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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uus, The Abacus and the Sword: The Japanese Penetration of Korea, 1895-1910 (07.2.21)
 

2008-10-14 
2007년 2월 21일(수) 전파모임

장소: 경기도 수지 세계정치연구소
참석: 하영선, 구대열, 최정운, 김봉진, 손열, 전재성, 김상배, 김준석
내용: Peter Duus, The Abacus and the Sword: The Japanese Penetration of Korea, 1895-1910 (손열 발제)

I. 발제

- 일제시대 한일관계 대표적 영어 연구서가 매우 적음.

1. 이 책의 구조와 시각
1)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으로 일본의 대한정책을 분석
2) 중심(동경)과 주변(조선)에서 일본인이 보는 대한정책 분석: 1부와 2부
- 일본은 중심.주변에서 모두 보았는데, 조선인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결정적 한계. 두스가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고 있음.
3) 제국주의 연합(imperialist coalition)
- 동경에서 벌어지는 여러 세력들 간의 관계 잘 보여줌.

2. 일본제국주의: late imperialism
1) 문명적 관점
2) 전략적 관점
3) 상업적 관점
- 제국의 상업적 이유: 상업적 이익 확보를 위해 정치적 확장이 필요. 교역, 원조, 투자 등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우월한 정치적 지위 확보.

3. 일본제국주의는 서양제국주의의 mimesis

free trade imperialism -> new imperialism(concession, sphere of influence, protectorate) -> colonial imperialism

두스는, 메이지 지도자들이 애초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확고한 의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서양처럼 제국주의의 첫 두 단계를 거친 뒤 20세기 초에야 비로소 명확한 정책적 선택이 내려진다고 봄.

1) 1870년대: free-trade imperialism
- 이 시기 정한론에 역사적 연속성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음. 서양의 조선점령 예방효과, 경제적 효과, 국내적 불만세력 무마 효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궁극적 목표가 부재했음.
- 강화도 조약의 사례. 두스에 따르면 이는 비서구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음으로써 서양 국제질서(자유무역 제국주의)를 체화하고 그 일원이 되려는 욕망의 표현.
2) 1880년대: new imperialism
- 담론의 변화. 한반도가 일본에 지정학적으로 사활적인 존재로 인식됨.
- 임오군란, 갑신정변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수동적(passive)이었다고 두스는 봄. 1880년대의 일본은 국내 개혁의 부담으로 인해 대외적 모험을 감행할 여유가 없었음.
- 대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중국과의 향후 대결을 준비하는 장기 군비증강계획을 수립. 1890년대가 되면 일본 군부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됨.

※ 군사적 해결이든 외교적 해결이든 간에 일본의 대한 정책의 궁극적궁 목표는?
- 1894년 청일전쟁 전 조선개혁 프로그램 등장: 무츠의 네가지 정책대안(방관; 보호국; 중일공조; 중립화): 청일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이에 대한 합의 이루어지지 않았음.
- 일본은 왜 개혁을 들고 나왔는가? 유영익 선생은 “무츠와 이토가 조선의 내정개혁을 거론한 궁극적인 목적은 조선에서 대청외교상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함; 이에 대해 두스는 무츠와 이토는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고 보며, 갑오개혁은 정치적 필요 내지 이권확보의 수단만이 아닌, 개혁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봄.
- 무츠의 입장: 조선내정 ‘개혁’은 정치적.군사적 목적. 일본의 영토확장 내지 보호국화.
이토, 이노우에, 우치다의 입장: 대조선 정책의 목표는 개혁과 경제적 특권의 확보. 일본 안보를 위해 조선 독립이 필요하고, 근본적 개혁 없이는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한데, 조선은 스스로 개혁을 단행할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돕는다는 논리.

4. 갑오개혁
1) 1차개혁(1894.7-10)

2) 2차개혁(1894.12-1895.7)

3) 3차개혁(1895.8-1896.2)

4) 의의: 자율 vs. 타율 논쟁
-독립협회로 이어짐: 대한제국기 추진된 개혁의 기초; 전근대사회를 해체시킨 한국 근대화의 획기적 이정표(신용하; 유영익); 갑오개혁은 주체적 개혁논리의 발전선상(왕현종); 주체세력은 대체로 급진개화파 노선에 근접; 이들은 자주독립을 위해 시한부로 일본에 의존하려 한 것; 상대적 자율성 확보
- 민족주의적인 국위선양 조치; 평등주의 사상
- 정치개혁은 군민공치사상(유길준)이 실현; 그러나 대한제국기 왕권강화로 무산
- 갑오경장의 경제개혁의 초점은 국가재정의 효율적 관리로서 탁지부에 의한 재정의 일원화는 이후 무산;  


5. 1895년 이후: concession imperialism 본격화

두스에 따르면, 1905년 이후 10년까지 보호국에서 식민지로의 전환은 필연적인 것은 아님. 일본이 반드시 직접지배를 희망한 것은 아니었고, 적절한 조선측 협력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는 입장. “만일 조선의 엘리트들이 안정된 세력을 형성하고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한국은 독립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p.241).”

