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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의 21세기적 해결방안
 

2005-01-10 

21세기는 문명사 변환의 세기이다. 역사의 주인공이 근대국민국가에서 안과 밖으로 촘촘하게 엮어진 그물망국가로 바뀌고 있다. 역사의 중심무대도 일국 중심의 부국과 강병에서 다자중심의 안보, 번영, 지식, 문화,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문명표준을 선도하는 세력들은 21세기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과거의 문명표준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력들은 21세기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는 역사의 결정적 갈림길에서  북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핵문제는 본래 주인공들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근대국제질서에서 일국 중심 생존경쟁이 만들어 낸 자기부정의 비극이다. 가장 확실한 삶의 담보로서 개발한 핵무기가 죽음의 담보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핵무기의 역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핵초강대국들은 탈냉전과정과 함께 핵군축의 새로운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뒤늦게 핵문제에 직면하여 지난 1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핵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 새로운 문명표준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지 못하면, 21세기 한반도 역사의 미래는 어둡다.


북한의 핵정책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면, 북한, 미국, 그리고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삼중의 어려움을 동시에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북한은 북핵문제 대신에 “조선반도핵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조선반도에서 핵문제가 발생하고 정세가 오늘과 같이 극도로 악화되게 된 기본원인은 미국의 뿌리 깊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인 군사적 위협책동에 있다."(북한 외무성대변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은 미국의 군사적 위험 제거하기 위한 것”, 2003/2/18)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문제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의 제거이다. 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조미사이의 불가침조약 체결이 핵문제 해결의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도”, 2002/10/25)라고 밝히고 있다.


2003년에 들어서서,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를 이룬 중국의 적극적 중재로, 오랫동안 당사국 쌍무회담을 주장해 왔던 북한은 미국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다자회담의 형식을 받아 들였다. 북한은 “미국이 대조선 정책을 전환할 용의가 있다면 대화형식에 구애되지 않는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이 대조선 정책을 전환할 용의가 있다면 대화형식에 구애되지 않는다.”, 2003/4/12)라고 밝힌 후, 베이징3자회담(2003/4/23-4/25)에 참석하였다. 북측은 회담에서 기왕에 강조해 온 협상과 억제의 방법이라는 기본 틀을 그대로 활용했다. 이 근 부국장은 회담 첫날 본회의에서 “조선 반핵문제의 당사자들인 조미쌍방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 (북한 외무성대변인 “베이징회담에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 제시”, 2003/4/25)라고 강조하면서, 기존의 “선 불가침조약 타결, 후 핵논의”제안을 시간차 일괄타결안으로 재구성하여 내 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제안의 “새롭고 대범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근 부국장은 저녁 만찬장에서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에게, 북측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물리적으로 입증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달려있다는 “폭탄성 발언”을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논평 “우리는 ‘체제보장’, ‘대가제공’을 바라지 않는다.”, 2003/4/29)


북한은 베이징 3자회담이후에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3중 대응 방식을 반복했다. 우선, 국내적으로 운명공동체인인 혁명 수뇌부와 일심단결을 강조했다.(북한 로동신문 편집국 론설 “혁명의 수뇌부와 일심단결, 사회주의는 운명공동체이다”, 2003/5/26)

 

다음으로, “조선반도핵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 방도로서, 북측은 “새롭고 대범한 방도”라고 주장하는 제안들을 양파껍질 벗기듯이 내놓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서, 외무성 대변인은 “조미쌍무회담을 먼저하고 다자회담도 할 수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조미 쌍무회담을 먼저하고 다자회담도 할 수 있다.”, 2003/5/24)라는 발표를 했다. 마지막으로, 이라크전의 종전이후 특히 억제력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이 5월말 확산안보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을 밝히고 국제연대를 추진하게 되자, 북한은 보다 공격적인 언어들을 사용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위협을 계속한다면 우리로서도 핵억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조선중앙통신 “우리의 억제력은 결코 위협수단이 아니다”, 2003/6/9) 핵억제력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확산안보구상을 격렬히 비난한 다음, “미국의 다자회담 주장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고립 압살행위를 가리우는 위장물”이라고 주장하고, “대조선 고립 압살정략에 대처한 정당방위조치로서 우리의 자위적 핵억제력을 강화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 그 어떤 다자회담에도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2003/6/18) 


