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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덕,“이기론의 역학적 이해”,“예치의 이념과 그 현실” (07.7.30)
 

2008-10-14 
2007년 7월 30일(월)

참석: 하영선, 구대열, 양승태, 김봉진, 전재성, 김상배, 강상규, 문유미, 최진덕
발표: 최진덕(한국학중앙연구원), “리와 기: 이기론의 역학적 이해”, “예치의 이념과 그 현실: 조선사회의 주자학적 이해를 위한 시론”

1. 발표

(1)

- 한국사상사 구성의 어려움. 특히 신라, 고려시대. 문/사/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비통합성이 한국학의 큰 문제. 조선조가 주자학에 의해 철저하게 지배받은 사회였고, 그로 인해 유학자들에 의해 비판, 윤색되었기 때문에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실감나는 복원은 거의 불가능.  

- 17세기 이후의 조선은 유교에 의해 정치, 사회, 민속까지 철저히 transform되었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 주자학이라는 이념이 지배한 왕국. 신라와 고려 등 한국고대사회는 이와 마찬가지로 불교에 의해 지배받았던 게 아닐까 추정함.

- 일본중세의 국가와 종교, 라는 일본 연구.(흑전준웅, 1970년대 연구서) 불교, 신도를 막론하고 일본종교와 국가가 불가분의 밀착관계를 가졌다는 주장. 교회권력과 세속권력이 긴장/길항관계를 유지했던 유럽중세와 달리, 시종일관 국가가 종교를 컨트롤했다는 것이 일본의 특징. 8-9세기 무렵엔 이미 불교와 신도가 습합, 초월적 인격신을 숭배하는 타력신앙으로 모습을 갖춤.

- 신라, 고려시대 또한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함. 그런데, 고려 중엽부터 사찰의 주지임명권이 완전히 불교계로 넘어오면서, 국가와의 긴장관계를 잃은 불교계는 타락하고 자기와해의 길을 걷게 됨.

(2)
- 유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버지’를 받들어 섬기는 것. 가부장적 가족 제도.
이 간단한 진리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서양철학의 영향이 아닌가 함. 서양철학에서 가족에 관한 논의는 사적 영역으로 치부, 언급이 희박함. 기독교철학에서도 내세에 대한 이론이 압도하면서 가족론 없음. 근대로 넘어오면서 개인주의 철학 또한 가족을 무시함. 헤겔 법철학 이외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없음. 그에 반해, 공자, 맹자, 순자 모두에게 공통되는 한 글자는 효.

- 아버지 중심주의를 부계 친족 전체로 확장한 것이 ‘종법’. 예의 핵심. ‘삼례’(의례, 주례, 예기)의 텍스트. 중국 고대 경전 중 유교적 가치에 관한 논의들을 모은 편찬서. 예학은 이 삼례에 대한 해석학. 주대에 종법을 확대한 것이 봉건제.
- 종교와 국가가 병존하며 길항하는 이원구조가 깨어짐으로써, 조선시대는 매우 독특함. 가부장제의 가장 철저한 옹호자는 남인 계통의 실학자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한 것이 절대 왕권 강화. (다산의 정치 개혁 프로그램은, 그의 천주교 수용과 더불어, 가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종교와 국가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정치개혁 프로그램. 일본 미토학의 오규 소라이 등 천황제론과 비견할 만함.)

(3)

- 조선사회에는 국가의식이 없었다. ‘민’이라는 말과 ‘백성’이라는 말은 <서경>에서부터 함께 쓰임. 민=백성=국가. 그런데, 백성, 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백가(百家). one hundred families. 그 꼭대기에 있는 것이 왕실.

구대열: 유학에서 왜 효가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양승태: 충은 지엽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최진덕: 충효일치론은 메이지 이후 일본학자들의 논의. 유학에서 군주에 대한 로열티인 충은 중요치 않음. 언제나 효가 우선됨.

