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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24호] 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한국의 전략 : 공진(coevolution)전략의 본격적 모색
 

동아시아연구원 

2012-01-02 

20년 후, 북한 2032

 

김정일 체제가 종식되고 김정은이 주도하는 “강성대국” 원년 2012년이 밝았다. 지난 17년 김정일 치하의 북한은 핵선군 수령체제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정권의 생존과 체제의 안보를 모색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경제적 고난, 중국에 대한 과대한 의존 등 많은 문제를 남겼다. 잃어버린 17년이었다. 김정일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북한의 단기적 미래 상황이 관심사인 것은 당연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적어도 향후 20년 후의 북한을 내다보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2012년 새롭게 출범하는 김정은 체제는 국내정치적 안정이 다급한 상황에서 일단 김정일 체제와 강한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핵보유를 지속하며 정권안보를 추구하고, 핵 협상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끌어내고, 강성대국 구호아래 경제회복을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머지않아 피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핵을 통한 안보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난관을 가져올 것이며, 정당성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에 경제적 난관은 총체적인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국내정치, 외교, 경제가 서로 발목을 잡는 3중의 난제이다.

 

향후 김정은 체제는 21세기 문명의 표준과 국제사회의 변화를 따라가는 새로운 북한으로 거듭나기 위해 세 단계에 걸친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현재의 사안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1단계는 정책전환을 모색하는 단계이다. 유훈통치기간 중에 핵을 포기하고 선군체제에서 선경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적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운 결단이지만 김정은의 리더쉽을 국내외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음 10년 간은 이행과 개혁의 2단계다. 계몽 수령체제의 토대 위에서 평화발전이라는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 단계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핵을 통한 과잉안보추구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핵 없는 안보체제의 길을 걷도록 이끄는 한편, 북한형 개혁개방의 청사진을 함께 짜도록 해야 한다. 3단계는 국제사회의 표준에 맞는 북한의 선진화로 변환하는 단계다. 적정 수준의 안보와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 본격적인 민주주의와 원만한 외교를 토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합, 동북아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 모범적인 북한의 출현을 모색해야 한다.

 

새해 북한의 단기적 변화에 집착하거나, 북한 혹은 한국과 국제사회 한 측만의 결단을 요구하는 일방적 진화의 길을 넘어 북한 문제의 총체적 측면을 인식하고 북한과 한반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큰 그림을 공유하는 공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진화하지 않는 김정은 체제

 

2012년 북한은 준비된 정권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년공동사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에서 예상대로 유훈통치의 김정은 체제는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국제문제를 아버지의 선군사상에 기반해서 풀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은(28)은 김정일의 사망이후 진행되어 온 장례 정치에서 이미 장성택(65) 행정부장, 김경희(65) 정치국 위원, 최룡해(62)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김기남(85) 비서, 최태복(81) 비서등을 중심으로 당을 이끌고, 리영호(69) 총참모장, 김정각(70) 총정치국 제1부국장, 김영춘(76) 인민부력부장, 우동측(69)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등을 중심으로 군을 장악하는 쌍두마차의 지휘관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12월 29일 중앙추도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시며 조선로동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동지”로 명명되었다. 12월 30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는 ‘김정일의 10월 8일 유훈에 따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영남은 추도사에서 “김정은 동지를 또 한분의 장군, 최고령도자로 높이 우러러받들며 선군혁명위업,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것”이라고 하여 후계체제와 그 중심 사업내용을 공식화하였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정치적 행보는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정은의 권력기반도 예상보다 공고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향후 ‘김정일 유훈통치’를 최대의 정치적 자원으로 삼아 권력기반 공고화에 매진할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은 3년 간 ‘김일성 유훈통치’를 전면에 내걸고 김정일의 권력기반을 강화한 바 있다. 3대세습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김정은 체제는 신년 공동사설에서 공식적으로 내걸은 ‘김정일 유훈통치’의 기조 하에 김정일 선군정책의 전환보다는 지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는 아직 급격한 정책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혼란을 감당할만한 정치세력과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상대적으로 권력기반이 취약하여 대남 강경태도를 가진 군부와 기존 엘리트 집단을 동시에 품고 갈 수밖에 없다. 설사 개혁개방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국내적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권력층 내에서는 후계자로 인정되었다고 해도 일반 주민의 지지가 없이는 안정을 확보할 수 없다. 올해 공동사설에서 “인민을 위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모든 사업을 인민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군부 장악과 대내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남, 대외관계에서 완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사후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된 데에는 당시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과 김정일 체제의 경직화된 대남정책의 악순환이 큰 몫을 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작년 12월 25일 담화문에서 조문허용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향후 대남정책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천명했고, 신년공동사설에서도 한국의 제한된 조의표시에 대해 강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남북 간의 물리적 충돌이나 군사적 긴장고조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정권 안정에 절대적 후원세력인 중국이 북한의 도발정책에 대해 이미 2010년 말부터 강력하게 견제해왔다. 국내적으로도 북한은 국가적 애도기간을 거쳐 2012년 2월 16일 김정일 탄생 70주기와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백주기라는 경축행사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안정적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기적 안정을 이룬 북한이 선택할 다음의 행보이다. 김정일 시대에 김일성의 유산과 유훈은 17년 동안 제한된 자산으로 작용했지만 김정은 시대에 김정일의 유훈은 자신을 지켜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가 되기 어렵다. 김정은 체제가 북한의 처지를 직시하고 장기생존을 위해 김정은식 정책노선 모색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로서는 공식적 유훈통치(3년상)가 만료되는 2015년(당창건 70주년)까지가 중요할 것이다. 북한은 과연 진화할 것인가.