그러나, 중국의 지속적 중재 노력으로, 북한은 8월말 베이징 1차 6자회담에 참석하여 기왕에 주장해 온 핵문제 해결의 3원칙을 보다 구체화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 조미사이의 핵문제에 관한 6자회담 개최- 조선 측 일괄타결방식과 동시행동순서 제시”, 2003/8/29)

 

북한은 첫 번째 원칙인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포기에 대해서는 “ 미국이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판단의 기준은 조미사이에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조미외교관계가 수립되며 미국이 우리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않는 때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원칙인 협상의 방법에 대해서는, 일괄타결도식과 동시행동순서를 밝혔다. 일괄타결도식의 경우에 “미국은 조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조미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조일, 북남경재협력 실천을 담보하며, 경수로제공 지연으로 인한 전력손실을 보상하고 완공하며, 조선은 그 대신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그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며, 핵시설을 궁극적으로 해체하며, 미사일시험발사를 보류하고 수출을 중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동시행동순서는 “미국이 중유제공을 재개하고 인도주의 식량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대신에 조선은 핵계획 포기의사를 선포하며,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전력손실을 보상하는 시점에서 조선은 핵시설과 핵물질동결 및 감시사찰을 허용하며, 조미, 조일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조선은 미사일문제를 타결하며,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서 조선은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 번째 원칙인 핵억제력의 방법에 대해서는, 6자회담이 끝난 직후 외교부대변인 성명으로 “우리는 이런 백해무익한 회담에 더는 그 어떤 흥미나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로서 핵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는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 6자회담애 더는 그 어떤 흥미나 기대도 가질 수 없다”, 2003/8/29)


2004년 2월말에 열린 베이징  2차 6자회담에서도,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의 전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동시일괄타결안, 군사적 해결을 위한 핵억제력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조미사이에 아직 신뢰가 없고 단번에 동시행동원칙에 기반을 둔 일괄타결안을 합의할 수 없는 조건에서 그의 첫 단계 조치로서 ‘미국의 적대시정책포기 대 우리의 핵무기 계획포기’ 의사를 공약하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서 우리가 핵무기 계획을 동결하는 대신 유관국들이 동시행동방법으로 대응한 보상을 할데 대한 신축성 있는 대안”을 내놓았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6자회담 재개문제에 언급 최소한 ‘말 대 말” 공약, 첫 단계 행동조치의 합의제안“ , 2003/12/9: 북한 외무성대변인,"제2차6자회담에 언급 핵문제 해결여부는 미국측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 2004/4/29: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이 제 할 바를 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소원을 들어 줄 용의가 있다", 2004/3/10)
  
북한은 3차 6자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5월 실무그룹회의에서도 2차 6자회담에서 제안했던 “동결과 보상”안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6자회담 실무그루빠회의에서 ‘동결 대 보상’안을 토의할 것을 주장”, 2004/4/29: 조선중앙통신, “6자회담 실무그루빠회의 성과여부는 미국의 입장에 달려 있다”, 2004/5/10)


북한은 제3차 베이징 6자회담 (6/23-6/26)에서 미국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요구를 철회하는 것을 전제로 핵무기관련 모든 시설들과 그 운영으로 나온 결과물들을 동결하고, 핵무기를 더 만들지도, 이전하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동결은 종국적인 핵무기계획폐기로 가는 첫 시작이라는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핵동결에는 반드시 보상이 동반돼야 하며, 동결기간은 보상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 보상 내용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를 해제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며, 200만 KW 능력의 에너지 보상에 직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제3차 6자회담 진행정형에 언급”, 2004/6/28;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의 ‘전향적인 제안’은 론의할 가치도 없다”, 2004/7/26)


동시에 북한은 동결대상 및 검증방법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데 있으며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함으로써 조건이 성숙되면 핵무기계획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평화적 핵활동은 북한의 자주적 권리에 속하는 문제로서 동결이나 포기 대상에 포함할 수 없으며, 동결은 궁극적인 핵폐기로 가는 첫 단계이며, 동결에는 객관적인 검증이 뒤따르기 마련이나, 핵사찰과 핵물질에 대한 사찰문제는 핵폐기 단계에서나 논의해 볼 문제라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동결대상 및 검증방법에 대한 입장을 표명”( 2004/7/14)


