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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의 근대 국제정치개념 도입사
 

2003-01-22 

98년 12월 세미나 기록

 

일시 : 1998년 12월 30일(水) 오후 3시 30분-8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활관 3층 2회의식
참석 : 하영선, 장인성, 신욱희, 김영호, 김석근, 손 열, 김봉진
독회내용 : [19세기 조선의 근대 국제정치개념 도입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1994년 1학기 세미나

 


 

주요토론내용

 

일본 방문 건에 대해

- 2월 11일(오전)부터 2월 14일 예정. 연초에 확정짓도록
- 리허설은 1월 25일(월)에 가지도록 함: 유영익 선생 초빙. 정초에 연락드려서 확정.
- 몇 편을 준비할 것인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하는 방향은 어떨까?
- 지난 번 논의처럼 3-4개 묶어서 2세션을 발표하고, 일본 측이 1세션 발표하도록. 오전에 1세션, 오후에 2세션으로 운영.
- 분량은 A4로 5-6매선
- 김영호선생(부국강병), 장인성선생(세력균형), 하영선선생(문명)을 묶어서 first세션
- 김석근선생(개인), 김용직선생(민주주의), 최정운선생(사랑)을 묶어서 second 세션
- 그 외 안인해선생, 신욱희선생, 손열선생 참석
- 9시 30분-12시(1세션), 점심 1시간, 1시-1시 30분(2세션). 4시-6시 30분(3세션)으로 예정하고, 개인별로 20분 정도 발표할 준비를 하면 될 듯함.
- 숙박은 와세다 측에서 준비하는 것 기다려보고 안되면 찾아보기로 함
- 통역은 현지 조달

 

텍스트에 대해

- 하선생님의 총평: 영어로 된 책은 코젤렉 류의 개념형성사의 측면에서 보지 않는 것이 많음. 독일과 프랑스 쪽 문헌도 그대로 보기는 힘들어서 코젤렉을 의존하기로 했음. 청과 일 쪽도 제대로 cover하기는 힘들었음. 한국 쪽은 전파모임에서 다뤘던 텍스트를 주로 보고 나머지는 주로 2차문헌을 참고해서 짜깁기하여 내용을 채웠음.

- 논문 내용 중 서론에는 하선생님의 지적 사항들이 담겨 있는데, 결론 부분에는 그것을 포용하지 못하고, 경로를 밝히고 나열하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 듯한 느낌임.

- 고유의 개념, 전래된 개념, 대응 개념 등에 대한 정리가 명확하지 않음. 예를 들면, 부국강병은 순수한 근대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동양의 개념이 아닐까?
- welath and power 또는 national interest가 부국강병의 개념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임.

- 개념의 typology를 다시 해볼 의미가 있음. 경제와 economy는 대응되는 개념이지만, 부국강병은 그러한 대응 개념이 명확하지 않음.

- 근대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핵심개념이 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함. 그 key를 문명이라고 한다면, 다른 개념들이 문명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 단순히 개념사가 아니고 개념이 도입되는 사회경제학을 고려한다면 당시의 저술에서 추출하는 것이 아니고, 문명개화가 아닌 다른 쪽의 텍스트도 동시에 보아야 언어의 전쟁상이 제대로 보일 것임. 즉 대표적인 문건들을 cover할 수 있어야 개념도입의 사회과학적 의미가 드러날 것임.

- 서양→청·일→조선 개화파의 순서가 아니라 역의 기술방법이 필요할 듯함. 우리의 개념변화를 먼저 쭉 살피고 그런 개념이 청·일과 서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살피는 것이 나을 듯함. 전혀 없던 내용이 개념을 새로 들여왔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으로 포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함.

 

우리의 언어로 삶의 현실을 표현할 수 없게 하는 international standard가 들어오는 상황이었음. 그것에 대한 적절한 언어군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 즉 새로운 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 딜레마가 존재했던 것 같음. 즉 I.S.나 G.S.에 대한 고려도 필요함.

- 개념에 따라 충격의 강도가 다름. 예를 들어 세력균형 즉 균세는 합종연횡 등의 경험으로 쉽게 받아들여졌음. 따라서 균세 개념이 들어왔기 때문에 세력균형의 관념이 생겼다고 보기는 힘들 것임.

- Richter의 책처럼 experience와 expectation을 고려해야 함. 민주주의의 '민'과 전통적인 '민'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맥락과 권력구조에서 이해되는 것임. 따라서 그 context는 다르기 때문에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해석을 다르게 해야 할 것임.

- 개념에 따라 기술 방식의 차별화가 필요할 듯.

- 당시의 세력구도에 따라 그런 편차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 이상형의 개념과 현실적인 변용 사이의 gap을 어떻게 밝히는가가 의미있는 작업일 것임.

- 전반적으로 power에 대해서는 negative한 심성이 강했다고 여겨짐.

- 결국 research가 역순이 된 것은 전통어를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임. point는 전통에서 근대어로 넘어오는 싸움이었는데, 우리는 전통에서부터 출발할 수 없었음. 전통적인 삶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에 대해서는 유사개념을 불가피하게 사용하였음. 예를 들어 균세(B.O.P.)를 보면 영어의 power에 해당되는 단어인 '세'는 서양인의 power의 이미지와 전통의 '세'의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음. 힘보다는 세를 중시했던 것 같음. 따라서 전통어의 해석 자체도 문제가 됨.

- 조선이 설혹 일본이 번역한 용례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조선 내부에서의 개념도입은 일본과는 다른 상황에서 진행되었음. 사실상 우리가 청·일보다 서양의 문명에 따르는 개념에 먼저 접하고 번역한 것은 없는 상황. 본격적인 번역은 일본을 통해 청으로 역수입되었음.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개념사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궁색해짐.

- 따라서, 다루는 개념 또는 단어를 만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을 서술하고 왜 그 단어를 만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고, 끌어들여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접합된 모습은 청·일과는 일정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순서로 서술해야 할 것임.

- 즉 우리의 목적은 청·일과는 다른 context에서의 개념 사용을 보여주는 것임. 가능한 한 용례를 많이 찾고 범주화시키고, 그것이 서양과 청·일과 어떤 편차가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으로 진행하면 될 듯함.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었는가를 밝혀야 함.

- 예를 들어 '부국강병'은 그 개념 자체가 애매한데, 그 이유는 세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려 했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할 것임. 왜냐하면 부국보다는 안민을 고민했던 사람들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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