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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일기>2권
 

2003-01-22 

99년 6월 세미나 기록

 

일시 : 1999년 6월 5일(토) 오후 3시-8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활관 3층 2회의실
참석 : 하영선, 최정운, 신욱희, 김영호, 손 열, 김석근, 안인해
독회내용 : <윤치호일기> 2권

 


 

<주요토론내용>

 

김영호 교수

윤치호의 행적을 알아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임.

 

하영선 교수

밴더빌트 대학(3년) 졸업했고, 에머리(2년)에서 수학했지만 정식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음.

 

최정운 교수

외국에서는 대학이 보통 신학(밴더빌트의 예처럼)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음.

 

김영호 교수

교회에 가서 한국에 대해 얘기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음.

 

하영선 교수

2권이 상대적으로 가장 재미없는 것 같음. 3권 앞부분까지 미국 생활의 얘기이고, 3권은 조금 더 재미가 있는 것이 일본에서 박영효와 김옥균을 만나는 내용이 실려 있음.

 

김영호 교수

p.58에서 조선의 상황에 대한 5가지 alternatives 제안함. 그러나 조선은 민비와 그 일당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함. 두 번째로 외세의 간섭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함.

 

손   열 교수

일본 factor는 고려하지 않는 듯함.

 

최정운 교수

이 당시 사람들이 내적 혁명(internal revolution)을 많이 얘기했는데, 그 의미는?

 

하영선 교수

p.58이 하이라이트인 듯함. 재미는 전체적으로 없지만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음. 5년간의 미국을 기록한 가장 긴 기록임. 문제는 신학 위주여서 윤치호의 문명관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음. 굳이 의미 부여를 한다면, 기존 윤치호 연구가 간과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을 critical하게 본다는 의미. 사학계(참고: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가 가장 나음)보다는 영어 감각이 조금 더 있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읽고 좀더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임.

 

최정운 교수

신학교에 간 이유는? 알렌의 추천서로 갈 수 있는 곳이 신학교밖에 없었나? 아니면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인가? 그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함.

 

하영선 교수

전체적인 느낌을 얘기하자면, 2권이 대외관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도식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봐야할 것임. 개인적인 경험으로 본인도 5년 미국에 있었는데, 그것과 비교하면 윤치호가 5년 사이에 미국의 다양한 측면을 봤다는 것이 놀라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객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음. p.158의 4번은 독립운동가로서는 조금 무책임한 느낌을 줌. 그리고 모국보다는 모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함. 조선은 지금 정권이 있는 한 독립이 요원하다고 생각함. 진화론의 시각에서 보면 지금 정권은 그런 진화를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면 미국을 모범으로 보았나? 이와 관련하여 미국사회의 허구성(인종주의 등)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판하기도 함. 조선에 대한 negative comment도 집권층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해야 할 것임. 외세 지향적이고 자기 모멸감에 빠진 시기가 이 시기라고 사학계의 평가처럼 규정하기보다는 다소 다른 의미를 찾아봐야 함. 즉 재구성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 같음. 가끔씩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구절들이 등장함.

 

김영호 교수

포기하는 것은 조건이 다 있음. 이 정권이 있는 한 포기한다고 얘기함.

 

최정운 교수

왜 일기를 썼나? 영문으로 쓴 이유는 한글보다는 영어가 쉬어서일 것임. 말하는 것과 글자가 일치한다는 것이 상당히 신선해서 능률이 높았을 수 있음.

 

하영선 교수

당시에 인물을 보는 기준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음. 개인적인 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평가해야 할 듯함. 윤치호의 대외관 또는 대내관(조선관: 사학계에서는 조선인의 인간성이 천박하다는 생각으로 자기모멸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친일적인 가능성을 이런 점에서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고 간주함)도 50%는 수정되어야 할 듯.

 

최정운 교수

자기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듯함.

 

하영선 교수

연구들이 윤치호를 죽여놓는 듯한 느낌이 있음.

 

최정운 교수

당시 지식인들의 변화 양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맨 정신으로 지내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신학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함. 상대적으로 환상은 없던 사람으로 보임. 상당히 realistic했던 것 같음. 유길준은 미국에 대해 유토피아적으로 보는 것에 비해 윤치호는 어디나 똑같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보았음.

 

하영선 교수

상당한 재치와 능력을 겸비했던 인물임. 한국 얘기가 아주 적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음.

 

최정운 교수

비록 외로울 때는 한국 생각이 나지만, 한국에 오면 골치가 아프다고 생각했을 것임. 한국에 가서는 무슨 일을 하려 했나?

 

하영선 교수

p.58의 얘기가 거기에 해당될 것임. 동시대 인물에 비해 상당히 이색적으로 생활한 것 같음.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썼고, 박영효는 건백서를 썼고, 김옥균은 일본에서 전의를 불태웠고, 서재필도 나름대로의 활동을 한 데 비해, 윤치호는 여자도 만나고 음악도 듣는 등의 생활을 했음. 우리가 볼 때 중요한 구절은 몇 대목 나오지 않음.

 

김영호 교수

당시에는 미주판 한국 신문이 없었기 때문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었을 수 있음.

 

하영선 교수

윤치호의 미국 생활에 대해 현지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음.

 

김영호 교수

p.387의 4일째 일기부터 p.388까지 등에서 한국에서 할 일을 나열하고 있음.

 

하영선 교수

윤치호 일기 11권을 읽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윤치호 일기의 재평가"는 가능할 것 같음. 이런 류의 기록들이 reality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임.

 

최정운 교수

윤치호의 눈을 통해 reality를 복원하려면 혼선이 생길 가능성이 큼. 10년만에 돌아온 윤치호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임. 기독교를 개화의 key로 생각했는가? 사실상 80년대 말에 이화여대와 연대가 생겼고, 90년대 이후에는 Mission 쪽에서 개화를 실제로 교육으로 주도한 측면도 있음.

 

하영선 교수

윤치호가 기독교문명을 어떻게 보았는가? 행실 부분에 있어서 유교와 기독교중 어느 쪽에 점수를 더 주었는가?

 

최정운 교수

예수쟁이 타입은 아닌 듯함. 크리스천적으로 순교할 준비는 안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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