양승태: 조선 후기 예송논쟁에서 노론측이 주장했듯이, 왕가도 하나의 가문이다, 라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왕가가 가의 하나가 아니라, 참된 도를 이어받은 초월성=국가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가. 거기에서 충의 논리가 나타나는 것. 단순히 효의 지엽적 부분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최진덕: 말씀하신 것은 예송논쟁에서 윤휴의 주장(왕권강화론). 윤휴는 송시열 등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림. 중국정치사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논쟁. 한나라 대 육법지쟁. 법가=행정중심주의자들과 왕실을 가의 연속성 상에서 파악하려는 측의 싸움.

노장 쪽은 자연주의적. 순자 쪽은 인간주의적. 따라서 맹자가 효를 훨씬 강조함.

구대열: 효가 중요해지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논리가 대체?

양승태: 유학 자체가 하나의 철학체계로서 효와 충의 문제, 가족과 국가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됨으로써 내적 긴장을 이루어왔다고 봄. 그렇다면 최진덕 선생님 주장의 근거는?

김봉진: 유교는 인간관계론을 탐구하는 학문. 인간관계의 기본이 가족. 인간존재의 근원적 선험성을 내포한 차원. 이 속에 연, 천리, 천륜이 들어있음. 그러므로 효가 기본이자 중심이 됨.

최진덕: 그것이 통상 유학자들의 논의이긴 하지만, 효에의 맹종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음.
김봉진: 그렇긴 하죠. 왜 어머니가 아니고 아버지인가? 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고.

양승태: 주자가 효의 자연적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효는 천도의 원리로서 나타나는 것이고, 그렇다면 더 넓은 천도 속에서 충을 굳이 배제할 근거가 없다. 일방적으로 환원시킨 듯한 감.

최진덕: 전통적 유학텍스트는 왜 효를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도 않고 따라서 답하지도 않음.

김상배: 자연지리적 조건(농경사회)이 효를 강조하도록 만들었다, 라는 주장은 할 수 없나? 효가 유교사회의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측면이 강한 듯 한데, 푸코의 논의에 따르면 유목사회에서 양치기가 양을 치는 것에 비유하여 사목관계/ 정치. 그렇다면 농경사회에서 아버지와 연장자가 가진 농사지식이 가지는 권력적 우위와 사회적 필요가 축적된 결과로서, 효가 강조된 것 아닌지?

구대열: 그런데, 농경은 이집트에서 훨씬 먼저 발달했는데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유교가...?
중국의 <대륙굴기> 프랑스편.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의 의미는 1. 국가를 내가 지배한다. 2.? 3. 프랑스 정신을 내가 대변한다.

양승태: 고려시대 주지임명권의 이행을 언급하신 것이 매우 흥미로운데,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최진덕: 제 전공이 아니라서 말씀드리긴 어렵고, 고려사 연구하는 허흥식 교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람.

구대열: 헨리 8세의 경우, 마지막 논쟁에서 교황청의 이혼 불허에 대해 헨리 8세가 내세우는 주장인 즉, 국가 내에서 나는 세속적 권력의 정점일 뿐 아니라 종교적 권력의 수장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근거를 전적에서 찾아냄.

최진덕: 삼국시대만 해도 왕들이 전쟁터에 직접 나가 싸웠고, 머리 깎고 승려가 된 경우도 있음. 조선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

그렇지만, 동아시아에서 불교가 아무리 흥성한 시대에도, 불교권력이 국가권력을 능가한 경우는 없었음.

김봉진: 서양 중세 교황권력과 동아시아에서 종교와 국가 관계는 상당히 달랐으리라 봄. 일본의 경우, 천황이 승려들의 후원자. 귀족자제들 중에 천황이 선임하여 당나라로 유학보냄.

.......