6. 결론: 일본제국주의의 특징
1) 군사: late developer로서 late imperialist; 조선이란 전략적 완충지가 서양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방어적 제국주의; 서양과의 협조노선은 견지
2) 경제: 서양에 대한 상대적 후진성으로 인해 일본의 해외팽창 여의치 않음; 대자본이 아닌 쁘띠 자본가가 진출 주역; 사적 자본보다 국가 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함
3) 문화: 일본은 스스로를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간주; 일본과 조선간의 차이는 인종적,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의지의 차이;

II. 토론

구대열: 콘로이가 2-30년전에 쓴 책을 좀더 elaborate한 느낌. 영국식으로 muddling through하면서(갑오경장,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을 병합했다는. 경제에 좀더 방점.

하영선: 콘로이보단 좀더 조심스럽다고 보임. 두스를 10년 전에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음. 우선 두스가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 고유명사들도 일본 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많음. 미국학계 일본제국주의 분석의 대표인  1980년대 스탠포드 대학 마이어스&피아티 그룹과 동일한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분석시각도 1. grand scheme이 있었는가? 2. 반대로 아무런 계획이 없었는가? 3. 임시방편의 단기 정책 선택이었는가라는 세가지 입장중에 3번으로 동일함.

그 다음에 나온 일본학계를 대표하는 이와나미 식민지 씨리즈(전 8권)과 요즘 일본의 연구도 마이어스&피아티 논지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있음. 한국학계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1번 주장은 일본이나 미국학계에서는 소수임. 이 책을 쓴 뒤로 두스는 더 이상 글이 없음. 지난 10년 동안 더 이상 새로운 주장 나오지 않았음.

이제 한국 입장에서 쓴 일본제국주의 분석이 나올 때가 되었음. 두스가 한국어를 읽을 수 있었다면 책의 내용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임. 지난 주 홍지연 양이 석사논문인 갑오개혁의 화폐개혁문제를 경제사학회 연례대회에서 발표했음. 토론의 구도는, 국사학계-경제사학계-국제정치학계의 삼파전이었음. 군국기무처에서 통과된 화폐관련 법안의 마지막 항목 “일본 화폐의 국내 통용을 잠정적으로 허용한다”의 해석을 둘러쌓고 국사학계: 일본의 일방적 영향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 경제사학계: 국내 경제구조상 화폐개혁이 불가피한 측면 있었음. 홍지연 양: 일본의 압력이 있었지만, 개혁주체들은 일정한 국내적 필요를 인식하고 한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라는 세 입장의 토론이 있었음. 합의없이 향후 문서 등 근거를 서로 검토하기로 함.

고토쿠 슈스이가 1901년에 쓴 『20세기지 괴물 제국주의』는  홉슨의 『제국주의』(1902)보다 시기상으로 약간 먼저 나왔으나 경제적 제국주의론은 아님. 적어도 청일전쟁부터 이 때까지는 경제가 최우선의 동기였다고 보기 어려움. 그렇다면 우리쪽 문서까지 검토할 경우 두스를 논박할 여지 많다고 봄. 무쓰의 건건록을 보면, 조선개혁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논하면서, 오히려 조선이 자주적으로 개혁할까 우려하고 있음. 그 경우 일본 병력의 철수를 걱정하고 있음. 그러므로 무쓰의 건건록을 경제적으로만 읽을 수 없음. 두스가 일본문서를 꼼꼼히 읽은 것 같은데 어째서 그걸 간과했을까 궁금함.

새로 나온 Dudden의 책은. 우리편을 들어줌에도 불구하고 두스보다도 더 dry함. 재미없음.  

최정운: 전형적인 논조. 일본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다양한 세력이 있었고, 단일한 제국주의적 의도를 파악할 수 없고, 시대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모든 의도는 해석을 요하며, 철저한 해석이 이루어진 후 전체적 의도를 말할 수 있음. 그리고 해석의 전제가 되는 틀로서 사상사가 필요함.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해체주의적 물타기는 전형적 친일파 서양학자의 논조.

구대열: 미국에서 일본정치사 가르치는 아키라 이리에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 의도의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면면히 흐르던 팽창욕구, 라는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자기 책에서 말하고 있음.

최정운: 경제적 목적이므로 제국주의 아니다, 라는 것은 말이 안 됨. 메이지유신의 깊은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면, 근대화와 제국주의 피해갈 수 없음.

구대열: 한일관계의 특수성, 세계사적 안목, 사상사적 해석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스적 오류를 충분히 피해갈 수 있음.

손열: long-term plan이 없었다, 는 두스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plan들 간의 경합에 주목한 것에는 일리가 있음. 일본 내부적 편차.

하영선: 그처럼 경합하던 계획들을 아우르는 큰 방향성이 없었다, 고 말할 수 있겠는가? 89년 90년에 이미 생명선 이익선에 의해 조선의 전략적 가치 파악하는 논쟁 있었음. 정한론, 갑오개혁, 보호국에 대한 두스의 역사적 해석은 매우 동일한 논리에 기반하며, 동일한 문제를 노정함.