북한은 7월에 들어서서 미국의 ‘전향적인 제안“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북한외무성  대변인은 ” 우리는 미국측의 ’전향적인 제안‘에 대해서도 유의하면서도 회담이후 부시행정부의 대조선 정책동향을 면밀히 주시해왔다“고 밝히면서 ”한마디로 말하여 미국의 ’제안‘은 ’전향‘이라는 보자기로 감싼 ’리비아식 선핵포기‘ 방식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제안에는 저들도 이미 공약한 바 있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으며 특히 조선반도 비핵화의 기본 걸림돌인 미국의 적대시정책 포기에 대한 공약은 물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적 문제들이 전혀 언급되여있지 않다“라고 비난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목표는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실천적으로 포기될 때라야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미국은 우리가 비핵화목표를 천명한데 맞게 대조선 적대시정책 포기를 공약하고 그에 따른 첫 단계 보상조치로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를 해제하고 ’테러지원국‘명단에서 삭제하며 200만kw능력의 에네르기 보상에 직접 참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동결대상 및 검증방법에 대한 입장을 천명”, 2004/7/14: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의 ‘전향적인 제안’은 론의할 가치도 없다”, 2004/7/24)


북한 외무성대변인은 제4차 6자회담의 전망과 관련하여 미국이 북한인권법안, 확산안보구상(PSI), 한국내 최신전쟁장비 증가 등을 통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노골화하기 때문에 6자회담 실무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미국이 보상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하고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실천적으로 포기할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회담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세우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는 조미사이의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며 그에 필요한 협력을 할 준비가 되여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4차 6자회담의 전망에 언급”, 2004/8/17)


북한은 10월 미국 상원이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하여 “미국은 우리와의 공존을 전면 부정하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말살하려는 무분별한 단계에 들어섬으로써 핵문제를 위한 대화와 협상의 의미를 상실케 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핵문제에 대한 6자회담은 고사하고 미국과 상종할 그 어떤 명분도 없게 되였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미국과 힘으로 끝까지 대응하기 위한 억제력 강화에 더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의 ‘북조선인권법안’은 대조선적대선언”, 2004/10/5)
   

북한의 이러한 해결방안은 기본적으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4년 베이징 합의는  제네바 합의의 기본 유형을 반복하기는 어렵다. 우선 평화적 해결 방법의 경우에, 북한이 요구하는 동결과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 킬 수 없는 핵폐기 (CVID)'는 쉽사리 좁히기 어려운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기본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두 당사자가 동결과 폐기의 과도기적 타협에 잠정적으로 성공하더라도, 현실적 이행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동결과 폐기의 난관다음으로는 보상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보상의 내용 중에 테러지원국 명단해제나 에너지 및 식량 문제 보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다자틀내 서면안전보장방안‘과 북한의 ’서면불가침담보‘의 차이다. 북한은 “미국이 우리에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계속 완고하게 강요하는 조건에서 우리도 남조선주둔 미군을 검증가능하게 완전 철수하고 조미사이의 평화협정체결과 관계정상화로 담보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안전담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보상의 난관 극복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잘 말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론평 선결조건은 미국의 대조선정책전환이다.”, 2004/3/9: 로동신문, “우리의 동시일괄타결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2003/12/15)
   

북한의 군사적 해결방안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이  “조선의 배짱”에 기반을 둔 핵억제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경우에, (로동신문, “정론 조선의 배짱”, 2003/1/9) 남북한의 정치/군사관계는 대단히 불안정해질 것이며, 동아시아는 핵확산의 연쇄반응 가능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미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군사적 해결방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반테러전


