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세미나 기록
1. 주 텍스트
* 조선 중화주의의 재검토(발제: 최인호)
* 조선 중화주의에 대한 학설사적 검토(발제: 김봉진)
* 조선 후기 조선중화주의와 그 해석 문제(발제: 노가연)
* 조선의 18세기와 탈중화 문제(발제: 최인호)
*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대청의식의 변화와 새로운 중화 관념의 형성(발제: 김성배)
* 대의각미록과 조선 후기 화이론(발제: 하영선)
2. 발제 (발제문은 첨부파일 참조)
3. 토론 내용 정리
손병권: 과연 ‘중화’란 무엇인가: 지리, 종족, 문화의 총체인 것 같으면서도, 이 중 하나만 충족해도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유태인의 자기 정의) 중화에 대한 개념사적 분석이 가능한 것인가?
김봉진: 중화에는 크게 ‘열린’ 중화(禮에 기반)와 ‘닫힌’ 중화(지리/종족이나 문화를 기준으로)가 있다. 역사적 시기 별로 이 두 개의 중화관은 각기 다른 역사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세미나에서 나오는 옹정제는 전자, 역사적으로 일본은 후자(근대민족주의 형성에 유용). 조선중화주의는 내가 보기엔 전자에 가깝다. 조선중화주의를 어떻게 위치시킬지는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이다.
손병권: ‘華夷’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는 것은 종족적인 세계관이라 볼 수 있는가?
김수암: 중화문명은 공유된 것이라 본다면, 고려나 그 이전 시기에도 본인들도 중화라고 여겼을까? 명대가 여러모로 특수한 역할을 한 시대인 듯.
손병권: ‘조선중화주의’라는 단어는 현대에 만들어낸 말. 사료 속의 용어와 같은 선상이 아님 역사적 어휘와 분석적/해석적 어휘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헌미: ‘조선중화주의’ 단어의 탄생(정옥자) 이후 2012년에 이 논쟁이 부활된 의미는 무엇인가?
전재성: 3대 요소(지리,종족,문화)뿐만 아니라 전통 동아시아 질서에 나타나는 정치체의 독립성(베스트팔렌만큼은 아니지만)을 봐야함. 조선 내부에서도 성리학에 대한 해석에 따른, 중화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파벌 간 ‘중화’의 해석 차이가 있기에 면밀한 독해가 필요하다. 현재 앞 시대와의 관련성이 사상되어 있는 상태로 조선중화주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영선: 이번에 여려 논문들을 읽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모든 논문들이 당대 천하질서의 행동준칙으로서의 중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보인다. 이게 연구를 진행하는 데 드는 첫번째 어려움이요, 두번째는 조선의 관점의 조선중화주의에 대한 이해와 북학론의 연결고리가 애매하다는 점이 눈에 뜬다. 주자학/성리학적인 중화의식이 조선으로 전파된 과정에 좀 더 천착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서야 조선중화주의의 독특한 양상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