치중립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대에 주자학이 많이 정리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논의(예를 들어 양계초)를 중심으로 주자학을 논하는 것은 많은 혼선을 빚음. 이토 진사이도 마찬가지. 송대에 씌어진 사료들을 보지 않고 청대 고증학자들의 논의만을 보면 주자학을 오해하게 됨.

김봉진: 주자의 삼원사고. 역설의 논리. 모순이 아니라 역설.
정치사회학적 연구니까 그 당시 송대 사회의 변화-상인계층의 등장, 서민문화, 근대의 시작?-와 주자 등장의 관련성을 논해 주면 좋겠음.

민병희: 제 논문 1장에 들어가 있음.

김봉진: 주자가 불교를 수용하면서 비판해 버렸음.

민병희: 송대가 불교의 쇠퇴기라고 하는데, 오히려 선종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고, 백련교 등 불교 컬트 완전 번성. 특히, 조직적 측면에서 엄청난 동원력을 가지게 된 것은 송대가 처음. 주자는 이러한 송대 불교에 대해 매우 우려하면서 자신의 논의 전개.

저는 주자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이 정희가 아니라 대혜종고, 라고 생각. 모든 논의가 대혜종고를 의식하면서 이루어짐.

이상하: 주자어류에 보면 대혜종고 비판. 충신도 친하고 간신도 친한 점. 희노(애락)가 절도에 맞지 않다. 불교로 인해 기질이 변화한 사람 없다고 함. 주자가 24세까지 자신에게 대혜,가 가득차 있었다고 함. 과거 보러 갈 때, 맹자와 대혜종고 두 권 가방에 있었다고. 주자의 모든 이론이 대혜종고를 겨냥.

최진덕: 걸물이다, 라는 칭찬도 있음.

민병희: 대혜종고는 매우 정치적이었던 인물. 사대부 네트워크의 중심. 사회정치적 지향이 공론장,적이라는 점에서 주자와 유사.

김봉진: 불교의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을 배격했는가?

민병희: 받아들인 것은 사회조직적인 면. 조직운영원리. 서원. 강학. 대중교육. 진휼기관.
배격한 것은, 불교처럼 하면 정치참여를 누가,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에 문제 생김. 대혜처럼 개인적으로 고위직이 되든가, 아니면 신자기만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데, 이는 안 됨. 송대의 전체적 분위기로 볼 때, 불교와 성리학이 지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매우 컸다는 츠츠다? 선생님 논의에 동의. 삼교교섭?

김봉진: 불교의 철학체계가 주희에게서 탈구축된 것.

민병희: 무를 유로 바꾸기만 하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음.

양승태: ‘리’가 송대 당시에는 어떤 의미를 가졌나?

민병희: 요즘 쓰는 것과 동일하게 ‘이치’. 사물의 리. 자연의 리.
principle이라는 개념으로 부상된 것은 북송대.

김봉진: ‘리’는 불교 용어가 아니라 중국말. 유교에서도 사용. 맹자, 순자에도 나옴. ‘기’도 일상용어. 화엄학을 받아들일 때, 산스크리트 경전에서는 ‘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 그런데 번역하면서 ‘리’를 집어넣고 불교용어처럼 됨. 송대에 오면 불교용어를 통해 지적인 논의를 하는 게 일반적 분위기가 된 게 아닌가.

민병희: 화엄학 빼고 여타 불교에는 ‘리’ 개념 없음. 그러나 전체 주자학에는 화엄보다는 선종 영향이 큼.

이상하: 리기 개념 처음 나오는 것이 주역. 주자는 자기 학문은 리학이라고 하고, 노자나 불교는 기학. 주자 왈, 요즘 학자들은 자꾸 뭘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분석하길 싫어하는 게 큰 병통이다. 리일분수지만 성인은 리일을 말하지 않고 분수를 말했다. 즉, 주자 자신은 현실에 나아가 도를 실천하는 것을 중요시.

민병희: 주희의 사회적 시스템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공부법의 체계화. 잘 짜여진 학습 프로그램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음. 관직과 전혀 무관한 학습과정에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놀라운 효용. 육상산은 경전이라든가 학습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주자학에 비해 매우 육상산 사후에 급속히 와해. 주희가 원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려면, 공적인 영역이 생겨야 하는데 그 바탕이 ‘격물’이며, 격물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주는데 이것이 학습 프로그램. 모두가 할 수 있는.

불교비판의 핵심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연결됨.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격물’이 없는 것이고, 천하 공공의 도를 알 수가 없고, 따라서 올바른 사회적 과정을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주자학만이 경세를 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학문이다. 불교처럼 따로따로 나뉘지 않고 학을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정치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불교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를 군주와 재상의 일, 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불교는 사회/공공과정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 주희의 불교비판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사대부의 정치참여 확보.

최진덕: 주자학의 진정한 목적이 과연 경세, ordering the world 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형시의 주희와 역사세계, 보면 주자학을 너무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고 사회참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경학보다는 형이상학이 먼저 아닌가?

여형시 주장은 득군행도. 정치를 하는 방법은 성군을 만드는 것. 저와는 반대되는 주장.

그런데 주자학을 그렇게 이해하면, 주자학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너무 취약.

