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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하영선칼럼] 김정은의 ‘토정비결’ : 신년사 바로 읽기
 

동아시아연구원 

2015-02-11 

신년사 바로 읽기

 

매년 새해가 되면 연중행사로 북한의 신년사를 읽는다. 금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신년사 독해법을 소개하기 위해서 〈북한 2014 미로 찾기 : 신년사의 해석학〉(〈EAI논평〉 제32호 2014/01/27)이라는 자세한 글을 썼기 때문에 금년에는 반복해서 해설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신년사 분석들이 정곡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고 있는 탓에 설날을 앞두고 2015년 북한 신년사를 제대로 해석해서 김정은의 을미년 ‘토정비결 운세’를 점치기로 한다.

 

2015년 신년사의 기본 골격은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년사는 우선 2014년을 “당의 영도 밑에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최후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조선의 불패의 위력을 떨친 빛나는 승리의 해”로 평가하고 2015년의 투쟁구호로서 “조국해방 일흔돐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과업과 방도로서 1960년대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의 시야를 주도해 온 3대 혁명역량 강화의 틀에서 국내역량, 통일역량, 그리고 국제역량의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상반기 운세 : 국제역량 약화 위험

 

김정은의 금년 ‘토정비결’을 보기 위해서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의 시야 속에서 변화하는 금년의 과업과 방도를 바로 읽어야 한다. 북한이 을미년에 겪어야 할 첫 어려움은 북미관계 악화에 따른 국제역량의 약화 위험이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지난 해 5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연설보다 훨씬 당당하게 다시 한 번 미국이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며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주도하느냐라고 밝혔다. 이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군사력과 외교력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서 제재 우선의 러시아, 제재에서 외교로의 과도기에 있는 이란, 외교 우선의 쿠바를 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연설에 공개적으로 포함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강한 제재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외교로 다루려는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연말 김정은 제1비서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Sony) 영화사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한 오바마 대통령은 연초에 강한 제재의 첫 단계로서 지난 2005년에 기대이상의 효력을 발휘했던 금융제재를 새롭게 추가하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미국은 북한의 행동 변화를 위해 금융제재와 함께 지난 해 2월 제출된 유엔 인권위원회 북한인권조사보고서 이후 보다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북한 인권침해의 제재,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해 2010년 이래 심도 있게 파악하고 있는 북한 사이버공간의 제재를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동맹국들과 중국을 비롯한 유관당사국과의 협력아래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양자와 3자 협력으로 군사 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게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당장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고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면서 북미회담과 6자회담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대북 전략에 대해서 ‘국제공조를 통한 제재 압력분위기를 고취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이며 관여와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는 ‘대화타령’은 사실상 상대방을 먼저 무장 해제시키려는 것이고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북한 붕괴론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미국의 금융, 인권, 사이버, 군사 등의 다양한 억제 수단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최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3월부터 시작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면 4차 핵실험을 중지할 용의가 있으며 미국과 언제라도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주변 관계구도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금년 상반기 ‘운세’를 결정할 가장 커다란 변수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신년 미 대북 정책의 파도를 타고 넘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이 국제역량 강화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복합 제재력이 과거에 비해서 훨씬 효율적으로 작동할 가능성 때문이며 동시에 북한의 병진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국제 역량을 쉽사리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제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시작하려는 현재의 노력에 실패한다면 북한의 ‘사회주의전 수호’는 험난한 국제 파고에 직면할 것이다.

 

중반기 운세 : 남북관계 개선의 어려움

 

김정은의 토정비결 운세는 금년 상반기의 국제역량 강화의 어려움과 함께 중반기에는 통일역량 강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금년 신년사는 작년의 조국통일 3대원칙, 안전과 평화수호 투쟁, 관계개선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년사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해 우선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다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에 따라 체제보장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서 신년사는 한미군사훈련중지, 삐라살포 금지, 5•24조치 해제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은 무조건이 아니라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기반으로 북한형 통일역량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박근혜 정부의 다양한 남북한 관계 개선 구상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관계 개선의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가 남북한 간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관계개선이 부분적으로 진행되더라도 기대와는 달리 사상누각의 위험성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하반기 운세 : 국내역량 강화의 한계

 

김정은의 금년 하반기 운세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국내역량 강화에 얼마나 성과를 거두냐는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단기적으로 정치체제의 불안한 안정을 유지하고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북한은 신년사에서 “모두 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아래 정치와 군사, 과학기술과 경제, 교육•체육•문화예술과 보건, 사상의 진지에서 사회주의 문명대국을 건설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3년 차에 접어든 병진노선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한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적 경제제재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세계적 규모의 경제 지원과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기존과 같은 전략으로는 본격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으며 21세기 문명대국의 길은 험난하기만 할 뿐이다.

 

한국의 2015년 통일정책

 

김정은의 을미년 운세가 3중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점쳐지는 속에서 한반도의 운세가 대길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2015년 통일정책이 3중적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국제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강한 복합 억제를 추진하는 국면에서는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함께 가야 하며 본격적인 외교 협상으로 변환하는 국면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가 제재국면에서 협상국면으로 변환을 겪으려면 북미 사이에서 벌이는 중국의 중재적 역할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역량의 강화를 위해 러시아와 일본과 같은 유관국들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엮어 나가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북한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교류 협력 프로그램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교류협력의 기본 원칙에 대한 초보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억제 국면에서 벗어나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한반도 비핵 평화번영체제에 대한 본격적 구상과 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1세기 한반도 선진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역량의 강화, 남북관계의 개선과 함께 국내역량의 강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구시대적인 보수와 진보의 재통일(reunfication) 논의를 넘어서는 신통일(new unification)의 담론과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남과 북이 하나인 동시에 둘로 작동할 수 있는 21세기형 복합 통일을 모색해야 한다. ■

 


 

[EAI하영선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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