미국의 해결방안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핵문제를 1990년대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군사질서에 불안정을 가져다주는 핵확산 문제로 다루었다. 9.11테러이후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반(反)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Report)"에 이어 발표한 “반테러전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은 미국의 이러한 입장을 선명하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21세기 테러조직의 지구 그물망화, 첨단기술화, 대량살상무기 사용가능화의 새로운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반테러전의 기본전략으로서, 테러조직을 파괴하고, 테러조직의 지원을 막고, 테러가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키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어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테러조직의 지원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전 세계국가들을 테러지원국, 반테러전 지원국, 그리고 주저하는 국가들로 나누어 새로운 반테러 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북측은 7대 테러지원국 중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입장을 이라크전 승리이후 보다 자신감 있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5월1일 에이브러험 링컨 항공모함에서 이라크전투작전의 종료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라크전은 2001년 9월 11일에 시작해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는 반테러전들중 하나의 승리”라고 말했다. 9.11은 오사마 빈 라덴이 얘기하는 것처럼 “미국 종말의 시작”이 아니라 지구테러 그물망과 지원세력 종말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첨단정밀무기와 새로운 전술에 힘입어 새로운 전쟁이 가능함을 시사하면서, 이를 통해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위험하고 공격적인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수단 제거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 증대의 경우에 추가적 조치(further steps)의 검토에 합의하고, 미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경우 더 강한 조치(tougher measures)가 필요하다고 합의했다. 

   

부시대통령은 G8 정상회담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폴란드의 크라코우(5/31)에서 평화의 최대의 적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확산과 싸우기 위한 새로운 노력으로서 확산안보구상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구상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외교적 대화를 가능한 한 추진하지만, 동시에 미국과 반테러동맹국들은 필요한 곳에서는 경제제재, 저지와 나포, 선제군사력등과 같은 강한 수단 등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2004년 2월 11일 미국방대학에서 대량살상무기 위협의 대응 방안에 대한 강연에서 확산안보구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미국 및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위협을 대량살상무기 테러라고 강조하고, 특히 최근에 밝혀진 칸 농축우라늄 암시장 지구네트워크를 상세히 설명한 다음에, 대량살상무기 테러를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의 선적과 이전방지 중심의 확산안보구상은 국제경찰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법 집행의 국제적 협력을 새롭게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반테러전의 틀, 보다 구체적으로는 확산안보구상의 틀로 다루고 있다. 북한의 협상과 억제의 이중 핵정책에 대해서, 미국도 6자회담과 확산안보구상의 이중 대응을 하고 있다. 6자회담의 미국 대표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는 미국의 대북핵외교의 기본원칙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와 다자회담의 틀로 요약하고 있다. 
 
 

CVID원칙은 북한의 풀루토늄 프로그램,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그리고 현존하는 핵무기들을 포함하는 모든 핵 프로그램들을 최근의 리비아의 경우와 같이 검증 가능하고, 다시 재구성할 수 없도록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대북 핵외교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 억제정책을 강화하는 경우에, 미국은 확산안보구상의 틀에 따라 협상외교를 넘어서서 경제제재를 비롯한 조치들을 추진하고,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체제변환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서 군사제재를 남겨두고 있다.

 

