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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29호] 미중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 대북공진독트린과 한중정상회담의 과제
 

동아시아연구원 

2013-06-25 

한반도를 둘러싸고 4월말까지 지속되었던 치열한 군사적 대결국면이 끝나고 두 달에 걸친 외교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총성 없는 줄다리기이지만 중요성은 군사적 충돌에 못지 않다. 지난 5월 14일 이지마(飯島勳) 일본 내각관방참여의 방북으로 시작된 외교전은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중국방문, 북한의 남북회담 제안, 미중정상회담, 북한의 대미고위급회담 제안,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고, 이번 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일단락될 예정이다. 7월부터 시작될 새로운 외교전을 둘러싸고 한미일 6자회담 대표 회동, 한중 대표 회동, 그리고 6월 21일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기자회견 등의 사전 조율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남북대화를 징검다리로 중국을 통해 미북대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북한의 의도는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로 변화되었다. 북한의 병진전략을 인정하지 않고, 비핵화를 향한 미중의 공동결의를 다지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남북대화보다 당분간 미북회담과 6자회담에 힘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 비핵화라는 큰 틀에 합의했지만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라기보다는 대화를 통한 비핵화 과정에 초점을 둠으로써 대화를 위한 충실한 중재역할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북 신뢰프로세스가 정확한 원칙으로 상황을 주도해가야 하며 당면한 과제는 한중정상회담이다.

 

최근 북한의 신선호 대사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요구했다.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로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지 닷새만이고 남북회담이 무산된 지 열흘만이다. “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비핵화”를 강조했던 중대담화에서 나아가 이번에는 미국이 “침략적 군사도구”인 유엔군사령부를 유지하고 대조선적대시정책 및 핵위협을 계속하는 한 북한은 “핵억제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반도비핵화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담화”는 여전히 미국핵을 포함하는 ‘조선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평화체제를 함께 들고 나와서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치열한 외교전에서 북한의 요구사항의 수위를 높이려는 전술적 첫걸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 행정명령인 국제비상경제권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따라 북한이 계속해서 미국의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unusual and extraordinary threat)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대북제재를 1년 더 연장하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중국측이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희망한다”며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 협력방안이 오는 27일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취임 후 처음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게 될 한중 정상이 어떤 방향으로 한반도 정세를 논의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서는 지난 한 달간의 외교전에 대한 조심스러운 복기가 필요하다.

 

미중 정상회담과 “신형대국관계”

 

미중관계는 동북아 정세의 향방을 결정짓는 구조적 요인이다. 따라서 지난 7-8일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과 시진핑(习近平) 주석이 나눈 8시간의 대화 내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회담 성과를 두고 양국 모두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40년 미중관계사에서 가장 특별한(unique) 만남이었고, 전례 없이 긴밀한 소통을 하였다고 평가한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전체 회담은 두 차례의 공식 회의와 한 차례의 실무만찬, 그리고 통역만을 배석한 두 정상의 산책 대화로 진행되었다. 이 중 산책을 하며 두 정상이 나눈 대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차례의 회의 내용은 도닐런(Tom Donilon) 미국 국가안전보좌관의 브리핑과 양제츠(杨洁篪) 중국 국무위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었다.

 

첫 번째 공식 회의는 양국 정상이 각자 대전략의 핵심내용을 설명하고 향후 미중관계의 비전을 공유하는 긴 논의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내용이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양국이 2012년 초부터 강조해 온 새로운 관계를 두 정상이 다시 확인함으로써 상호이해를 높이고 전략적 신뢰를 강화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꿈”(中国梦, Chinese dream)과 “신형대국관계”(新型大国关系, new pattern of relationship between the great powers)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중국의 꿈은 국가의 부강, 민족의 부흥, 인민의 행복으로 요약되었는데, 시진핑 주석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중국이 평화발전 및 개혁개방 기조를 지속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였다. 아울러, 중국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평화롭고 안정된 국제 및 지역 환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중국은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작년 2월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처음 언급했던 “신형대국관계”의 비전은 미중이 과거 강대국 사이에 만연했던 분쟁을 피하고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재차 설명되었다. 이를 위해 양국은 충돌•대립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고, 협력 공영(共赢, win-win)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을 강조했다. 핵심은 첫째, 동맹국들과의 협력강화, 둘째, 부상하는 신흥강대국, 특히 중국과의 파트너십 구축 및 발전, 셋째,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와 같은 지역제도 강화, 넷째,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 아키텍쳐 구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균형 전략이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이 아니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의 문 또한 중국에게 열려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미중관계가 앞으로 “전략적 맞수”(strategic rival)가 아닌 “건강한 경쟁”(healthy competition)으로 나갈 것을 제안하며 시진핑 주석의 신형대국관계 비전에 이견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회담 둘째 날 오전 진행된 두 번째 공식회의에서는 경제, 기후변화, 인권 등을 비롯한 양국의 다양한 현안들이 논의되었다. 대부분이 기존의 논의 내용들을 확인하는 수준이었으나,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사이버안보 문제가 새롭게 제기 되었던 것과 수소화불화탄소(hydrofluorocarbon: HFC) 생산과 소비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미중 공동성명이 채택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점은 양국이 신형대국관계 구축이라는 큰 그림에 대해 합의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에 입각한 미중협력 강화라는 흐름이 당분간 유지될 것임을 의미한다.

