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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17호]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국 : 비대칭 연미·연중전략과 한반도 비핵평화체제의 모색
 

동아시아연구원 

2011-01-31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30여 년 전의 덩샤오핑鄧小平 방미 이후 가장 많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우선 2009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이후 기대와는 달리 눈에 띄게 어려움을 겪었던 미중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선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다음으로는 상대적 쇠퇴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미국과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이 보다 장기적으로 세계질서를 어떻게 건축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동시에 정상회담이 지역적 도전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예측이 제시되고 있다. 공동성명에 명시된 것처럼 미중 양국이 협력적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함께, 2009년 11월 이후처럼 갈등과 견제의 패턴을 반복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의 재개가 멀지 않았다는 시각과 갈등을 봉합했을 뿐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론이나 비관론보다는 회담 결과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토대로 좁은 의미의 정치적 이해를 넘어서서 복합적 대응 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의 미중관계

 

미중 정상회담 결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중관계가 순항할 것이냐 갈등을 반복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전략적 균형추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집중할 수도 있다.


향후 미중관계의 장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우선은 미중관계가 2010년에 대만 무기판매, 달라이 라마 면담, 위안화 절상, 천안함•연평도 사태, 류샤오보劉曉波 노벨 평화상 수상 등으로 지속적 마찰을 겪었던 탓에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의 관계개선에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6개 부문 41개항으로 구성된 방대한 공동성명이 상징하듯이 미중 양국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 2009년 공동성명은 미중관계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 신뢰”를 강조하는데 머물렀으나 이번 정상회담은 미중관계를 상호존중, 호혜공영의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명확히 정의했다.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부장은 “미중 간 협력적 동반자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여정”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2010년 갈등을 야기했던 핵심적 현안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봉합되거나 이견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정책’을 고수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여전히 40억불 규모의 대만 무기판매를 시행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대만 무기판매는 작년 미중관계에 파열음을 냈던 민감한 현안이다.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2009년 공동성명과 마찬가지로 이번 공동성명에서도 양국은 인권문제에 대한 양국의 차이점을 인정했으며 중국은 내정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중관계가 ‘차이메리카(Chimerica)시대’ 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완전히 협력적 관계로 전환되었다거나 반대로 2010년과 같은 갈등을 단순 반복하기보다 갈등적 요소가 내재한 가운데 협력의 폭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이 어느 일방의 페이스로 끌려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은 ‘구동’求同을 요구하면서 중국이 대국에 걸맞은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담하게 티베트, 인권 문제 등을 거론했으며 “보편적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후 주석의 언급을 이끌어 냈다. 경제적으로는 450억불 규모의 미국 상품 판매라는 실리도 챙겼다. 반면 중국은 인권, 환율, 무역불균형 등 핵심적 이슈들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상호존중”과 “평등”이라는 원칙을 부각시키며 미국의 동등한 상대로서 중국의 국가적 위상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후 주석을 G2(Group of 2)국가의 지도자에 걸맞게 예우했으며 오성홍기를 든 대통령 딸의 이미지, 중국어를 배우려는 미국인들의 모습 등을 부각시켜 중국인들이 자긍심을 느끼도록 배려했다. 미중 어느 일방의 완승이라기보다는 ‘구동’을 요구한 미국과, ‘존이’存異를 강조한 중국 간의 타협이 이루어졌다.


미중 양국이 갈등 봉합에 나서고 타협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양국 국력의 변화 추세가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의 양상에서 보듯이 미국의 쇠퇴가 예상했던 것처럼 가파르지 않고 중국의 부상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인식 하에 일종의 균형이 형성된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양국의 국내정치적 변수가 타협의 계기를 제공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은 공히 2012년 권력 교체에 직면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2월 재선이 지상과제이며 후 주석도 2012년 명예퇴진 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국가적 위상을 제고한 지도자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의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고 2010년의 경쟁과 갈등이 2011년에도 지속되었다면 양측 모두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양측 모두 핵심적 사안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환율, 무역, 인권 등 핵심적 사안에서 처음부터 타협이 불가능했으며 양측은 공히 국내정치를 겨냥한 국제정치적 성과에 주력했다.