미국무부 정책기회국장 미첼 라이스(Michell B. Reiss)는 북한의 지도부가 지난 1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이 좋은 기회를 놓쳐서 오늘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가를 지적하고, 다시 한번 역사적 선택의 기회를 맞이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대량살상무기없는 북한이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로의 변환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지도부가 변환국가의 변환된 관계를 선택하면 미국을 비롯한 관련당사국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나, 그러나 핵프로그램을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은 확산안보구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6자회담(2004/6/23-6/26)에서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투명한 검증절차를 거쳐 폐기할 것을 약속하고, 다음으로 모든 핵관련 시설 및 물질들의 감독하의 철거, 해체, 제거, 모든 핵무기와 부속품, 우라늄 원심분리기와 부품, 핵분열물질과 연료봉의 제거, 장기 사찰 프로그램에 관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합의한 후, 3개월의 폐기준비기간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폐기절차를 실행하도록 요구했다. 한편, 미국은 북한의 약속과 실천에 상응해서 미국이외의 관련당사국들이 중유를 공급하도록 하고, 다음으로 잠정적 다자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북한의 에너지 수요와 이를 충족하기 위한 에너지 프로그램 연구를 수행하며,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명단에서 제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하며, 마지막으로 북한이 폐기절차를 완료하면, 상응조치의 효력을 영구화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존 볼튼 (John R. Bolton)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부장관은 북핵문제의 해결은 확산안보구상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리비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핵프로그램 폐기라는 전략적 선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클리턴 민주당 행정부당시 국무부 핵비확산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로버트 아인혼 (Robert J. Einhorn)은 미국내에서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나눠져 있던 체제변화파파와 대화파는 리비아모델의 성공이후 북한에도 리비아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데 원칙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 선거이후 미국은 6자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경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확산안보구상의 실천, 일본의 대북 경제교류 억제르추진하고 최종적으로는 체제변화를 모색하는 적극론과 북한의 핵물질과 시설을 보다 장기간에 단계적으로 폐기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경제지원을 하는 신중론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3차 6자회담의 북한과 미국의 제안이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쌍방 제안의 기본 골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국의 새로운 정치적 결단이 없는 한 합의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자신의 국가안보의 핵심문제로 보고 있으며, 북한 지도부를 뿌리 깊게 불신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희망하는 폐기가 아닌 동결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편 북한은 핵억지력을 생존전략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을 신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폐기와 동결의 갈등을 잠정적으로 타협하더라도 갈등은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이다. 더구나 이 갈등을 넘어서도 보상의 어려움이라는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희망하는 보상들 중에 경제 보상은 협상 가능하지만, 군사 보상과 관련해서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서면 다자안전보장과 북한이 요구하는 서면 안전담보는 전혀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생존외교와 미국의 반 대량살상무기 테러외교는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상대방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배짱외교와 오만외교의 대결 양상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 문제는 결국 북한이 미국이 희망하는 리비아식 해결방법을 거부함으로써 단기적 체제변환의 어려움에 직면하느냐, 아니면 리비아식 해결방법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대신 북한이 희망하는 보상의 극대화를 시도하느냐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체제변환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후자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재변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구상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에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의 관건은 북한의 대응방식과 중국의 협조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의 다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노력과 북한의 평화적 해결방법이 제대로 어울리면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리비아 모델에 따른 폐기원칙과 북한의 동결과 보상원칙을 비교해 보면 평화적 해결의 앞날이 험난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평화적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 미국이 중국의 동의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반테러전의 틀에서 경제제재를 넘어서서 체재변환과 군사제재 가능성을 타진하는 경우에,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불안전성을 급속히 심화시킬 것이다.


한국의 북핵정책


북한이 생존권을 명분으로 핵정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수단까지를 검토하는 경우에, 현재 노무현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북측의 핵개발금지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서로 모순 되기 때문에 동시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취임사” 『노무현대통령연설문집』제1집, pp.25-31)       


노무현대통령은 5월 중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과 함께 “국제적 협력에 기반을 두어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제거를 위해 노력해 나간다는 강력한 의지를 재천명하고,”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에는 추가적 조치의 검토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데 유의하면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였다.”  (외교통상부/북미국/최근동향 “한.미정상 공동성명”, 2003/5/14)                     

   

노무현대통령은 6월초 한일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수상과 함께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물론 어떠한 핵개발 프로그램도 용인하지 않을 것임과 이 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하는데 합의하였다.” 그리고, 노대통령은 한국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북핵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외교통상부/아시아태평양국/최근동향 “한.일정상 공동성명”, 2003/6/7)

   

그러나, 두 번의 정상회담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북핵문제를 다자회담과 확산안보구상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화와 압력의 이중접근 틀로 다루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북핵문제를 대화는 명확히 하되, 압력은 막연한 암시를 하는 애매한 이중접근 틀로 다루기를 희망함으로써, 한미일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여주었다. 보다 심각한 것은, 현실이 우리정부의 기대처럼 풀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8월말 베이징 1차 6자회담에서 북한핵문제 해결방안으로서 3단계 상호 병행조치를 제안했다. 1단계는 북한이 핵폐기 용의를 표명하고 나머지 참가국들은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용의를 표명하고, 2단계는 북한의 핵폐기와 함께 나머지 참가국들의 상응조치를 논의하고, 3단계는 핵문제의 관심사항이 해결되면 북한과 참가국간에 포괄적인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제1차 6자회담 결과 및 평가, 2003/8/31: 외교통상부, 제2차 6자회담-이수혁 한국수석대표 언론브리핑3)
    