민병희: 관직은 제한되어 있는데, 주자학을 하면 정치참여계층을 확 넓힐 수 있음. 지방 단위의 사회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 향약, 서원 등을 통해 사대부가 이를 주재하도록 함. 중앙이 모든 지방적 다양함을 수용하는 것 불가능.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메타포로서 형이상학이 나왔다고 봄.

최정운: 오늘 논의된 주자학의 사회정치적 기능은 서양의 자유주의와 매우 유사한 점 많음.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의 구조. 국가권력 하위에서 작동하는 미시권력들. 학교와 감옥. 여타의 유동적 자유주의적 제도.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가족. 이러한 비교 작업을 통해서 민병희 박사가 얻을 것 많다고 봄.    

민병희: 주자의 사대부는 자신이 주체, 라는 의식이 강하다는 것. 민, 은 규율권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사대부는 ‘소이연’을 알아서, 의식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

최정운: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시민이라는 이상. 소학을 통해 어려서부터 가정 훈련이 사대부의 출발점. 정교한 커리큘럼 통해 사대부로 만들어짐. 교육이 매우 중요. 내용은 다르지만 설명하는 방식은 자유주의와 주자학에서 유사점 발견. 자유롭지만, 결코 자유스럽지만은 않은 사회라는 점에서.

하영선: 주희 시대에 남송 멸망. 주자의 형이상학이 사회정치적 구상의 표상이라는 점은 정확히 이해하겠는데, 1100년대 후반의 남송의 정치적 문제를 보면, 지역적으로는 금-원으로 교체되고 결국 그로 인해 망함. 그런데 주자의 republic of mind식 해결책은 대내적인 것. 주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대외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는가?

민병희: 주자는 대외관계의 태도가 주전파에서 주화파로 전환되는 명확한 시기가 있음. 주희는 처음에 매우 명분론적이다가, 지금 현재 남송의 군사력, 사회경제적 생산력상 싸움은 불가능하므로 싸우면 안 된다는 실용주의자로 변함. 일관되게 주전파였던 진량과 주희의 논쟁.  
이상하: 인조 때 주전론의 논거가 주자였음을 상기할 것.

하영선: 마인드의 리퍼블릭을 통한 새로운 제도의 모색, 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데, 따라서 안에 대한 논의는 매우 정치하고 세련되었는데, 바깥을 보는 시선은 매우 나이브. 주희가 1150-1200년 사이에 활동했는데 어떻게 바깥에 대해서는 엉성?

민병희: 격물치지에서 치국평천하까지 갈 수 있다면....주자학에서는 국가, 국제 개념을 찾아보기 어려움. 개인을 넘어서면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으므로 논의를 회피. 금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금을 이길 방법이 없다면, 내부적 결속과 풍요를 다져 지킬 수 있다, 는 식으로 현실적이지만 나이브한 믿음.

주자학은 대외질서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제공해 주지 못함.

치국평천하의 국, 은 제후국의 국.

최진덕: 국가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옴.

양승태: 주희가 정치철학적 사유를 깊게 했다면 그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었을 텐데.

민병희: 주희가 유일하게 쓰지 않은 것이 <춘추>.

양승태: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송대에 있었나?

이상하: 네, 주역에 나오는 말.

양승태: 하나의 사상체계가 완성단계에 이르면서 형성되는 것이 형이상학. 그렇다면 주자학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이해되어 왔다면서 비판하는 민병희 박사의 문제제기는 무의미할 수도 있음. 주자의 모순된 언명 속에서 통일된 사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

민병희: 형이상학 문제는, 북송에서부터 있었던 정희의 형이상학 체계로 주희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음. 저는 통일된 질문,(학을 왜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 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였음. 저 자신은 모순,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음. 주희는 모순된 사상체계의 집합이라거나 주희 사상의 모순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문제의식에서 통합성을 발견.

양승태: 리일야, 는 알겠는데, 기일야나 학일야는 성립하지 않는가?

민병희: 기일야라고 말한 적은 없고, 학도 일, 이라고 설명했음.

양승태: 그렇다면 리는 주자학의 핵심개념이 아니지 않은가?

민병희: 리가 주자학의 핵심이 아니며, 심이 핵심이라는 것이 제 주장이었음. 리는 매우 무정형의 것.

김봉진: 주희의 주자학은 공공철학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

구대열: 조선시대 말기에 들면 유학자들의 현실감각이 왜 이리 약해지는가 했더니, 오늘 논의를 들으니 알겠음. 주변의 간신 몇 명만 없애면 다 해결된다는 최익현의 주장.
그리고 주자의 논의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유일한 실체가 ‘심’인데, 심에도 분명 구체적 특성이 있음. 그러한 심이 반드시 도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경에서 사서로. 주자 이후에 모든 것이 사서 중심이 됨. 우리는 송대 이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
조선 왕조의 장기지속을 설명할 때 주자학적 영향, 을 드는데, 그렇다면 중국에는 주자학적 영향 이외에 다른 변수가 더 강력했던 것?

민병희: 심, 은 환경에 따라 진화론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 주희의 전제.
원대와 청대에 사서에 대한 비판 강하게 일어남. 왕양명은 아예 경전 시스템 자체를 거부.
오경에서 사서로, 라고 말은 했지만 오경의 영향력은 계속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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