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EAI 논평 제10호] 천안함 안보리 외교 이후: 「포스트 천안함」을 넘어「포스트 김정일」전략으로
 

동아시아연구원 

2010-07-15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예상대로 어느 정도 이중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봉합 형태의 성명이 탄생했다. 이에 따라 한미와 북중 사이에, 그리고 국내 정치세력들 사이에서는 성명의 해석을 둘러싼 제2 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 외교의 성공과 실패 논란은 정치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국익 차원에서는 지극히 소모적이다. 현시점에서 의장 성명의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천안함 외교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정확히 읽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천안함 외교는 시종일관 다면적 복합 게임으로 전개되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중 간의 강대국 게임, 동북아 차원에서는 남북중 간의 삼각 게임, 그리고 국내정치적 게임이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동아시아와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의 외교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고, 중국과 타협을 통해 현안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입장도 뚜렷해졌다. 한중 간의 전략적 관계가 여전히 취약하며, 북한의 장래에 대한 양국 간의 깊은 토론과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현안들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국내정치와 얽힌 외교현안을 슬기롭게 다루어야 하는 정부 전략의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상태다.

 

먼저 연초 4대 현안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미중 간 힘겨루기는 천안함 외교에서도 또 다시 표출되었다. 그 결과는 어느 일방의 완승이 아니라 절충이었다. 7월 중 실시될 서해상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대립도 결국은 훈련 장소와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것이다.

미중 양국은 겨우 절충안을 마련한 천안함 이슈에 더 이상 시간을 쓸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무대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의장성명 채택으로 천안함 사태를 일단 매듭짓고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도 “핵 없는 세계”라는 오바마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이슈에 동력을 부여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미 천안함 사건을 통해 한미•한일동맹의 공고화, 대중국 견제라는 상대적 효과를 얻었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정도 진정성만 보인다면 6자회담 재개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중국은 6자회담 재개의 조건과 방식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선先 천안함 후後 6자회담」이라는 원칙을 견지했다. 이는 우리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고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작용했다. 북한은 자가당착적 천안함의 덫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김정일 방중을 통해 북중관계에 최대한 공을 들였으며 7.9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오자마자 6자회담 재개를 거론했다.

 

그러나,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에도 천안함 이슈를 여타 모든 안보이슈에 연계시키는 근본주의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글로벌 게임이 이미 6자회담으로 이동하는 마당에 우리만 천안함 외교에 몰입하는 것은 국제정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의 납치 외교는 좋은 반면교사이다. 적어도 정부는 천안함 사태 해결과 6자회담 프로세스를 병행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천안함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무조건적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조치 재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이어 천안함 침몰까지 야기한 상황에서 선先 대북제재 해제를 수용할 는 없다.

 

남북관계 차원의 대응은 좀 더 어렵다. 남북관계도 궁극적으로는 정상화 되어야 하지만 천안함 사건을 그대로 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갈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5.24 담화에서 제시한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조치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단기간 내에 이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보자면 천안함 사태의 해결은 6.25 남침, KAL기 폭발, 랑군 테러처럼 남북관계 역사에서 겪은 과거 주요 사건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사건의 완전하고 근본적 해결은 북한 선군체제의 변환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잘못된 선군정책을 바로잡고 남북관계의 틀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포스트 천안함」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포스트 9.11」관점에서 안보전략을 수립한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의 해결만큼이나 절박한 것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 형성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며, 그에 따라 북한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소위 강성대국 원년이자 김일성 탄생 1백 주년인 2012년경 김정일 후계구도의 공식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금년 9월로 예고된 당대표자대회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김정일 이후에도 선군先軍 유훈 통치를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개혁과 개방의 선경先經으로 나올 것이냐에 따라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향후 우리의 대북전략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인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하드 파워의 구사방식 문제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안사태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하는 한편, 북한의 진정성 있는 반응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지속하되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조치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확성기 가동이 대표적이다.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고조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내정치적 지지를 약화시킬 뿐이다.

 

둘째, 소프트 파워의 활용이다. 특히 북한의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비핵화와 선경先經의 길을 국내적으로 설득력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선경 정책을 위한 새로운 남북관계 체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모든 남북합의가 사실상 무효화된 현재 상황에서 남북관계 전반을 운영하기 위한 보다 성숙한 장전이 필요한 때다. 특히 포스트 김 비핵 선경체제가 한국 대북정책의 복합적 체제보장과 번영지원 노력과 함께 공동진화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파워의 활용이다. 당장 남북 당국간 채널은 가동하기 어렵더라도 민간 부문의 네트워크는 열어두는 한편, 북중, 북러관계 등 북한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 시점에서 향후 국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한국의 대북전략 패러다임이 새롭게 제시되고,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전략적 지지가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사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전재성 (서울대학교)

한석희 (연세대학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http://eai.or.kr/type_k/panelView.asp?bytag=p&catcode=&code=kor_report&idx=9347&page=1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