강상규: 예송 논쟁이나 예학 중심으로 조선시대를 보았을 때 선생님께서 환멸감을 느끼셨을 듯함. 효가 충보다 근원적.본질적이라고 사고했음에는 틀림없음. 일본에서 막말에 요시다 쇼인 같은 사람이 충이 효보다 우월한 가치라는 논의가 나오지만, 1903년 의병전쟁 때 의병장도 효를 위해 충을 포기한 사례가 있음. 그러나 여전히, 효 중심으로 유교를 읽는 이유를 ‘논증’하기에는 부족함.

대원군과 고종의 관계, 대원군과 민비관계에서도 효와 충의 우선순위에 관해 몇 차례 논쟁이 고종의 친정 이후 일어남.

(5)

- 조선 시대 주자학과 남송 시대 본래의 주자학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 사단칠정논쟁이나 인물성동이론쟁 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 조선 시대 주자학은 사림파 집권 이후에는 권력을 가진 주자학이며, 송대 주자학은 재야의 주자학.

- 당쟁, 서원 등은 전형적으로 주자학적 장치들.  

양승태: 모든 것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면 그에 대한 본질적 비판이 불가능해지고, 지배대상의 행동을 이념적으로 규제하면서 양식을 세분, 강화해 나감. 초월적 신앙은 초기에나 나타나며,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일단 집권 이후에는 동일한 양상. 주자학의 원죄가 아님.

최진덕: 저는 역사학자들과는 반대로 이념이 현실보다 앞선다, 는 전제를 가지고 조선시대에 접근했기 때문에 무리가 있었을 수 있음.

그렇다면 조선시대가 정말 효를 강조하고 예학이 발달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음. 예에 관한 책의 규모 자체가 청과 비교하면 매우 적음. <가례>와 <주례> 가운데 관혼상제 부분만을 편역한 <주자가례>에 관한 주석서들에 불과함.

나아가, 주자학 관심의 초점은 인간세계를 넘어선 자연세계인 ‘리’에 가 있기 때문에 예학이 발달할 수 없었음.

(6)
- 주자학과 양명학의 송명이학. 통상 차이가 강조되지만, 본체론의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고 확신함. 가장 중요한 경전은 <주역>. 천지만물이 모두 얽혀서 순환하고 변화하는 역의 세계.

문유미: 송대 주자학은 형이상학적 체제, 이것이 주자학의 핵심적 논쟁인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것이 ‘효’가 되었다는 말씀?

최진덕: 그것이 아니라 리=효제, 인의예지 라는 조선주자학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으며, 자연철학과 도덕철학이 상충한다는 것. 주자학의 궁극적 목표는 사실로서의 도, 와 내가 일체가 되는 것. 그러나 소학과 대학 사이에는 행복하지 않은 간극이 있음. 이 우주와 내가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가. 이것을 지적한 것이 왕양명. 주자식의 공부방법은 틀렸다. 주자학의 본체론은 인간이 이미 성인이라는 것. 양명학은 이를 인정, 다만, 이미 완성되어 있다면 예를 내세우며 굳이 인위적 노력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경이 성으로 연결되는가?

주자학의 본체론(리)과 공부론(경)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있음. 주자학 본체론(이미 주어진 도로 천인합일되어 있는 상태)에 어울리는 공부론을 제시한 사람은 오히려 왕양명.

전재성: 주자학 말씀하신 것 중에서, 주자학이 독특한 방법론을 가지게 된 것은, 나정암 예에서 보듯 어느 정도의 자연의 인과에 따른 축적, 과학적 실증성 있다고 하셨었는데, 오늘 논의는 좀 다르셔서

1. 주자학의 과학적 인식론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본체론 자체의 결함인가)

2. 인식론은 괜찮은데, 데이빗 흄 같은 경우 존재론과 당위론을 이원적으로 파악. 그렇다면 본체론과 공부론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최진덕: 제 박사논문을 쓸 때는, 분수의 축적을 통해서 어떻게 리일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의문이 있었지만, 본체론과 공부론이 어긋났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음. 송명이학이 가진 본체론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불가피함. ‘무극’이라는 개념이 단적인 예.