 

다가오는 북한의 고난과 전략적 결단의 기로

 

김정은 체제가 유훈통치를 기반으로 김정일 체제를 지속하는 한 3중의 난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내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과제, 핵 문제 해결을 통한 외교문제 해결, 경제난 해결의 과제들은 상호 모순적으로 얽혀 있다. 김정일 체제 17년이 증명한 것은 핵을 보유한 채 경제난을 해결하고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김정일 체제는 핵을 가져야만 수령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핵보유로 인해 경제난이 가속되었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핵을 포기하면 수령체제 유지가 어려워진다. 적정수준의 안보를 넘어 핵 과잉안보를 추구한 결과 이상적인 자산배분에 실패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핵을 포기하고 경제난 해결을 위해 개혁개방을 도모하면 독재적 수령체제 또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2012년 김정은 체제는 선군정치 계승을 통해 정치정당성을 추구하겠지만 이는 단기적 성과에 그칠 것이다. 우선 북핵 문제를 위시한 국제적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핵포기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견뎌왔다. 핵이 주는 안전감과 핵포기 가능성이 주는 경제지원 양자의 유혹 모두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권은 더욱 취약하고 경제적 실패의 결과는 더욱 처참할 것이다. 핵협상을 지속해야 하는 북한의 사정과 북한의 안정을 도모하는 중국의 요구 등 다양한 이유로 북한은 북핵 협상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당장은 안정적 권력이양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공약 준수 요구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본격적 경제위기가 초래할 정권과 체제에 대한 위협이 대두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가 전격적인 외부의 지원 없이 강성대국은커녕 김정은의 정당성을 유지할 경제적 자원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배급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현재 북한의 시장은 정권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보유와 선군의 유훈은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주민의 불만과 이에 편승하는 반대세력의 등장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더 나아가 외부의 경제적 지원은 개혁 개방으로 이어져야만 장기적 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미 김정은 체제의 강력한 지탱목인 중국의 개혁개방 압력은 가중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김정은은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조부의 ‘자주,’ 부친의 ‘핵선군’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업적의 발굴이 필요하며 이는 ‘발전과 성장’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몇 년째 강조하고 있는 경공업 발전과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안보과잉의 선군노선의 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혁 개방은 북한 사회의 개혁 개방을 가져올 것이고 독재의 정치가 이를 얼마만큼 견뎌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에 맞추어 독재의 수령에서 계몽된 수령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궁극적으로 정치의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는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제2의 선군정치의 길을 선택하여 식물국가의 비극을 맞이하던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북한형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공진화 전략 개시의 필요성

 

2012년부터 한국은 북한의 지도자 교체를 신중히 바라보고 단기, 중기, 장기의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장기 전략의 구도 하에 올 한 해의 정책패키지를 가다듬어 다음 정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각 후보들은 국내정치를 넘어선 초당적 대북정책 패러다임의 수립을 위해 치열한 정책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 대 엄격한 관여정책, 진보와 보수의 양분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2010년대를 위해 제3의 정책대안을 개발해야 할 것이며, 남남갈등으로 여론이 분리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당장 북한에 제시해야 할 전략적 메시지 내용의 핵심은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북한의 생존과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새로운 통치(governance)형태와 남북 통합에 핵심이라는 것이며 한국은 북한의 선진화 비전을 위해 함께 진화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메시지의 수신자는 일차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핵심인물들이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및 국제사회와 공진하려는 북한 내 개혁, 개방 세력 전체가 될 것이다. 수령체제와 페쇄적 사회주의의 경험에 갇혀 미래의 길을 내다보지 못하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에게 공존하고 협력할 수 있는 미래 한반도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중기적으로 한국은 북한이 부딪힐 3중 난제를 예상하고 이를 해결하는 정책대안을 만들어 놓는 일이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북핵 문제이다. 북핵 문제가 북한의 생존 전반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북한의 정권 안전감을 보장하는 동시에 핵포기를 위한 조건 마련에 정진해야 한다.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6자회담은 단순히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 증대된 북한문제 전반을 협의하고 관리하는 국제적 틀로서 기능해야 한다.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등 남북관계 개선과는 별도의 트랙에서 6자회담에 대한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접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핵 6자 회담을 넘어 평화체제 전략 역시 필요하다. 현재까지 평화체제는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전략 하에 전술적으로 평화체제 회담에 대응한 결과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평화체제 회담에서 미국의 대한 핵우산 공약의 철회, 주한미군의 철수, 서해상 경계선의 획정 등을 상투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체제 전술이 이룩해야 할 북한의 전략적 목적은 이제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근본적 진화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평화체제는 새로운 차원의 돌파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한국 역시 평화체제 협상을 북한의 비핵화 회피 구실 정도로 보던 방어적 태도에서 탈피하여 김정은 체제의 ‘탈脫선군 선先경제’ 발전모델 선택의 계기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내심과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체제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한과 미중, 일러, 나아가 유엔까지 겹겹이 엮는 복합 안전 그물망 속에서 정권과 체제의 안전을 이룩할 수 있고,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못다 이룬 ‘경제대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도 납득시켜야 한다. 결국 한반도 차원의 평화체제와,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미중의 합의, 그리고 동북아 차원의 평화체제가 함께 작동해야 남북 공존의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중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장기적으로 정상화를 넘어 선진화된 북한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스스로는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길이다. 수령체제에서 민주체제로 변환해야 하고, 국제사회를 앞서가는 국가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그럴 때 평화와 공존의 한반도와 동북아를 건설하는데 남북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강성대국이 아닌 지식, 문화, 환경, 경제에 함께 발을 디딘 21세기형 국가로 변환되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대북전략의 진화를 위하여