최정운: 일본전공 미국학자들은 절대 근대 일본의 행보에 심리적 정향을 부여하지 않음. 그러므로 매우 난삽한 이야기가 됨.

하영선: 스탠포드 학풍과 연계되므로, 현재 스탠포드에 가 있는 문유미 박사 생각이 남. 매우 힘든 싸움을 하거나 두스 논리를 수렴해야 되는 딜레마는 없을까 걱정됨. 미국 내 대학들 동아시아사 코스에서 두스는 기본리딩임.

유영익 선생 논지도 국내사학계의 분위기 상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게 쓴 것.

구대열: 제국주의 시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피지배국들의 저항과 반응이라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비교분석해야 함. 이집트 문제만 해도, 경제적 침투만을 강조하는데, 영국 문서를 보면 정치-경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림. 일본도 이집트 모델을 생각한 것 분명함. 그런데 그 방법이 조선에서 통하지 않으므로 합방을 해야 한다..... 인도 모델.
통계, 단편적 사실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  

김봉진: 두스를 능가하는 우리쪽 연구서가 나와야 한다는 선생님들 말씀은 지당합니다만, 근대사 연구자로서 마음 무거움. 미국학자들의 친일 경향이 대단히 뿌리깊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도 통감.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학 하는 미국학자들의 논지도 반한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저쪽에 대해 반감이 큼. 미국학자들은 한국 사학자들이 이데올로그라고 생각함. 똑똑한 한국계 미국인 젊은 학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학적 전통의 부재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지나치게 전문화되어있는 반면, 중국학은 급부상하고 있음. 워낙 전통이 있는데다가 최근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음.  

한국학자가 쓴 영어 한국학 교과서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문제. 한우근 선생님, 이기백 선생님의 기본교과서, 자료모음집 정도가 전부임.

구대열: 식민지시대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바꾸려고 해도, 오늘 다룬 구한말에 대한 입장정리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 두스가 지적한 ‘시기적 변화’라는 것은 상식. 세계사적으로, 정신사적으로, 한일관계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규명이 필요한 시점임.

김봉진: 역사학은 사건사에 대한 지식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사상사적 해석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음. 실증주의의 왜곡.

구대열: 역사철학 없는 국사 연구는 어불성설.

최정운: 국사, 문학사가 저항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음.

구대열: 카터 에카르트의 한국학 MA 코스 리딩에 헤겔의 역사철학 들어있음. 한국학이 헤겔식 역사관념에 압도되어 있다는 반증.

하영선: 일본에서 한국근대사의 대표선수는 누구? 강재언 선생에 대한 평가는?

김봉진: 통사적 교과서,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함. 세부적으로 분화되어가는 추세. 강재언 선생은 크나큰 공헌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근대화론자의 범주에 속하는 분.

전재성: 첫째, 이 책에 표상되어 있는 한국의 모습은 매우 허탈. 일본제국주의가 수동적이고 모방적 제국주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타적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함. 두스가 한국어를 모른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데, 한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고 생각한 듯.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 과정에서 한국은 의미있는 actor가 아니었다는 전제. 한국이 분열되어 있고 무능했기 때문에, 일본이 식민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 식민지 근대화론의 단서들도 보임. 한국측 노력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대한정책사이지 한일관계에 대한 책이 아님.
둘째, 왜 두스가 이렇게 편파적일까? 가설 1. 몰라서. 그렇다면 한국의 중요 19세기 문헌을 영어로 번역해줘야 함. 가설 2. 음모론적이긴 한데, 알면서도 일부러 배제했다. 연구자금 등등 일본과의 밀착.
셋째, 로빈슨 갤러거 주변부 협력 이론 등을 통해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을 보면서 분통 터짐. 결국 3세계 입장과 역사에 기반한 제국주의론 탈구축 작업이 요구됨.

한국인들이 모든 일본의 faction을 유도한 것처럼(쟤들이 저렇게 나오니 병합할 수밖에 없다,는) 서술하는 문제. 을사조약부터 합방까지의 내러티브에서 특히 두드러짐.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이 암살하고, 고종이 헤이그 밀사 보내고 등등.

하영선: 이 책에 대한 부정적 리뷰가 한 편도 없다는 것이 흥미로움. 학계에서의 두스 위치를 보다 상세히 검토할 필요있음..

손열: 1부는 중심(도쿄)의 일본을 쓰고, 2부는 주변(조선)의 일본을 썼는데, 3부를 만약 한국측의 한국을 썼다면, 그것이 과연 화학적으로 합성될 수 있었을지? 결국은 중심의 정책결정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주변으로부터의 feedback을 경시하거나 간과했다는 사실.

하영선: 일본 식민정책 연구 대상이 총독부 자료가 핵심인데, 제국의 중심에서, 공적으로 만들어 낸 자료의 한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개별 문건의 새로운 발견보다는, dis담론전체를 읽어내는 싸움이 필요함. 헌정자료실에서 평생을 보낸 야마베 겐타로같은 인물이 필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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