전재성: 불교랑 연결해서 설명하신 부분이 재미있었는데, 인간이 선행하여 리에 도달할 가능성 하나, 공부해서 리에 도달할 가능성 하나, 불교적으로 돈오/초월하여 리에 도달할 가능성 하나. 실제적으로 가능한 것은 세 번째인데, 이 세 번째는 불교에서는(화엄)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알려지만, 주자학에는 무나 리처럼 형이상학적인 것을 깨닫게 하는 인식론이 결여되어 있었다면, 확실히 심각한 결함.

최진덕: 굳이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주자는 점수파, 양명은 돈수파.

문유미: 조선 주자학자들이 양명학을 그토록 반대한 철학적 논거는?

최진덕: 주자가 그처럼 중요시했던, 예학, 소학, 경이 모두 날아가버리므로. 왕양명의 정신은 중국의 니체라는 명말의 이탁오에게 두드러짐. 허균, 박지원에게 영향.

구대열: 주자학자들은 반개혁적이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증명될 지점들이 좀 남아있다고 봄. 주자학의 실패라는 건, 자연질서로부터 사회질서를 설명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생긴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것. 또한, 예학의 발달이 조선에서 왜소해진 이유는, 외래학문 수용의 전형적 비극이 아닌가 함.

최진덕: 사실, 조선사상사는 중국사상사와 나란히 감. 그런데 임진왜란 후에 동아시아의 변화에서 조선만 누락됨.
하영선: 왜 우리는 양명학을 수용하지 못했는가, 혹은 유교를 넘어선 패러다임을 개발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반복되고 있음. 그게 궁금해서 외부전공자를 초빙한 것.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정치권력적 싸움이 1차적 원인+사회적 변수 + 이념적 차원.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오백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한학 전공자들은 최선생님과는 정반대에서 주자학을 피끓게 옹호하는데,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만큼 저쪽을 이해하고 있는지?

주자 옹호론자는 아니지만, ‘격물’하기 위해 ‘궁구’하라는 공부론이 현대 과학철학의 고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있다고 생각. 3천여년 우리 역사에서 세계지식질서의 가장 꼭대기에 근접했던 인물이라면 퇴계. 그렇다면, 한학 전공자들 뿐 아니라 저희같은 비전문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주자학 비판 이전에/넘어서서 주자경전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작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최진덕: 주자가 중국사상사에서 위대한 인물임을 인정. 공자 이후의 사상사를 집대성한 인물. 그러나 그러한 제설습합적 특성, 중용적 조합이 주자 이론의 약점이라는 것이 저의 입장. 조선시대 우리 조상에는 두 부류의 인물이 존재. 첫 번째는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 조선시대에는 영웅을 찾아보기 어려움. 둘째는 여러 사람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는 성인. 성인도 찾아보기 어려움. 영웅은 역사세계 내의 위인이고, 성자는 역사세계를 넘어선 위인인데, 둘 다 없음. 그런데도 조선이 500년 이상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교도 철학도 없었던 정치권력유지에 불과. 임진왜란이 지나면 더구나 조선조의 기강이 박살나서, 왕조조차 유지하기 어려워짐. 조선시대 사상사의 빈약함은, 여기에 외국어로서의 한문능력의 한계가 있었다고 봄.

문유미: 하버드에서 The Republic of Mind라는 제목으로 송대 신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받은 민병희박사 있음. 왜 공부하는 사람이 통치를 하게 되는가. 주자학의 역사학적. 정치적 기능을 다루고 있음. 다음에 최진덕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들으면 좋을 듯.

강상규: 아쉬운 점 몇 가지. 구체적인 시기 구분 및 역사적 맥락이 누락된 채 ‘조선시대’가 뭉뚱그려져 있음. 조선시대 경연의 기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신데, 그만큼 정치제도의 실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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