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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세가지 걱정
 

중앙일보 

2006-01-02 

새해를 덕담이 아닌 걱정으로 시작한다. 병술년은 국내정치의 해다. 경제적 고난의 행군이 채 끝나지도 않았고 대통령선거가 아직 두 해나 남았는데 2006년 무대의 중심은 국내정치다. 5월 지방선거는 정국의 분수령이다. 여당이 대패하는 경우에는 대선정국의 조기화는 불가피하다. 여권의 대통령 지망생들은 어쩔 수 없이 현 정부와의 차별화에 전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야권도 덩달아 바빠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가능한 한 레임덕 시기를 늦추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패를 모두 쓸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남북.국제정치 문제의 국내정치화다. 양대 과제는 국내문제와 달리 칼자루를 상대방이 쥐고 있는 형국이어서 섣부르게 칼날을 잡으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조심스럽게 칼날을 피해 칼을 칼집에 넣게 하려면 단기적 국내정치 유혹에서 벗어나 고도의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첫째 걱정은 북핵문제다. 9.19 베이징 공동성명이 줄기세포 같은 운명을 겪지 않으려면 새해에는 6자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수령 옹위를 위한 물적 담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북한과 궁극적 평화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미국은 현실적으로 핵 포기 로드맵에 합의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구상은 무리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수령 옹위의 확고한 담보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것은 민주 수령이고 더 나아가 개혁.개방 지도체제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설익은 정상회담 시도는 미국과 북한을 한꺼번에 잡으려다 다 놓치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현실적 대안은 개혁.개방 지도체제 평화론에서 찾아야 한다.

 

둘째 걱정은 한.미관계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듯이 한.미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한.미관계는 21세기 세계질서의 구조변화와 한국.미국의 국내질서 변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재조정의 마찰을 겪고 있다.

 

21세기 미국은 상당한 기간 세계질서 운영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12월 11일)에서 대주주의 신년도 업무지침을 민주평화론의 한마디로 요약했다. 21세기 평화는 힘의 국가 간 배분보다 국가의 민주적 성격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자유를 위한 세력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을 동업국가로 삼고 있고, 중국을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북한을 '범죄국가'로 부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의 동아시아 세력균형에서 한국의 위상은 불명확하다. 21세기 한국은 현재 수준의 탈냉전적 안목을 넘어서서 21세기 네트워크 사고로 대미관계를 새롭게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걱정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이다. 2005년 한.일관계는 '우정의 해'가 아닌 '무정의 해'로 끝났다. 한.중관계는 경제와 정치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국가이익의 갈등현상을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했다. 중.일관계도 협력보다 갈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중국.일본은 최근 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나 동아시아 정상회담에서 보듯이 제각기 다른 정치적 목적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럽공동체에서 배워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성급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유럽연합은 지난 반세기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지난 500년의 근대적 실험 결과다. 동아시아 협력 논의도 아시아 백년대계 또는 천년대계의 틀 속에서 구상해야 한다.

 

새해의 세 가지 걱정이 기우로 끝나지 않고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현실화된다면 2007년의 대통령선거는 3대 난제를 풀어야 하는 어려운 선거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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