 

북한의 미래는 동북아의 국제정치와 결합되어 있다. 다가오는 동아시아의 아키텍처는 한반도 미래의 청사진과 분리될 수 없다. 한국은 아직 우리가 살아갈 동아시아 건축물의 주요 설계자가 될 수는 없지만 한반도라는 한 부분의 주도적 설계자가 되어 전체 지역 설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견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새로운 북한은 한반도의 운명뿐 아니라 지역 구도 속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기회이자 시험대이다.

향후 최소 10여년 간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중관계이다. 부상하는 중국과 상대적 축소의 길에 접어든 미국, 동아시아를 평화발전의 핵심터전으로 만들려는 중국과 패권회복의 장으로 동아시아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미국 간의 경쟁과 갈등의 한 무대가 한반도이고 주요 대상은 새로운 북한이다. 2010년 미중 간의 치열한 갈등은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단락되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미국이 존중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관여정책을 중국이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후부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그리고 미얀마 등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등에 동아시아 다자주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 일본과의 양자 동맹 강화는 물론, 한미일 삼각 협력도 강조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안보, 경제 건축물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며 이를 견제하고 있다. 새롭게 변화할 북한은 미중이 조심스럽게 부딪히는 장이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은 일단 현상유지를 바라지만 어느 한편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북한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중국 견제의 최전진기지로 변화하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중국은 경계의 끈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미중은 김정일 사망 이후부터 현재까지 일단 현상유지를 바라는 관망의 자세를 보이면서도 각자 원하는 북한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있다. 중국은 초기부터 “명확하고 단호한”(clear and decisive, 〈環球時報〉2011/12/20) 김정은 지지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조의 방문하여 김정은 체제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확인했다. 미국 역시 한반도의 안정과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면서도 북한의 안정적 권력이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후 미국의 논평들에서 북한의 안정적 권력이양, 비핵화 공약 준수,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 북한주민의 인권과 삶의 개선 등 순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해 가고 있다.

 

미중이 부딪히는 경쟁의 일직선 상에서 한국의 기회주의적 움직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중이 자신만의 건축설계도를 고집하며 충돌할 때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 모두의 구성원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북한 문제를 계기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강대국 건축 속에서 중견국으로서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의 틈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북한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과 논리, 그리고 북한의 진화와 국제사회의 대북 전략의 진화를 함께 그리는 정책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당장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의 협의, 6자 회담 속에서의 치열한 협상, 그리고 이번 달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김정은 체제 하 북한에 대한 장기 전략의 내용을 질문 받게 될 것이다. 한국이 원하는 북한의 미래는 미국과 중국이 원하는 것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을 추진하며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상화, 선진화된 북한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부 정책,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조정능력, 그리고 각 국가들의 국내정치에 대북 정책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국제공조 등이다. 북한의 2012년 신년공동사설이 북중관계와 북러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정은 체제가 향후 미중의 동아시아 아키텍처 구축 경쟁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조만간 다시 재개되더라도 관련국들 간의 전략적 이해가 적절히 조율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를 강대국 정치에 맡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한중간의 대북정책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앞으로 한걸음씩 내디딜 한국의 행보가 미래 한반도와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모처럼 다가온 기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북한에 대한 한국의 전략과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을 견인하는 전략, 그리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건축에 관한 한국의 노력을 조화시키며 대북 공진정책의 청사진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학교)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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