 

미중 정상회담과 북한문제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북한문제가 정상회담 첫 날의 실무만찬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미국 측은 브리핑을 통해 만찬 회담에서 북한문제가 미중협력 증진을 위한 핵심적인 사안들 중 하나라는데 두 정상이 합의하였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비핵화가 대북정책의 목표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설명하였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의 공동노력이 신형대국관계에서 선두 이슈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은 주목할만하다.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엔안보리 결의안의 이행을 포함한 모든 대북제재 조치들을 양국이 긴밀한 협력 하에 추진해 나갈 것을 “완전하게 합의”(full agreement)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확산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이 병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북한 측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양국 정상이 입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의 병진전략을 수용불가한 것으로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중국 측의 회담 결과 보도는 이러한 미국 측의 요약과 확연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먼저 시진핑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그리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3가지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음을 재확인 했다. 아울러 미중이 북핵문제에서 원칙과 전반적인 목표(总体目标, overall objective)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중국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미국측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대북 다자 제재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고, 북한의 병진전략 수용불가에 대한 명시적 코멘트가 없으며, 비핵화를 목표로 하더라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가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강조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대북정책에 관해 중국은 3원칙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다만 원칙들의 비중에 대해 미묘한 평가 변화를 보여 주었다.

 

종합해보면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를 정책목표로 설명하고,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하며, 북한과 “진정성 있고”(authentic) “신뢰할 수 있는”(credible)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북한이 실행에 옮길 때에만 6자회담을 포함한 대북대화 채널을 가동할 수 있다고 역설한 것과 비교할 때, 중국은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동북아 정세를 움직여 나갈 것이기에 위협평가(threat analysis) 차원에서 미중 양국이 같은 입장에 서 있다는 미국 측의 설명은 실제 중국의 입장과 상당한 거리감을 보인다.

 

미중이 대북정책 차원에서 합의한 것은 비핵화에 대한 기본 원칙과 최종목표다. 구체적인 로드맵 차원에서 미중은 여전히 뚜렷한 입장차를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추구하는 핵선군과 경제발전의 병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압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위해서는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장기적인 과제라고 보고, 북한이 주변국들과 대화에 나서려는 성의를 보일 때 최대한 빨리 대화채널을 회복시켜 일단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룡해 방중과 북한의 병진노선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하루 속히 대화채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지난 5월 말 최룡해 총정치국장 방중 당시 북중 간의 대화에서 본격적으로 비롯되었다.

 

중국측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5월 24일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앞서 언급한 중국의 한반도 문제 해결 3원칙을 설명했고, 이에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첫째, 북한은 경제발전, 민생개선, 평화로운 외부 환경 조성을 희망하고(朝方真诚希望发展经济, 改善民生, 需要营造和平的外部环境), 둘째, 관련국과의 공동 노력 하에 6자 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 및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킬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朝方愿与有关各方共同努力, 通过六方会谈等多种形式的对话协商妥善解决相关问题, 维护半岛和平稳定). 하루 앞서 진행된 류윈산(刘云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의 만남에서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중국의 노력, 특히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推动半岛问题重回对话协商轨道所做的巨大努力), 북한이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련 당사국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愿接受中方建议, 同有关各方开展对话)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만남에 대한 북한 측의 요약은 중국 측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조중친선을 대를 이어 공고발전”시켜나갈 것에 대해 합의하고, “조선반도정세와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라고만 밝히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요약은 양국의 입장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핵무력 건설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에 집중하고,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북한은 경제발전, 민생개선, 그리고 대화재개만을 언급하여 중국의 한반도 정책 3원칙 가운데 2, 3원칙만 수용할 수 있고, 1원칙인 한반도 비핵화는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한 유관당사국 모두가 강하게 요구하는 비핵화를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다. 그러나 병진노선의 또 하나의 목표인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국제사회로부터 필요한 경제 지원을 제대로 받기 위하여 전제조건인 비핵화 요구에 일정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병진노선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안보적 고려에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를 해도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핵능력 강화만을 추구할 수 없다. 반대로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이 경제적 이유에서 대화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만 하지만, 정치•안보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 및 7.4 남북공동성명 기념도 중요한 사안으로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병진노선 하에서 북한은 경제와 함께 정치•군사를 강조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유엔북한대사 발언에서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이 강조되며,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핵무력 건설이라는 북한의 논리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진정성” 있는 행동을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 따라서 북미, 남북 대화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3원칙을 강하게 추진하더라도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핵을 포함하지 않은 안보경제 병진노선을 새롭게 채택하지 않는 한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6자회담이 진행되기 어렵다.

