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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자의 매력
 

중앙일보 

2005-12-12 

어수선하고 바쁜 12월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새로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조선 철화백자 끈 무늬병(사진). 처음 만난 순간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헉하는 숨 막힘을 느꼈다. 병의 모양, 색깔, 무늬는 완벽했다. 끈 무늬병은 50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살아 있었다. 15세기의 백자가 아닌 21세기의 백자로.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빚어 온 도자기 중에 딱 한 점만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골라잡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얼마 전 도쿄에서 청화백자의 한.중.일 비교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청화백자의 원조인 중국의 징더전(景德鎭)그릇들과 정유재란 이후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의 도공들에 의해 전수된 일본의 아리타(有田)자기들 사이에서 조선의 청화백자들은 단연 눈길을 끌고 있었다. 요란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단조롭지도 않은 우아함을 격조 있게 자랑하고 있었다.

 

도자기에 대한 뒤늦은 관심의 출발은 조금은 엉뚱하다. 국제정치 공부를 하느라고 오랫동안 폭력과 금력을 주무기로 하는 외교무대의 주인공들의 연기 분석에 시간을 보냈다. 최근 매력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은 한국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만들어낸 것들 중에 전 세계를 홀릴 만큼 매력적인 것이 있었던가다. 도자기가 그 해답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영어로 자기라는 뜻의 China로 불리는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오랫동안 도자기의 세계적 표준을 이끌어 왔었다. 한국 도자기들은 이런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중국을 뛰어 넘는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끈 무늬병의 비밀을 밝힐 수 있다면 21세기 한국국제정치학의 핵심과제인 매력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끈 무늬병을 빚었던 이름 모를 도공의 가슴, 머리. 그리고 손의 절묘한 결합에서 찾아야 한다. 끈 무늬병을 바라다보면 볼수록 도공의 자기 작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짙게 느끼게 된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재현해 보겠다는 마음 없이 세계 표준의 완성도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모든 사람이 탐내는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자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흙.안료.모양.무늬.가마 등에 대한 당대 최고의 지식을 필수로 한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손 솜씨로 자기를 빚고 무늬를 그리고, 구워낼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의 새로운 힘으로 부상하고 있는 매력을 키우는 길은 15세기 도공의 삼중적 노력을 재현하는 것이다. 지난 한 주 내내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성과 진실성에 대한 시비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세계 과학계는 두 번 놀라고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줄기세포연구의 선두주자 대열에 서 있다는 데 놀라고, 연구의 윤리성과 진실성을 논의하는 방식의 정치성과 후진성에 더 놀라고 있을 것이다. 세계과학사에 매력 있는 사례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사례로 기록될 위험성이 높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논의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매혹시키는 21세기의 도공을 키우는 일이다. 황우석 연구팀의 약점을 찾아 죽이기보다는 약점을 고쳐 21세기의 매력을 빚어낼 수 있는 도공으로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제2, 제3의 도공을 찾아 나서서 키워야 한다. 21세기 매력 한국의 사활은 여기에 달렸다. 그 일선에는 TV공화국의 실질적 주인공인 PD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제대로 된 21세기 'PD수첩'을 제작해야 한다. 지난해 말 KBS가 전 세계를 매혹시킬 만한 다큐멘터리였던 '도자기' 6부작을 방영해 시청자들에게 자신감과 깨달음을 선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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