한국은 2004년 2월말 베이징 2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동결 대 대응조치’제안에 대해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핵활동, 핵물질 및 관련시설을 동결하고, 이를 검증하며, 핵폐기안 마련을 위한 단기간의 동결을 제의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동결기간동안 잠정적으로 에너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제의하였다. (외교통상부, 제2차 6자회담 결과) 한국은 동시에 3단계 대북 안전보장을 제안하였다. 1단계로 북한이 핵폐기 의사를 표명하고 나머지 참가국들의 다자 안전보장을 문서화하고, 2단계로 대북안전보장 공동선언을 통해 잠정적으로 북한에게 실효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3단계로 북한의 핵폐기 마무리 단계에서 항구적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제2차 6자회담-이수혁 한국수석대표 언론브리핑 3) 

 

한국은 6월말 베이징 3차 6자회담에서 첫째,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을 국제적 검증하에 투명하고 철저하게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둘째,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응 일정기간내에 신고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셋째, 동결기간중 중유지원, 북한의 에너지 수요 연구사업 개시, 잠정적 안전보장 제공,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제재 완화를 위한 대화개시를 제안하고,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관계 정상화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 하며, 북한의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 사업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환경 조성을 제안했으며, 넷째,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인하고 동결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제3차 6자회담 결과를 평가하면서 북한핵문제 해결 접근 방식에 대한 한 ,미, 일과 북한의 입장차가 상존하고, 핵폐기와 동결의 범위, 검증, 기간과 이에 대한 상응조치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한국, 미국, 북한이 구체적 안을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실질적 논의를 진행했으므로 본격적 협상단계의 진입 기반을 마련했으며, 6자회담 과정의 가속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외교통상부, 제3차 6자회담결과 관찰 및 평가) 

 

북한 당국이 제3차 6자회담이후 미국의 리비아모델 제안에 대해 점차 비난의 소리를 높여 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유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21일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첫째,  한.일 두 정상은 3차 6자회담에서 구체적 협상안이 제시되어 실질문제를 논의하게 됨으로써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실질적인 협상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평가하고, 둘째, 이러한 긍정적 모멘텀을 살려서 한.일 및 한.미.일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을 가속화 해 나가기로 하고, 셋째,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은 ‘포괄적 구체적인 남북경협사업’을 시행하고, 일본은 평양선언에 입각하여 북일수교와 대북경협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아시아태평양국/최근동향,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 2004/7/21)
  

노무현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 일문일답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서 북핵문제의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할 구상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정상회담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북핵문제, 그리고 남북관계진전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 하는 판단이 앞서야 한다”고 답변했다. (외교통상부/아시아태평양국/최근동향,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 일문일답, 2004/7/21) (http://www.president.go.kr)


한국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제4차 6자회담은  예정된 9월에 열리지 못했다. 노무현대통령은 9월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가진 동행기자 조찬 간담회에서 “북핵문제는 조급할 이유 없다”고 말하면서 “탈북자들의 집단입국과 한국의 핵물질 실험, 미국 대선 후보들의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언급 등으로 북한핵문제에 일부 장애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청와대통신/해외순방/러시아 방문, 동행기자 조찬간담회, “북핵문제 조급할 이유 없다”, 2004/9/22)) (http://www.president.go.kr)

   

그러나 노대통령은 10월 베트남방문 기자회견에서 “북핵문제는 모든 나라가 관심을 갖는 문제이고 걱정스러운 일이나 구조적으로 가장 위험하거나 가장 풀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실제 미국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민감한 말들이 오가지만 구조적으로 많이 안정돼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북한에게 확실한 희망과 기대를 갖도록 해야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고 대화를 할 것 이며  개혁 개방의 길을 점진적으로나마 갈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고 전망했다. (청와대통신/해외순방/베트남 국빈방문 기자간담회, “북핵 구조적으로 많이 안정”, 2004/10/11) (http://www.president.go.kr)   