 

한국의 대북 공진 독트린 4원칙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의 대북 독트린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은 각국의 대전략 및 북한문제와 같은 특정사안에 대해 일관된 원칙을 제시하고 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중국의 꿈을 이야기 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3원칙을 이야기하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꿈을 제시하고, 대북문제 해결의 원칙과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신뢰프로세스는 구체적인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낮은 단계에서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이에 북한이 화답하면 좀 더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을 시도하는 단계적 신뢰구축으로 북한문제를 해결한다는 과정의 설계도만으로는 현재 한반도가 겪고 있는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북 독트린 제1원칙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한 북한 비핵화일 수 밖에 없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상당 수준의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본격적 대북 관여가 가능하다는 비핵화 요구였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진정성 있는 구체적인 행동, 즉 우라늄 핵프로그램의 동결과 미사일과 핵실험에 대한 모라토리움과 같은 2.29 합의 수준의 조치를 취할 때 비로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다소 완화된 입장이다. 한편 중국은 보다 완화한 형태의 요구로 북한이 대화에 대한 의지와 성의를 보이면 즉각 구체적인 비핵화조치를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북한 비핵화 조치의 요구수준을 정하고 미국 및 중국과 협력을 구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되 중국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비핵화 조치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2.29 합의의 본질이 현상동결이었다면 이를 넘어 비핵화를 향한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는 북한의 노력이 담겨있어야 한다.

 

제2원칙은 북한이 21세기의 새로운 생존번영전략으로 현재의 핵무력 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넘어선 병진론2.0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핵문제에 관한 국제사회 비확산 레짐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할 때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병진론이 반드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만 북한에게 전달하는 것은 한반도 대결 국면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 뿐 탈병진1.0 유도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미 병진론은 북한에서 ‘노선’으로 천명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논의를 포함한 청사진을 제시하여 핵 없이도 안보가 담보될 수 있다는 대안을 북한의 정치권력이 스스로 조심스럽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세련된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경제발전, 민생개선, 평화적 환경조성이라는 북한의 노력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한 비핵안보-경제번영노선의 설계도를 한국의 주도하에 유관당사국들이 함께 그려야 한다.

 

제3원칙은 동북아평화번영구상의 구체적인 그림으로 북한의 비핵안보-경제번영체제에 상응하는 국제공진화를 제시한다. 현재의 구상은 기능주의적으로 협력이 용이한 영역부터 시작하여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한다는 것이나 이미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설계도라는 지적을 받아 왔으므로 보다 충실한 보완이 필요하다. 비군사적인 협력이 군사적인 협력으로 확대(spill-over)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재 동북아 지역의 엄중한 안보현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동북아평화번영 구상은 반드시 경제영역과 안보영역이 맞물려 들어가는 형태로 짜여야 한다. 이러한 안목에서 북한에게 제시하는 병진론2.0구상의 동북아 버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4원칙은 단계별 한반도 신뢰구축방안이다. 특정시기와 영역에 제한된 방식의 신뢰구축 방안의 마련만으로는 앞에서 제시한 3원칙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남북관계를 추진하기 어렵다. 한반도 신뢰구축 방안은 여러 단계에 걸쳐 여러 사안들이 포함된 패키지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반드시 모든 사안들을 한 패키지에 포함시키는 “그랜드 바게닝”(grand bargaining) 형태가 될 필요는 없지만 낮은 수준의 신뢰구축이라도 군사, 경제, 정치, 인적교류 등이 포함된 패키지 형태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한중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4대 원칙과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합의된 그림을 그렸으므로 그 연장선에서 기존의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발전시켜 21세기의 신형한중관계를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동아시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전통적 냉전질서에서 벗어나 새 시대에 걸맞은 동아시아 안보경제 질서 건축을 위해 아시아 태평양의 지혜를 함께 모으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 내 국가들간 핵심이익의 갈등을 다자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길을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모색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담마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특별히 요청하는 것은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중간에 북한문제에 대한 긴밀한 정책공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 시점에서는 우선적으로 한중간의 더욱 튼튼한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중이 데탕트 시대를 열었으나 남북은 화해를 이루는 데 실패했던 1972년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박근혜 정부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세계, 지역, 한반도 전략을 구축하고 일관된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위원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위원

김양규, 동아시아연구원 연구원

이동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전재성,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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