미중 양국을 둘러싼 안과 밖의 사정으로 미중관계가 조정된 만큼 일정기간 동안 협력적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적으로 양측의 권력교체 시기인 2012년까지, 중장기적으로도 양측 국력 추세의 변화가 현격해지기 전까지 현재의 추세가 유지될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

 

한반도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핵심 의제였다. 환율과 무역 등 경제 문제에서 뚜렷한 진전을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정상간 대화에서도 미중간 경제문제에 버금가는 시간이 한반도 문제에 투자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양국은 2010년 내내 상호 견제와 대립을 지속해 왔지만 다른 현안보다 상대적으로 합의를 이루기가 용이할 것으로 보고 이번 회담을 한반도 정세의 분기점으로 삼아 보려고 노력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 정상회담의 합의는 양측의 기존 입장을 반영하면서도 변화의 동력을 모색하기 위한 ‘구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미중 정상의 합의를 요약하자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과 최근의 긴장 해소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다음으로 필요한 걸음으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며, 특히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ranium Enrichment Program: UEP)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는 그 동안 한미가 일관되게 요구해 온 것이고, 6자회담의 재개는 중국이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이 절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한반도 문제의 결정적 전기가 되기 위해서는 미중과 남북의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 조치라는데 중국이 동의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압력이 작용할 전망이다. 남북 간, 미중 간 대립 속에 실종되다시피 했던 북핵문제와 6자회담도 한반도 문제의 중심 이슈로 복귀했다. 공동성명에서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명시되지 않은 반면 9.19 공동성명과 6자회담은 각각 3회와 2회씩 거론되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UEP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 변화의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이 6자회담의 재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기로 작용할 것이며 한미 양국이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해석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공동성명에 UEP 문제가 포함된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인 것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부담되는 내용은 아니다. 북한 스스로가 UEP를 공개한 마당에 중국이 이를 인정하는데 굳이 주저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UEP 문제는 미국의 6자회담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 합의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주목된다. 백악관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UEP에 대한 우려가 표명되었기 때문에 이후 한국이 남북대화에 착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천안함•연평도 문제의 해결이 6자회담의 전제조건은 아니라는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미중 양국이 최근 한반도 정세를 상당히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있는 공동성명 18항은 첫 문장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결정적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등한 세력구조에 진입하기 전, 적어도 향후 10년 간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이 한반도 정책으로 요약한 ‘평화•안정•비핵’이라는 언술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최우선이며 남북관계의 증진과 한반도 비핵화는 이를 위한 1, 2단계의 조치로 보는 것이다. 6자회담이 강조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지난 10년간 6자회담이 북한의 비핵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에는 유용한 틀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미동맹 강화와 억지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남북관계 증진에 대한 요구는 동맹국 한국에 대한 배려이다. 한반도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북한의 핵확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핵확산에 용이한 UEP 문제를 북한과 중국이 6자회담 의제로 받아들인다면 이를 회피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서울 개최예정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핵문제와 비확산 문제에서 가시적 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하고, 천안함과 연평도를 포함한 모든 군사현안을 다루겠다고 나선 것은 북한의 속셈을 보여준다. 6자회담과 미북회담으로 가자는 것이다. 북한 후계체제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후원과 미국의 정치적 승인을 얻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의 폭력외교로부터 평화외교로 빠르게 전환할 것으로 이미 충분히 예견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목적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폭력외교로 전환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강하게 연계한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천안함•연평도 문제이건 비핵화이건 적어도 남북대화에서 모든 현안을 다룰 수 있는 여건은 형성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 한반도 정세에서 일정한 변화의 모멘텀이 확보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동력이 실제 남북관계의 진전과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북한이 앞으로 개최될 남북대화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우리 정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그리고 북한이 6자회담의 재개에 요구되는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인가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좌우될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국제경제질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주로 ‘구동,’ 그리고 중국은 ‘존이’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정치분야와 경제분야는 약간 상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정치분야에서 ‘존이’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이 두드러졌다면 경제분야에서는 미국의 ‘구동’이 두드러졌다. 경제분야에서 중국은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라는 ‘존이’ 논리를 내세웠지만 공세적이기 보다 방어적 성격이 강했다. 중국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념과 이익의 균형이라는 ‘구동’의 논리를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다만 향후 10여 년간 발전해가면서 ‘구동’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환율과 무역불균형 문제에서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위안화 절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국내 수요를 진작하고 자원 배분에 있어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며 위안화 환율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등 중국식 경제발전 전략의 변환을 촉진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기관이 합법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정부조달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미국은 재정적자를 감축하고 과도한 환율변동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양자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 협상을 계속하고 중국의 시장경제지위(Market Economy Status: MES) 부여를 위한 협의절차를 가속화하며 수출통제 시스템을 개혁하기로 했다. 또한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 SDR) 바스켓 통화에 위안화를 포함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기로 했다.