노무현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북핵문제의 구조적 안정론과 북한의 기대활용론은 한국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구조적 안정론은 북핵문제의 국제정치를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낙관론이다. 북핵문제의 현실 국제정치는 대단히 입체적 모습을 띄고 있다. 6자 회담도 참석 국가가 모두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이 우선 크고, 다음으로 북한이며, 그 다음에 중국과 한국이 위치하여 있으며, 마지막으로 일본과 러시아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 안정은 6개국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미국과 북한관계의 동학에 크게 좌우된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21세기 미국의 최우선 국가이익인 반테러전의 일부로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리비아모델의 북한적용을 양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편 북한도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의 포기 없이 북핵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폐기원칙과 북한의 동결원칙은 타협안을 찾기 어렵다.  제동장치가 신통하지 않은 두 대의 초고속전철이 마주 보고 달리는 비극적 불안정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심화 속에서, 한국정부는 북한 기대활용론으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여 문제를 풀어보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넘기 어려운 장벽이 가로 놓여 있다. 북한이 수령옹호체제를 담보하기 위해서 요구하는 미국의 대부적대시정책의 포기는 한국정부가 내 놓은 3단계 대북 안전보장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이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담보가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라는 군사적 담보와 힌미군사동맹의 해체라는 정치적 담보이다.  한편 9.11이후의 미국은 다시는 1994년 제네바 합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 폐기 없는 동결만의 보상은 일고의 가치 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구조적 안정이 아니라 구조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북한 기대활용론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쳐서,  6자회담의 평화적 해결방안이 쉽사리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은 핵억제력을 강화하고,  부시행정부는 확산안보구상을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긴다면,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무기수출, 마약밀매, 불법송금은 모두 합쳐 연1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해 수출 7억 달러, 수입 17억 달러로 1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본 북한에 연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수입을 봉쇄한다는 것은 단순한 대화를 위한 압력이 아니라 체제 사활의 문제다. 따라서 북한의 확산안보구상 비난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격렬하다. 한편, 미국의 입장도 단호하다. 미국은 북한의 강경한 비난을 북한의 전형적 벼랑끝 외교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북한이 성의 있게 다자회담에 임하지 않는 한, 확산안보구상을 현실화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미국의회의 북한입법권안 통과는 확산안보구상의 개막을 예고하는 서곡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조심스러운 낙관론과는 달리 북핵문제의 해결은 훨씬 어려운 숙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북특사나 남북한 정상회담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커다란 두 난관을 맞이해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3차 6자회담이후 미국과 북한이 모두 상대방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 단계에서, 미국은 한국의 노력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미국의 반테러 동맹 구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한편 북한은 정치적 결단을 가능한 한 늦추기 위해서는 특사교환이나 남북한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특사교환이나 정상회담을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유예를 위한 일시적 수단으로 쓸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21세기적 해결방안


베이징 6자회담은 20세기 냉전사의 역사적 유물인 북핵문제의 해답을 찾아보려는 힘든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재자로서의 중국, 촉진자로서의 한국, 지원자로서의 일본과 러시아의 다자적 협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리비아모델에 따른 폐기원칙과 북한의 동결과 보상의 원칙은 쉽사리 기본 합의를 마련하기 어렵다. 설혹 마련하더라도 쉽사리 지켜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과 북한의 원칙은 근대의 일국 중심적 이분법 사고의 전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자회담을 통한 폐기원칙 실현 모색은 9.11이후 미국 주도 반테러전의 다단계중 외교전 단계이다. 따라서 북한이 끝까지 핵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부시행정부의 확산안보구상은 정권변환을 위한 경제제재를 추진하며, 대량살상무기 이전을 막기 위해 선박을 제지하고 나포하며, 21세기형 군사제재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이 21세기 중국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보다 21세기적인 북한 정치주도세력의 등장을 기대하게 된다면, 미국의 경제전과 정치전은 북한의 변환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편, 북한의 동결과 보상의 원칙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전환을 위한 평화적 방법이기 때문에 쉽사리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미국이 확산안보구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는 경우에는, 북한은 핵억제력 강화라는 군사적 방법을 뱃짱외교의 당당한 표현으로 벼랑 끝까지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베이징 6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미국의 확산안보구상과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의 악순환 위험성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핵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반도 핵문제의 21세기적 해결방안은 현재와 같은 좁은 의미의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라는 이분법적 갈등을 넘어서서 민족적 국제공조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국제공조 없는 민족공조는 자신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타자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침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제적 규제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반면에, 민족공조 없는 국제공조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를 함께 추진하여,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서로 모순 되지 않게 확보해야 한다.

 

민족적 국제공조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첫 단계는  북한의 21세기 지도부가 북한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무기가 아닌 21세기적 방안으로 확보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국제원자력위원회의 안전보장조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며, 이러한 약속들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동시에, 21세기 자주생존권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방어적 안보, 다자적 정치안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안보를 추진해야 한다.