위안화 절상이나 무역불균형에만 초점을 맞추면 경제분야에서의 합의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이 자원배분, 환율정책 등에서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여 자신의 경제발전 전략을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에 더욱 부합하도록 변환한다는 약속을 했다는 점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발전에 주력하면서도 자유주의 시장경제와의 ‘구동’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은 시간을 번 것이며 미국은 견제 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이번 회담 결과로 미중을 중심으로 한 국제경제의 현저한 변화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급격한 환율 변동이나 무역불균형 시정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식 발전의 길에 미국적 요소가 투입되는 완만한 변화가 예상된다. G20(Group of 20)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중국도 이에 적응하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자유주의 시장경제 이념이나 경제발전 모델 자체에 직접적 도전을 제기하지는 않는 것이다.


한국의 대응 전략

 

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명시되었듯이 오늘날 미중관계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다. 미중관계는 경쟁적, 갈등적 요소를 내포하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협력의 동기 또한 확대되는 복잡한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2010년이 경쟁적, 갈등적 요소가 전면화된 시기였다면 회담 이후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미중 간 힘의 배분과 주도권이 어느 일방으로 급격히 쏠리기보다는 비대칭적 균형이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미중관계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해 보인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중국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비대칭적 연미•연중聯美聯中’의 전략이다. 근거 없는 양자택일적 사고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적 현실이지만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 또한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비대칭적 연미•연중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지를 넓히는 길이다.
국제경제 분야에서도 연미•연중이 불가피하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무역흑자국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되 지나친 대중의존도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결해가야 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의 비준을 통해 우리 경제의 미국 비중을 높이는 한편 글로벌 경제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전환되고 있는 G20 외교를 강화하여 향후 미중 간 경제조정에서 우리의 상대적 입지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


미중관계의 조정국면은 한반도 정세에 미묘한 변화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주변 평화를 원하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미묘하게 만나고 있다. 이는 당장 남북관계 증진과 6자회담 재개의 압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미중 양국에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정책 최우선 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6자회담과 미북회담의 촉진제로 활용하고자 하는 만큼 당분간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북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대화에도 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약속하거나 남북대화에서 핵폐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평화 공세가 먹히지 않는다고 간주할 경우 전쟁 공세를 재개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한반도 정세의 변화 조짐 속에서 우리의 대응 전략은 전쟁과 평화, 남북관계와 대미중 관계, 단기와 중장기를 동시에 고려하는 복합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첫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북한이 평화 공세와 전쟁 공세의 패턴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확고한 억지력을 갖추는 일이다. 북한 스스로 폭력 외교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보다 진지하고 예측 가능하게 대화에 임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대북 억지 노력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잘못된 신호를 중국에게 주지 않도록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둘째,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등 한반도 문제를 단순히 대북전략 차원이 아니라 세계전략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특히 대중전략과 연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대북전략 목표가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이라고 할 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넘어 미중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이 북한 후계체제를 승인하면서 이를 비핵화 및 개혁개방과 연계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북관계를 통해 결정적 전기가 마련되기 전에는 6자회담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고립주의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대화와 동시에 6자회담, 미북대화, 북중관계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4면 게임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남북대화의 장단기 목표와 비전을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하고 우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향후 한반도 정세는 일차적으로 남북대화의 전개 양상에 의존하게 되었다. 문제는 북한이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평화협정 논의의 기회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6자회담의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물론 천안함이나 연평도 문제를 적당히 덮어두고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의 방해자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천안함•연평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6자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근본주의적 접근보다는 동 문제를 남북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궁하되 6자회담과 병행하는 전략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남북관계 차원에서 북핵문제의 일정한 진전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문제의 해결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에서 찾는 한 쉽사리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김정일의 핵선군정치를 유훈으로 계승하지 않고 21세기 신 비핵생존전략을 신중하게 모색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남북 비핵화 회담을 요구한 것은 적절하다. 향후 남북대화에서 비핵한반도 평화체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려면 우선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모라토리움 조치를 취한 다음에 남북한의 21세기 비핵안보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설정하고 이를 계기로 김정은 후계체제의 공고화를 추구할 것이다. 문제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김정일의 핵선군노선을 답습한다면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자체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핵선군노선을 계승한다면 당장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종국에는 실패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북한의 실패국가화나 급격한 붕괴는 한국이나 중국 등 누구에게도 전략적 이득이 아니며 동아시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김정은 후계체제가 비핵화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도록 북한 선진화 전략을 추진할 시점이다. 북한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 함께 외부에서 도와주는 공진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선군체제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비핵평화체제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구상해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과의 긴밀한 공조아래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치욱, 세종연구소
이동률, 동덕여자대학교
이상현, 세종연구소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한석희, 연세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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