 

한편,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은  북한의 21세기 지도자가 21세기 문명표준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군사, 경제, 정치적 담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것을 합의해야 한다. 북한의 생존권을 21세기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불가침선언이나 조약과 같은 법적 담보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성실하게 법적 담보를 이행하도록 관련당사국들의 다자 담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담보는 21세기 아시아판 마샬 플랜 수준의 다자지원을 모색해야한다. 그리고 핵무기 없는 21세기 문명표준을 추구하는 북한의 정치 주도세력에 대한 다자적 정치  담보를 약속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21세기 북한의 새로운 정책방향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 북한지도부가  자주생존권을 21세기 방식이 아니라, 19세기 위정척사 방식으로 얻으려고 한다면, 체제유지비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결과적으로 21세기에 다시 한번 19세기처럼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날 것이다.  북한이 21세기 방식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부의 리더십이 불가피하다. 

 

북한과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이 21세기 기본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다음 단계에 들어서면, 한반도 핵문제 관련 당사국들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만남의 형식으로 현재의 6자회담 형식을 보다 복합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한반도 핵문제의 성격자체가 복합적이어서, 양자 또는 다자만으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해결방안의 구체적 내용은 북한이 21세기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무기가 아닌 21세기 문명표준의 추구로서 확보하겠다는 새로운 정책방향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기 위해서,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 있는 핵시설 및 물질의 폐기 및 사찰문제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은 북한 지도부의 21세기 정책방향을 현실적으로 돕기 위한 군사, 경제, 정치적인 방안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질서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21세기 기본합의서가 마련되고, 이러한 합의를 관련당사국들이 실천에 옮길 때, 한반도는 21세기 신문명에 합류할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동북아 평화건설은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한반도 핵문제의 핵심당사국들이 21세기 기본합의서 마련에 실패하고, 핵억제력 강화와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악순환을 계속할 때, 21세기 동북아평화건설은 엄청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동북아평화건설


21세기 신문명국가의 건설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은  21세기 한반도 평화의 사활이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동북아 평화건설의 첫출발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석위에 동북아평화라는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동북아국가들이  19세기 이래의 역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창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북아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천하(天下)질서의 공간의식속에 살아오다가, 19세기에 들어서서 구미(歐美)세력의 지구적 확장과 함께 아시아주의와 구미주의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아시아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이름의 일본 지역 제국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냉전의 동북아 공간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소련의 해체와 탈근대 공간의 등장과 함께 새롭게 재구성돼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북아국가들이 역사적으로 공통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미가 주도하는 근대문명의 표준을 따라 잡으려는 지난 한 세기 반의 노력 속에서 상당한 정도의 이질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냉전이후 ‘근대의 노년기’에 접어든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새로운 건설을 통해 일국중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문명사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나, ‘근대의 청년기’에 접어든 동북아국가들은 21세기에도 쉽사리 일국중심주의의 각축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북아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차원의 세계화, 지역화, 근대국가화, 지방화, 또는 개인화가 아니라 그물망(network)국가의 건설을 통한 동북아의 그물망화다.

 

동북아의 그물망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21세기 동북아무대의 주인공 문제다. 냉전시기의 미국과 소련중심의 동북아 무대가 탈냉전시기의 미국/일본 대 중국의 무대로 변화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21세기 동북아 무대는 주역만의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 무대위의 모든 연기자들이 그 나름의 크고 작은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자강(自强)과 균세(均勢)라는 근대적 생존전략의 불가피한 추구와 함께 국가의 안과 밖의 다른 모든 연기자들과 그물망을 함께 짜나가는 탈근대적 생존전략을 복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동시에 19세기 중반이래의 동북아 무대가 근대 국민국가의 부국과 강병 추구라는 두 개의 무대를 중심으로 짜여졌다면, 21세기 동북아 무대는 그물망국가들의 평화, 번영, 정보/지식, 문화, 생태균형의 복합무대로 짜여져 가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건설도 더 이상 일국중심의 부국강병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물망국가를 기반으로 한 열린 동북아 그물망을 복합무대에서 얼마나 잘 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21세기적 해결은 단순한 한반도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동북아 공생(共生)무대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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